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화: 첫 명절, 일당 요구한 며느리...

by 이봄

13년 전 이야기.


임신 4개월 차에 그 무섭다는 '시댁에서의 첫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며느리들이 넘어야 할 첫 관문이자 부부 갈등의 주된 원인이라는 말로만 듣던 그 명절!



다행히 시댁이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만약 제사까지 있었더라면 우리 부부는 아마 이 세상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41세 노산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광장시장에서 구입한 전과 과일 등을 사 가지고 시월드로 향했다. 시댁으로 가는 고속도로 차 안에서 너무 긴장해서인지 2시간 차를 타고 가는 것이 힘들거나 지루한 것도 몰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임신을 핑계로 집에서 혼자라도 쉬고 싶었으나, 결혼 후 ‘첫 명절 시댁 행’을 거부하기에는 임신 4개월이라는 명분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심하게 아팠다면 당연히 안 가도 되지만 말이다.


“자기야… 나… 너무 무섭고 긴장되네.”


“뭘 긴장해? 우리 엄마가 설마 죽이겠어?”


“… 하하하… 그렇지?”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살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명절에 시댁이라는 곳에 가다니... 참, 인생 알 수 없다.




어느덧 용인 본가에 도착했다. 앞으로 우리가 ‘합가’해서 살 집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일찍 가서 이것저것 익혀 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함과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거실을 가로지르는, 길고 긴 미시시피 강처럼 이어진 손님용 상들이었다. 아니, 무슨 연회장인가? 족히 한 30~40명이 앉아 식사를 즐길 수준의 사이즈였다. 여러 개의 상을 붙여 마련해 둔 것이었다.


‘제사를 안 지낸다고 해서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는 것이 아무 문제도 없을 거라고, 편할 거라고 생각한 나의 오산이었나… 저 길고 긴 교자상은 무엇이란 말인가?’


온 동네 사람 불러서 풍악이라도 울릴 참인가?




“왔냐? 아이고, 허리야… 어서 와라…”


시어머니의 첫인사는 역시 울음 섞인 신음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네! 어머니, 그런데 손님이 많이 오시나 봐요?”


얘, 우리 집에서 며느리를 맞이하고 첫 명절인데 덕담이라도 한 말씀씩 해 주시려고 친척분들 다 오실 거다. 내가 다 초대했어.”


“ 네? 아, 네...”




그 뒤로 난 5시간 동안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왔고, 상 차리고 치우기를 반복하고 이후 설거지만 3시간 했다.


몸에 좋다는 덕담은 약 10분 정도 듣고, 나머지 시간은 일만 했다. 이것은 흡사 식당에서 일하는 '노동 행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계적으로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노동을 왜 여기까지 와서 할까? 작장에서의 노동도 강도가 높아 쓰러질 지경인데 휴일에 왜 일을...




남편이 옆에서 도와주고 시아버님은 며느리가 임신했다고 자꾸 방에 들어가 쉬라고 했지만 디스크로 허리가 안 좋으신 시어머니가 일을 하고 계신데 며느리인 내가 임신했다고 어떻게 편안하게 방에 누워 밥도 받아먹고 음료수도 마시고 할 수 있겠는가? 온 친척분들이 속으로 천하에 못 배워 먹은 며느리라고 험담을 하시지는 않을까, 뒤에서 나를 평가할 수도 있는데 그런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쉴 수 없었다. 분위기가 그 환경이 '일을 계속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노약자와 장애인, 임산부, 차세대를 이끌어갈 아동들은 당연히 사회적 보호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나도 구세대에 속하는지 임신을 했다는 것이 무슨 벼슬이 되어 무조건적으로 공주 대접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주방 일이 선을 넘다 보니 더 이상 호의적인 입장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몸도 점차 지쳐 갔지만 모두가 즐거워야 할 명절에 난 왜 설거지를 3시간 넘게 하고 있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못 찾았다. 순종인가? 헌신인가? 도리인가?


다른 친척분들과 시부모님은 즐겁게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고, 여자들은 윷놀이를 하고, 남자들은 바둑을 두었다.


나는 임신 4개월에 당연한 듯이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제사를 지내는 집은 장 보는데 2주 정도, 음식 준비하는데 1~3일 정도 걸린다는데, 난 명절 당일에 와서 설거지 몇 시간 하는 걸로 지나치게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시아버지께서는 걱정이 조금 되셨는지 내가 몸이 무거우니 얼른 서울 집으로 출발하라고 재촉하셨다.



그때, 바로 그때! 그때!


시어머니께서 쓰러질 듯이 휘청거리며 과일을 들고 거실을 가로질러 소파 쪽으로 걸어가셨다.


“아이고…아아악… 허리가 또 아프네. 손님들 과일을 드려야 하는데…”




시어머니는 내가 가방을 메고 갈까, 말까 고민하던 그 순간에 갑자기 과도를 들고 과일을 깎기 시작하셨다. 우리 친척들은 시어머니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시는 걸 다 아셨다. 거기서 내가 바로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렸다면 나를 또 얼마나 욕했을 것인가? 다시 한번 '천하에 못 배워 먹은 며느리'라고... 아! 나는 욕먹기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욕 한 바가지 먹고 편하게 쉴 것을...


30명이면 도대체 몇 개의 과일을 준비해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난 어깨에 맨 가방을 내던지고 시어머니에게 다가가,



“어머니, 제가 할게요. 허리도 아프신 데 좀 쉬세요.”라고 말하며 시어머니 옆에 있던 과일과 칼을 들고 깎기 시작했다.


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장군 씨(남편) 당신은 오늘 나랑 얘기 좀 하자고.”




시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겠나? 대한민국의 70,80대 거의 모든 시어머니들은 구시대의 전통과 관습을 가지고 명절에 며느리들에게 도리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고 세대가 달라졌다. 명절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시어머니도 내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안 할 것이고, 나도 어머니의 사고체계를 배우려고 안 할 것이다.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 남편이 숨 쉬고 있다. 나는 남편과 담판을 지으면 된다.


늙은 신부이며 노산의 위험성을 잔뜩 안은 내가 피곤하거나 말거나, 그 명절 모임은 끝이 났고 시부모님은 집에 가져가라며 음식을 싸 주셨다. 다 내가 만든 거고 저것들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식기들을 세척해야 했던 이도 나, 그 음식꾸러미가 반가울 리가 없다. 하지만 시댁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아 빨리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밤바람이 유난히 차갑게 느껴졌다.


난 남편에게 말했다




“어디 가서 커피나 한잔하자!”


“임산부가 뭔 커피?”


“의사가 하루 한 잔은 괜찮다고 했어.”


“그래, 알았어. 어디 갈까?




근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서로 커피를 홀짝거렸다.


약 5분간 서로 아무 말도 안 한 것 같다. 남편도 내가 어떤 기분일지 알 것이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 나 일당 줘!"


“뭐?”


“앞으로 어머니 댁에서 일할 때는 시간당 만 원 쳐주고, 어머니께 그렇게 전해줘.”


“일… 당?”


“부탁이야. 오늘 일한 것은 아주 완전한 노동, 그 자체였어. 난 그 대가를 받아가겠어.”




남편은 다음 명절부터는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난 받아들였다.

시어머니도 몸이 아프다고 하시고 나도 임신을 해서 여러모로 힘든데 누가 명절 음식을 만드나...

각자의 상황에 맞게 명절을 보내는 게 맞는 게 아닐까. 남편이 계산해 보니 명절 때 소비되는 돈과 외식비가 비슷하게 들어갈 것 같다며 시어머니께 우리의 의견을 전달하겠다고 했다.


사실 명절 준비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2주 전부터 장보기에 돌입하면, 물론 경제적 수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대략 50만 원~100만 원 정도 지출하게 되고 게다가 여러 사람의 노동이 추가된다. 그럴 바엔 음식점에 가서 간단히 밥을 먹고 커피 한잔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니면 다 같이 음식 준비를 하거나...



그 이듬해 우리 가족은 돈을 모아서 시댁 근처 음식점에서 간단히 밥 먹고 차 한 잔 하고 명절을 마무리했다. 앞으로 친척들이 방문한다 해도 식사 준비는 최대한 간소하게 준비하기로 했다.



노산 며느리 일당 요구! 내가 이런 요구를 할지 꿈에도 몰랐다



‘아, 앞으로 결혼 생활이 쉽지 않겠구나.’




첩첩산중이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5화5화: 상견례 후, 그때라도 끝을 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