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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 PostModern Oct 17. 2022

'해라체'와 '물음표체'

가르치는 말투, 배우고자 하는 말투

 사람은 대화하며 살아간다. 소통하며 살아간다. 흔히, 대화의 기술 또는 소통의 기술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말투'를 강조한다. 나의 말투를 돌아보며, 누구든지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 곧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 다시 말해 아무나 배울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해. 저렇게 해.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해야 돼"


 언제부터 내 입에 '이래라저래라' 식의 말투가 붙게 된 걸까. '이래라저래라' 식의 말투는 그 누구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래라저래라'가 오면 '이러쿵저러쿵' 또는 '구시렁구시렁'이 오는 것이 거의 공식이라고 할 정도로 '해라체'는 피해야 할 말투다. 나는 이런 말투를 '가르치려고 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많으신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만 하면 가르치려고 한다. 자기가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느끼고 싶어서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언제나 가르치는 것에 익숙하다.


 배우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배우지 않아도 '가르치는 말투'는 너무 쉽게 구사한다. 이제는 배우고자 하는 말투, 더 나아가 배우고자 하는 태도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말투는 '해라체'가 아니라 '물음표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저 부분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점찍는 문장을 구사하는 말투에서 물음표를 던지는 말투로 바꿔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운다.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배움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결국 가장 좋은 선생, 스승이 될 것이다. 신기하게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해라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취한다. '해라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물음표체'를 구사하며 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배움의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해라체'를 구사하는 사람에게 '물음표체'로 대하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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