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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봄 Mar 01. 2024

36화: 며느리 VS 수녀님? (1)

왜 수녀가 되기를 원했을까?



살면서 가장 숨기고 싶었던 10개 정도의 장면이 사진이 되어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행위 주체인 나조차도 잊어버린 장면들. 그리고 이윽고 '아악, 꺄악, 아귀작, 크르릉, 꺄악...' 하는 소름 끼치는 영화 속 괴물들이 낼 법한 소음이 들려왔고 난 정신을 잃다.



30세 때. 

맨 몸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다 왼쪽에서 달려오던 택시와 정면충돌 후 내가 경험한 광경과 소리였다. 사람이 사후세계에 들어가기 전의 공통된 경험들이라고 하는데 나도 보고 들은 것이다. 그곳이 지옥인지 천국인지는 구체적으로는 모르겠지만 직감적으로는 지옥의 입구인 듯했다. 난 이 사실을 나중에 엄마한테만 이야기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엄마는 믿지 않았다.'어디 가서 이 이야기를 하면 날 허언증 환자라고 비웃겠지?'그래서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세상을 알면서부터 30세까지 내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게 쉽게 죽을까만 연구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흡연과 술이었다. 담배를 많이 피우면 폐암에 걸릴 거고 술을 많이 마시면 간암에 걸릴 것이다,라고 나름 기준을 정해 술을 마시면서 양손으로 담배를 피워댔다.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죽는 게 소이었다.


용기가 안 나서 한강 대교에서는 못 떨어져 죽겠고 수면제 약국에 가서도 입이 안 떨어졌다. 심지어 신문사에서 일하던 친구가 소개해준 특별채용 면접시간에도 집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맥주를 한 30병 정도 마시고 있었다. 남들이 바라는 결혼이나 취업 따위는 나한테 하나도  단 1%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죽기 전까지 술 마실 돈만 벌면 되었다. 엄마가 세금 내라고 준 돈, 대학교 교재비, 아르바이트비 등등 난 그 모든 돈으로 술을 마셨다.



남은 가족들이 갑작스 충격을 받지 않게 천천히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죽어가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내가 주도하는 느린 속도로의 추상적인 죽음이 아니라  이건...이런 죽음은...


'이건 내가 그토록 갈구했던 죽음이 아니잖아?'



'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고 의사들 수 십 명이 나를 둘러쌌다.


 그중 최고참으로 보이는 의사가 단순 명료하게 말했다


"왼쪽 팔은 정상인처럼 위로 올라가지 않을 거, 왼쪽 다리가 조금 짧아질 수 있어요."  


이 이야기는 곧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나중에 장애인들을 돌보며 또는 기부하며 사는 것까지는 생각했지만 내가 장애인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장애를  안 가지게 되었지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육신의 장애,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35세 때 엄마가 암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1기라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수술을 했는데 회복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을 때  수십 명의 의사들이 회진을 와서 엄마의 옷을 들추어 수술 부위를 체크했다.


'이건 사람의 모습이 아니잖아?'


가슴 바로 아랫부분에서 하복 맨 아 부분까지 절개했는데 담당 의사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길게 절개해 수술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거요... 환자 분이 의사 잘 만났소!"


하면서 몸의 복부 전체를 절개해 꿰맨, 장난감 곰인형처럼 무력하게 누워있는 엄마를 앞에 두고 자화자찬을 했다. 감사하기는 했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누워있는  인간인, 엄마나 그 앞에서 자의 수술 실력을 자랑하는 의사나... 모든 게 이상하게 보였고 얼떨떨했다



극심한 허무함이 밀려다.



이 허망함은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철학책을 뒤져도 해결이 안 되었다. 우주와 죽음을 연구하던 석학들도 연구과제를 미완으로 남겨놓은 체 죽어 나갔다. 아무도 이 죽음과 허무에 대해서 명료한 답을 못 해주었다. 그러던 중  '골드문트와 나르치스'(헤르만 헤세)에서 골드문트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떠 올라 다시 책을 펼쳤다. 내 삶은 골드문트처럼 감각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남은 삶은 성직자인 나르치스처럼 살고 싶었다. 수도원에 갇혀 여자도 못 만나고 기도만 하고 사는데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평화롭게 웃으며 죽어갈 수 있을까.그가 의지하고 사랑하는 신은 누구인가.본 적도 느낄 수도 없는 대상을 사랑하고 의지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수도사 '나르치스'의 확신과 믿음이...


그때 마침 전화가 온 지인(후에 남편이 됨)과 엄마가   입원한 병원 근처에서 만나 맥주 한 잔을 두고 근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다 불쑥 그에게 말해 버렸다.


" 아무래도 난 수녀가 돼야겠어!"




"전 수녀가 되고 싶어요!!!"


'갑자기? 수녀원은 도피처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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