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별바라기 May 10. 2024

불편한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는 법

집주인과 세입자의 대화

"집 정리 좀 해 놓으세요. 애들 장난감도 좀 치우고요. 집을 그렇게 해 놓으니까 집이 안 나가잖아요."


전세 계약 만료 시점에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다. 계약만료일은 다가오는데 새로운 세입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부동산과 집주인과 통화를 하던 중 집주인에게 들은 말이다. 굉장히 불쾌했고 심히 불편했다. 집을 보러 올 때마다 물건 정리하고 방향제 뿌리던 내 수고로움을 한 줌의 먼지로 털어 버리는 말이었다.


불편한 말들이 오고 간 끝에, 남편과 나는 집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이 집에서 계획대로 이사를 나가야 하니 감정보다 이성의 힘에 의지했다.






우리 집의 모양새가 다른 집들과 다른 점들이 있었다. 첫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거실공부법'을 선택했다. 거실이 서재 겸 공부방이다. 거실 한가운데에 큰 테이블이 놓여 있고, 한쪽 벽으로는 아이들 책상 두 개, 다른 벽으로는 책장 두 개가 서있다. 우리 가족에게는 이유 있는 배치이지만 보통의 거실과는 다른 것은 사실이다. 처음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은 '색다른' 거실을 보고 당황하기도 한다.


아이들 방은 놀이방이다. 각자의 방에는 장난감들과 책장이 있다. 각자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장난감으로 놀 수 있고, 책도 읽을 수 있다. 아들 방은 방 한가득 레고로 깔려 있다. 매일 레고로 만들기를 하는 아들에게 레고 정리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집에 손님이 오지 않는 한 그 방은 레고로 가득하다. 딸 방은 온갖 인형들이 학교 놀이, 병원 놀이, 유치원 놀이를 하는 곳이다. 내가 어리다면 내 방에서 어떻게 놀고 싶을까.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내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었고 우리 가족은 만족하며 지냈다.





우리 집은 인테리어로서 '예쁨'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 집이기에 잠깐 정리를 한다 한들 '오늘의 집'에 나올 깔끔각은 절대 나올 수 없다.  

이런 사전 정보 없이 우리 집에 들어온 사람의 눈에는 집이 관리가 안 되는 지저분한 집으로 보일 수 있다. 누구나 새로운 공간에 들어갈 때 무의식적으로 나름의 예측을 하는데, 그 예측과 많이 어긋나면 낯설게 느끼고, 낯선 것에는 불편함을 느낀다. 불편함이 호감을 줄 수는 없으니.


곧 이사를 나갈 것이기에 굳이 가구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없었지만, 누구나 예상이 될만한 '보통의 집'과 같이 구조를 바꿔두었다. 바꾸고 보니 거실이 탁 트여 보기 좋고, 아이들은 자기 책상이 자기 방으로 들어간 것에 좋았는지 각자 방에서 공부도 척척 했다.


집주인의 불쾌한 말이 감정을 상하게 했지만 우리 집의 변화는 우리 가족에게 나름 괜찮았다. 그 변화의 과정에 우리 부부는 정신과 육체의 몸살을 앓았지만, 한 두 달이라도 더 기분 좋게 지낼 수 있으니 긍정 모드를 선택!


긍정 모드라한들 집주인과 통화를 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 부부는 앞으로 집주인과 통화할 일이 있으면 가위바위보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벌 받는 심정으로 통화를 해야 할지도.  






살다 보면 불편한 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불편한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좋을 일이다. 집주인은 이 집과의 인연이 끝난다면 다시 안 봐도 될 사람이지만, 끊을 수 없는 인연의 사람이 불편한 말을 기분 나쁘게 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불편한 말을 기분 나쁘지 않게 하려면 '쿠션 화법과 제안형'으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


"혹시, 애들 장난감을 정리해 놓으시면 어떨까요? 집이 좀 더 깔끔해 보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요."

"괜찮으시면, 집을 보시는 분들이 편하도록 정리를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쿠션화법은  '괜찮으시면, 혹시, 죄송하지만'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부드럽고 공손한 느낌을 전달한다. 명령이나 요구의 느낌을 최소화하고 상대방에게 동의를 구하는 느낌을 강조하는 화법이다.

제안형은 "~하시면 어떨까요?", "~하시면 좋겠습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제안의 느낌을 전달한다. 명령이나 요구보다는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주는 표현이다.


명령하듯이, 따지듯이, 비난하듯이 말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도 좋을 리는 없다. 반면, 똑같은 내용의 말을 쿠션화법과 제안형으로 하면 수용하고 수긍하게 된다. 만약, 집주인이 그렇게 말했다면 미리 좀 더 신경 쓸 걸, 하며 반성하고 미안함이 들었을 것이다.






이 집에 사는 동안 참 좋은 이웃과 함께 했다. 위, 아래, 옆집 모두가 친절하고 이해와 존중을 보여준 이웃이었다. 행여나 층간 소음으로 불편을 끼칠까 봐 물어보면 아래층 이웃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도 안 시끄러워요. 전혀요. 걱정 마세요."

설마 그렇게 조용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너그러운 이해에 너무나 감사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이웃 부부를 함께 만났다. 남편은 우리 아이들을 보더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 너네들이구나. 우당탕탕 전쟁 놀이 하는 애들이..."

옆에 있던 아내는 당황한 듯 웃으며 말했다.

"애들이 어떻게 안 뛰고 놀아요."


가끔 초등학생인 아래층 아들에게 물어봤다. 요즘은 어떠냐고.

"시끄러운 소리 하나도 안 들려요. 걱정 마세요. 9시 이후에는 자야 하니까 그때만 조심해 주시면 돼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대견하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늘 예쁘게 말하는 가족 덕분에 몇 년 간 층간소음에 대해 심장 졸이지 않아도 되었다. 나 또한 위층에서 층간소음에 대해 걱정하는 말을 하면

"하나도 안 시끄러워요. 걱정 마세요."

라고 말하며 너그러움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집주인의 불쾌한 말 때문에 이 집까지 미워할 필요는 없다. 집주인은 한없이 좋은데 늘 보는 이웃 중 한 사람이 고약하게 말한다면 사는 내내 얼마나 불편했을까. 자주 연락할 일이 없는 집주인이 그런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편히 잘 지냈으니 이 집에게 감사하고, 늘 예쁘게 말해 준 이웃들에게도 감사하고, 앞으로 남은 기간이라도 이 집에 '예쁨'을 더 해 주면서 새로운 세입자와의 좋은 인연을 연결해야겠다.


이제 또,  

고. 약. 한. 말습관의 집주인과 대화를 할 사람을 정해야 할 텐데...

가위바위보는 내가 꼭 이기고 싶다.

   

 




 


이전 02화 말끝에 다정함을 던지는 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