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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 PostModern Mar 25. 2024

읽기 어려운 글을 쓰는 것 : 지식의 하향평준화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무슨 글을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있는가. 글에 대한 생각은 하루도 빠짐없이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썼는지, 왜 이렇게 썼는지 살필 수밖에 없다. 요즘은 하나의 주제를 다룬 책 보다, 여러 글을 묶어놓은 책을 많이 읽는다. 읽기 쉬운 글과 어려운 글 사이에서, 내가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박두진 시인의 수필. 나는 박두진 시인의 시를 좋아한다. 정제된 단어와 절제된 표현을 본받고 싶다. 박두진 시인의 수필은 많이 없다. 대부분 자기가 쓴 시에 대한 글, 시 자체를 고민한 글이다. 박두진 시인의 시는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수필은 어려운 구석이 많다. “시인의 시에 대한 가치관이나 자세, 혹은 그 개성적 특질에 따라서 이 영시대적인 시간적 가치관과 당시대적인 공간적 시 의식은 절대시 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오히려 어떤 시인과 시는 그러한 영시대적인 시적 조준으로 당시대적인 것을 측정해내려 들고 그러한 당시대적인 시인과 시는 그 당시대적인 것을 측정해내려 들고 그러한 당시대적인 시인과 시는 그 당시대적인 표현의 특질을 통해서 영시대적인 시적 가치를 창조하려고 의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는 언제나 시로서 그대로 변치 않는다는 반진보주의적인 입장과 시는 언제나 부단히 변하며 있다는 진보주의적인 주장은 다른 일반적인 철학, 역사학, 문학, 예술학에서의 두 입장이나 주장과 다를 바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1)” 시대적 정서가 다르다고 해도, 불과 40년 전의 글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문장이다. 이렇게 어려운 글이 좋은 글이라고 단언할 수 없지만, 현재 출판되는 책은 어려운 책이 많지 않다. 박두진 시인의 수필을 읽으며, 나는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질문한다. 


 지식의 하향평준화. 이 시대의 글쓰기 방향은 읽기 어렵게 쓰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평가된다. 나는 여기서 ‘읽기 어려운 글’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이해하고자 한다. 작가가 글을 쓸 때 읽기 어려운 글을 쓴 것인지, 아니면 독자가 읽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에 읽기 어려운 글이라고 평가된 것인지 구분해야 한다. 어떤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담인데, 데리다의 저작은 읽으면 최근 강해지고 있는 ‘이해하기 쉽게 쓰지 않는 것이 나쁘다’라고 하는 독자 중심의 태도가 얼마나 천박한지 깨닫게 됩니다. 데리다는 매우 복잡한 것을 쓰는데, 그것은 데리다 자신이 먼저 다른 사람의 텍스트를 고해상도로 읽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애초에 ‘읽는다는 것은 이 정도는 읽는다는 거죠?’라는 기본값(default)의 기준이 턱없이 높았기 때문입니다.2)” 자크 데리다의 사상을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읽기의 수준이 낮아졌음을 지적하고자 인용했다. 즉, 읽기 어려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읽기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기에 ‘읽기 어려운 글’로 정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식의 수준이 낮아졌다고 하면 일반화일지 모르지만, 지식의 하향평준화가 이루어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전문성과 대중성, 내가 쓰고 싶은 글과 다른 사람이 읽고 싶은 글, 시대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책과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책 사이에서 나를 단련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다. 계속 쓰다 보면, 누군가를 좇아가다 보면, ‘나’의 문체가 생길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바라지는 ‘수준 낮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읽기 어려운 글이라 불리는 것에 내가 맞추고자 한다. 





참고문헌


1) 박두진, 『시적 번뇌와 시적 목마름』, 신원문화사, 1996, p.197.

2) 지바 마사야, 김상운 옮김, 『현대사상입문』, 아르테, 2023,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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