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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증오의 씨앗, 산후 조리원(상)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날

by 이봄

13년 전 이야기.


첫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있었던 난 노산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던 터라 회복이 더디었다.



은퇴한 시아버지께서 용인 본가에서 아기를 직접 돌봐 주시겠다고 해서 우리는 서울 집을 정리했고, 본가로의 합가 준비를 완료한 상태였다. 내가 급하게 수술하느라 이삿짐 관련해서는 남편이 퇴근 후 차근차근 알아서 처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산후조리원에서 아기와 퇴원하면 바로 본가로 가서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면 되는 거였다. 시부모님이 먼저 강력하게 제안했고 원했던 일이므로 당연히 우리를 환영해 줄 거라 생각했다.




산후조리원 퇴원 일주일 전, 시부모님이 오전에 아기를 보러 오셨다.


더불어 나에게 안심하고 몸조리 잘하고 오라는 당부도 건네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그 장면은 몇 시간 뒤 지옥으로 바뀌었다.




시부모님이 가신 후, 몇 시간 뒤에 시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어쩐 일이세요?”


에미야… 흑흑흑…” 또 흐느끼는 목소리의 어머니.


어머니, 우세요? 무슨 일이세요?


“… 얘야, 잘 듣거라. 다음 주에 여기 오는 거 다시 생각하면 안 되겠니? 내가 몸이 너무 아파 아기를 돌보기가 힘들 것 같구나… 흑흑흑… 아가! 미안하다…”


…네?

나는 실신할 정도로 놀랐으나 애써 침착하게 말하려고 애를 썼다.


어머니, 아기는 아버님이 돌봐 주신다고 했잖아요?"


“그 양반이... 밥도 못하는 분이 무슨 아기를 보니? 결국 나에게 떠맡길 것이고 네 아버지는 내 보조 역할만 할 거다. 결국 계속 애를 보는 건 내 차지가 된단다. 내가 아기를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내가 몸이 심하게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으니 혹시 괜찮으면 네 친정에 가 있으면 안 되겠니? 아, 그리고 우리 장군이(남편)에게 내가 이 전화했다는 거 비밀로 해줘.”


“어머니, 저희... 집도 다 정리해서 갈 데도 없어요.”


"친정으로 가면 안 되니? 내가 너무 아파서 그래…흐흐흐”


“친정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라 그건 안 돼요. 아시잖아요?”


“그럼 어쩌니?... 난 죽을 것 같이 아파서…”


“어머니, 나중에 연락드릴 게요. 일단 끊어요.”


저기 장군이(남편)한테는 내가 말했다는 거 비밀로 해줘.”


“네?... 끊을 게요… 수유할 시간이라서요…”




전화를 끊었지만 난 휴대 전화기를 손에 들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 이게 무슨 일인가......'




아기의 친할머니는 제발 딴 집으로 가라고 전화로 울며 불며 부탁하는데,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고 잠 잘 자고, 모유 잘 먹고, 간호사 선생님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지내고 있다.



시아버지가 합가 하자고 해서 서울에 있는 오피스텔 집을 정리해서 갈 곳도 없는 상태였다. 친정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어서 아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황이고 오히려 간병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난 당시 식당을 운영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출산하느라 매장을 친동생에게 맡겨 두고 임시체제로 영업을 하고 있어 빨리 일터로 복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목표가 있어서 식당도 오픈하고 회사도 설립했기 때문에 시아버지도 우리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공감해 주어서 은퇴 후 기꺼이 육아를 전담해주기로 6개월 전부터 합의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합가 일주일 전, 산후조리원에 있는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제발 당신 집에 들어오지 말라는 건 어느 나라 경우인지, 또 당신 아들한테는 전화한 것을 왜 비밀로 해달라는 건지 도무지 시모의 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도대체 왜 시어머니는 아침에는 잘 키워보자고 우리 며느리 수고했다고 손을 잡아주고

저녁엔 전화로 절대 당신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우시는 걸까? '서프라이즈 파티'는 아니겠지...


그나저나 아기는 어디서 키워야 하나...




극도의 불안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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