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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증오의 씨앗, 산후조리원(하)

시어머니를 증오하기 시작하다.

by 이봄

그날 밤, 산후조리원으로 남편이 왔다. 사실 오후에 시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을 말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왠지 비밀로 해달라는 어머니의 말씀을 지켜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주일 뒤면 아기와 난 어디로나 가서 지내야 하는데, 갈 곳이 없었다. 아무래도 남편과 상의해야 했다.


“아까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

“응, 왜? 뭐라고 하셔?”

“저기…”

“말해봐…”

“저기… 우리 들어오지 말라고 하시네. 같이 살지 못하겠대. 힘들 것 같대.”

뭐? 뭐?..."

“어쩌지?”

“사시던 환경이 바뀔 것 같으니까 좀 예민해지셨나 봐. 자기는 신경 쓰지 마. 내가 아버지, 어머니한테 다 전화해서 해결해 볼 게.”

“그래, 잘 얘기해 봐.”




자정이 넘은 시간, 산후조리원 내 신생아실에 가 보았다. 작고 여린 존재들이 새근새근 자고 있다. 내 새끼도 그 무리 사이에서 자기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르면서 가장 평온한 미소를 띠며 자고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내가 어쩌자고 준비도 없이 아기 낳기를 강행했을까?’

‘내가 쟤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아니, 아기는 원래 저렇게 누워만 있는 건가?’

‘내가 당장 내일 죽기라도 한다면 쟤는 어떻게 되는 거야?’

‘……큰 일 났다.”



막상 아이를 낳아 보니 이 ‘아기’는 내 목숨도 내어줄 수 있을 만큼 사랑스럽지만 연로하신 시아버지가 돌볼 수 없는 어려운 존재였다. 우선 밤낮이 없고 3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며 여하간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호의가 감사하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시어머니는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마음의 변덕이 심하셔서 설사 '합가' 한다 해도 아기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을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베이비시터 구인 구직 사이트’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회원 가입하고 24시간 정도 뒤지니 조선족 분이지만 아기를 사랑할 것 같은 적임자를 찾았다.


집에서 주중에 같이 살고 주말에 이모님 집에 가셨다가 일요일 저녁에 복귀하는 스케줄로 월 160만 원에 모셔왔다. 장사와 사업을 시작하는 마당에 일에 올인하고 싶었고 남편도 ‘알겠다...’ 정도로 내 의견을 수용했다. 일을 막 벌리는 시기여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른 산모들은 출산 후 1년 정도 육아휴직을 가지거나 보통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올인한다는데 나는 출산 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시아버님도 시어머님도 믿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집을 구할 시간도 돈도 충분치 않았다. 무엇보다 우선 합가 해서 아기를 시댁에 두고 길러 보기로 결정했다.


아기 돌보는 이모님도 있으니 시부모님이 체력적으로 힘든 점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객식구와 갑자기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이 부담이라면 부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제적인 효율을 생각해 같이 살기로 했는데 오히려 고정비, 이모님의 인건비가 추가되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산후조리원에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여기에서도 오롯이 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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