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머리 소녀(?)와 병원 데이트
여보. 사랑해. 내 목숨보다 당신을 더 사랑해.
세브란스 암센터에서 아내가 암 검진을 받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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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병원 데이트가 시작됩니다. 부부가 나란히 손잡고 병원 문을 들어섭니다.
우리 부부의 병원 데이트도 어느덧 십수 년 세월이 훌쩍 넘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암 병동이 우리 부부의 새로운 데이트 장소가 된 지도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파란만장한 내 인생이었습니다.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였습니다.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난이 지긋지긋했습니다. 부자가 되어 떵떵거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꼭두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죽을 둥 살 둥 뛰어다녔습니다.
내가 사업을 시작만 하면 금방 떼돈을 긁어모으게 될 줄 알았습니다. 뜨기 시작하는 시장이었고, 일본에선 이미 검증된 사업이었습니다. 파트너가 된 국내 브랜드도 신뢰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얼마 못 가 산더미 같은 빚만 지고 폭삭 망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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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아이가 세 살 때였습니다. 아내는 씩씩했습니다.
돈은 또 벌면 된다고 오히려 나를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제안을 하였습니다. 함께 교회에 나가 신앙 생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권유대로 집 앞에 있는 교회에 다니며 생전 처음 신앙생활이란 것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합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한 신앙의 길이 상상도 못 했던 새로운 인생길로 이어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였습니다. 학교 다닐 땐 미술대회에 나가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어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미대에 입학해서 화가가 되겠다는 꿈은 일찌감치 접어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꿈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그림이 필요한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가장 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교회 다니는 아이들을 위한 만화였습니다.
내가 그린 만화들이 선풍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미친 듯이 날밤을 새우며 단기간에 수십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어느덧 국민일보를 비롯한 수많은 신문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게 되면서 방송 출연 요청까지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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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역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강력한 힘에 이끌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고, 졸업 후 목사가 되어 그 늦은 나이에 마침내 목회까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 다니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사업하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만화 그리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목회는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처럼, 사업할 때처럼, 만화 그릴 때처럼, 목회할 때도 꼭두새벽부터 오밤중까지 죽을 둥 살 둥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렇게 한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몹시 과로하여 몸의 이상을 느끼던 어느 날, 병원을 찾아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었습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암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끝나자 교수님이 항암치료를 권했지만, 교회를 오래 비울 수 없어 항암치료를 포기하고 바로 퇴원해서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두어 번 바뀐 어느 날이었습니다. 암이 재발한 것 같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번엔 췌장을 비롯, 장기 곳곳에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새벽마다 밤마다 통곡하듯 기도하는 아내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기도를 나도 들었고, 교회를 출입하는 모든 사람이 다 들었고, 하나님도 들으셨습니다.
얼마 후 장기 이곳저곳에 발견된 종양들이 깨끗이 사라져버리는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신기한 일은 그때부터 교회에도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눈에 띄게 교회 출석하는 성도들의 숫자가 늘어났습니다. 매 주일 새로운 교인들이 꾸역꾸역 몰려왔습니다. 나중엔 예배당에 앉을 자리가 없이 차고 넘칠 정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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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호사다마라고 좋은 일이 일어나면 안 좋은 일도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식구가 늘고 교회가 급속도로 부흥하게 되자 점점 교회 안에 이런저런 갈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한 가족 같이 화목하던 교회 안에 심각한 내분까지 일어났습니다. 그 일을 수습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은 우리 부부를 대혼란 속에 빠뜨리는 충격적인 사건까지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상황이 어지럽게 돌아가다가 어느 순간, 모든 비난의 화살이 갑자기 아내에게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아내는 천사 같은 우리 사모님에서 사냥꾼들에게 쫓기는 사냥감처럼 수많은 사람의 집중 표적이 되어버렸습니다.
잔인한 말들이 아내의 가슴을 난도질했습니다. 황당한 소문들이 비수처럼 아내의 가슴을 찔러댔습니다. 가슴앓이하며 예배당에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회오리바람 같은 시험이 교회를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연약한 성도들이 무수히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발 아내에게만은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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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도 암이 발병한 것입니다. 림프종 암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내가 암이 완치되던 바로 그 해, 아내는 새로 암 투병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서로 임무 교대를 했습니다. 보호자였던 아내는 환자가 되고, 환자였던 나는 보호자가 되었습니다.
부부가 사이좋게 혈액암센터 소화기암센터 간암센터 등 세브란스 암 병동을 데이트 장소로 삼고 행복한(?) 병원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휠체어를 밀고 다니며 아내에게 약속했습니다.
“여보. 연애할 때 내가 당신 세계일주여행 시켜주겠다고 했었지? 그 약속 꼭 지킬게.”
나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암 투병하면서도 우리는 전 세계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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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세월이 지나 아내의 암도 완치되었습니다. 우리 부부가 함께한 긴긴 암 투병의 역사는 곧 우리 교회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출입하였고 무수한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짧고 파란만장했던 목회를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병원 문을 나서는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귀 밑머리가 하얗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눈에 아내는 솜털 보송보송한 긴 머리 소녀입니다. 어린 시절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아름다운 소녀가 스커트 자락 나풀거리며 내 앞으로 걸어옵니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아내가 볼까 얼른 돌아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여보. 사랑해. 정말 사랑해. 내 목숨보다 당신을 더 사랑해.
긴 머리 소녀의 손을 잡고 암 병동을 나왔습니다.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다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저 높고 높은 가을 하늘 위에서 하늘 아버지가 우리 부부를 내려다보고 계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