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 난 외식 프랜차이즈 소기업을 운영하면서 본점 식당도 관리하고 있었다. 운 좋게도 장사가 잘 돼 10평 미만 매장에만 알바와 직원 합 10명 정도 근무했다. 문제는 내가 전적으로 메뉴개발을 맡아서 계속하고 있었던 시점이라 시간이 전적으로 부족했다.
학원 선생을 하다 전직을 한 케이스여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사무라이도 아닌데 ‘실패'는 곧 ‘죽음’이라는 생각으로 일했다. 완전히 악령이 날 지배한 것처럼 일을 사랑하고 일에 미쳐 있었다. 남편이 한 때 내가 아이들 보다도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나이 40세에 결혼, 출산, 창업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나 이 세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었다. 우리만의 메뉴를 만들기 위해 잠도 안 자고 일하며 메뉴 개발에 몰두했다. 음식 쪽은 ‘메뉴개발’, ‘특허’라는 게 유명무실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말이다. 대박이 난 메뉴를 무조건 따라 하는 문화가 우리나라에서는 너무나 당연하다. ‘돈’ 앞에서는 상도도 없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날도 매장이 아주 바쁜 날이었다.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느라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을 때 전화가 왔다. 집에서 두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이었다.
“이모님, 무슨 일이세요? 아이가 어디 아파요?”
“… 아니, 딸기 엄마… 그게….”
그때 수화기 너머로 시어머니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아줌마, 내 고등어 어디다 뒀어? 고등어, 고등어 찾아내! 고등어, 고등어!”
시어머니는 아기를 돌보는 베이비시터 이모님에게 고등어를 찾아내라고 아우성이었다. 점심시간이라 너무 바빠서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심이 되는 순간, 갑자기 이모님이 말을 이어갔다.
“아휴, 1 시간 전부터 자꾸 냉장고에서 고등어를 찾아내라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잖아요… 애들도 울어대고, 참… 어찌해야 될지”
“어머니 바꿔 주세요.”
이모님은 전화를 바꿔 주었다.
“어머니? 도대체 아기 돌보는 이모님한테 뭘 자꾸 시켜요?”
“아니,, 난 그런 적 없다… 아이고…”
“ 제가 다 들었어요. 자꾸 고등어 찾아내라고 하셨잖아요!”
“ … 얘, 난 그런 적 없다…저 아줌마가 뭘 착각한 거지… 콜록콜록...”
이쯤에서 나오는 기침소리와 신음소리, 나에겐 아주 익숙한 시어머니의 효과음이다.
“어머니! 제발 거짓말 좀 그만하세요! 제가 다 들었다고요, 도대체 뭔 고등어예요! 오늘은 뭘 또 찾아내라고 그러세요. 아, 진짜 여기 바빠 죽겠는데 도움은 안 주고 자꾸 집에서 이모님한테 뭘 자꾸 시켜 전화 오게 만들어요,,, 아! 아악! 아아악!”
‘… 흑흑흑 , 에미야 난 그저…”
“아아!.. 듣기 싫어요! 듣기 싫어요!”
난 이성을 잃었다. 가게 밖에서 통화를 이어가다 악에 받쳐서 광인처럼 '악!'소리를 20분 넘게 질러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지만 정신을 잃은 나는 멈추지 않았다.
자식이 밖에서 어떻게든 브랜드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 아기를 직접 돌보는 것도 아니고 베이비시터 이모님까지 상주시켜 두고 애들과 시모 식사, 청소까지 부탁드리고 있는데 이모님에게 자꾸 또 다른 걸 시키니 버틸 수 있겠는가. 아기를 잘 돌보는 이모님을 구인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로 어렵다. 그런데 자꾸 다른 걸 시키면 이모님들은 일을 계속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날 난 일을 마친 후 집에 들어가는 게 무서웠다. 맨 정신에 집에 갔다가 시어머니와 낮에 일어난 일로 크게 싸울 것 같았다. 몸도 피곤한데 퇴근해 또 싸운다? 안 된다. 못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