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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별바라기 Apr 09. 2024

말끝에 다정함을 던지는 남편

말의 진정한 가치

“밥은 먹었어요?”

.

.

.


“저녁은 뭐 먹을까요?”

.

.

.


“지금 출발해요.”

.

.

.


만약 어떤 아내가 남편이 보낸 문자라며 나에게 들이민다면,

나는 분명

“어머, 남편이 정말 스윗하시네요. 호호호”

라며 방정을 떨었을 것이다.


 

사실, 내 남편의 이야기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남편은 무뚝뚝한 편이다.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가,“화났어?”이다.

뚱한 표정으로 뚱하게 던지는 말 끝에는’ 화남’이 묻어 있는 듯하지만,

대부분 남편은 화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런 남편에게 나는 “말 좀 곱게 해 줄래?”라며 쏘아붙인다.



그런 남편이 꼭 나가 있으면 저렇게 요요를 붙여가며 다정함을 던진다.

그러다 내가 설레면 어쩌려고.






결혼 전에는, 다정한 남친이었다.

결혼 후에는, 모드가 바뀌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3년 간 매일 전투태세였다.

누가 이기든 둘 다 피범벅이 되는 건 정해진 결론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쓰자고 했다. 

너무 뜬금없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부부라도 서로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 좋지 않냐, 말을 예쁘게 하면 좀 덜 싸우지 않겠냐, 등 나름의 이유는 충분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무뚝뚝’이라고 하면 남편보다 뒤질 것 없는 나이기에 갑자기 존댓말은 너무 오글거렸다. 

남편이 한동안 설득했다. 그러더니 혼자라도 쓰겠다며 존댓말을 시작했다. 혼자 애쓰는 남편이 안 돼 보여서 못 이기는 척 간간이 썼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존댓말로 서로를 존중하고, 싸움도 줄어들고… 정말 행복한 부부가 되었…”  


아쉽게도 이런 결말은 없었다.

우리 부부 싸움은 말끝하나 바꾼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았다.

존댓말을 쓰다가 싸우니까 전투 혈기가 더 왕성해졌다. 그래, 예의를 갖추자더니 싸울 때 그 예의 한 번 구경하자… 뭐 이런 마음까지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존댓말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끝났다.






살다 보니 우리의 부부 싸움도 흐려졌다.

그런데, 남편은 나가기만 하면 그렇게 요요를 붙여대며 나의 귀를 간지럽힌다.

아무튼 좋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남편이 다정한 사이버 남친이 된 느낌이랄까.



우리 부부는 여전히 티격태격하며 서로에게 뚱한 말투가 꽤나 전투적일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말끝에서 다정함을 느끼는 것은, 서로에게 서툴렀던 그 시절 '존댓말'에 기대며 노력했던 남편의 흔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말의 진정한 가치는 그 형태가 아닌, 그것을 담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예쁜 말투를 하자는 것은 예쁜 마음을 말에 담자는 의미이다. 내 마음을 바꾸려하지 않고 말투만 바꾸며 '어디 두고 보자'며 심술을 부렸던,  철없던 신혼 시절의 내가 참 부끄럽다. 



남편을 향한, 아이들을 향한 내 말끝에는 뭐가 담겨 있을지 생각해 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느라 말끝에 담기는 온기나 향기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점심 먹고 왔어요."


남편에게 방금 점심을 먹고 왔다는 연락이 왔다.

나도 말끝에 다정함을 던져볼까.

용기를 내 볼까.


'오늘 점심 메뉴는 뭐예요?'


아, 생각만 해도 오글오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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