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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조 Jul 18. 2023

이해 좀 해주세요

아니,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래요. 왜 선생님이냐고요? 그야... 그냥 지금 기분이 그래서죠 뭐. 집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선생님 인상도 좋아 보이고? 하하 죄송해요. 제가 원래 이런 앤 아닌데. 근데 뺨 한 번 때려봐도 돼요? 앗. 죄송해요. 묻기도 전에 때려버렸네. 죄송해요 하하. 그래서, 궁금한 거요? 아차. 그게 말이죠,

남이 버린 쓰레기 뒤지는 게 괜찮은 건가요? 뒤지기만 해도 기분 더러운데 못 입는 옷, 찢어 버린 고지서와 명함, 이면지까지 훔쳐가고는 갈기갈기 찢어놓은 쓰레기봉투는 그냥 덩그러니 집 앞에 뒀다고요. 최소한 묶어놓은 부분을 풀어 가져가든지 찢었으면 다시 테이핑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명함이나 이면지는 재활용하면 정보 다 털릴까 봐 최대한 찢어서 쓰레기봉투에 버린 건데 그걸 또 뭐 하러 가져가는 건지...

몇 번은 저도 오죽하면 그러겠냐며 참았어요. 근데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하잖아요. 너무 자주 그러잖아요. 어제도 저녁에 버리고 밤에 편의점 가려고 보니 집 앞에 제가 버린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요. 선생님 같으면 화가 안 나시겠어요?

어느 날은 마주쳤어요. 그래서 하지 마시라 그랬더니 저를 쏘아보며 대꾸도 안 하더라고요. 안 가고 멍하니 보고 있으니 어차피 버린 쓰레기인데 뭐 어떠냐며 오히려 화를 내지 뭐예요. 어디 딱히 신고할 데도 없어요. 그런 사람을 벌금을 물게 하겠습니까, 감옥에 넣겠습니까. 경고문도 써봤어요. 경고문이라고 해봐야 제발 쓰레기 좀 훔쳐가지 말아 달라고, 봉투라도 좀 찢어놓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었지만요.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려고 하는데도 아. 진짜 인생, 속상하네요.

당근마켓에 동네생활이라고 있거든요? 거기에 뭐 방법이 없냐고 올려 봤어요. 저야말로 오죽하면 그런 데 글을 다 썼겠어요 SNS 같은 것도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런데 다들 뭐라는 줄 알아요? 그깟 쓰레기 좀 가져가면 어떠냐고요. 오죽하면 그러겠냐, 쓰레기봉투 그거 얼마나 한다고 그러냐며 그냥 좀 넘어가 달라고 해요. 하, 참. 그러니까 제가 엄청 넘어가줬다니까요. 실질적인 도움은 못 받아도 공감이라도 받고 싶었어요. 속상하시겠어요, 바닥에 흩어진 쓰레기 줍고 다시 버리고 너무 힘드셨겠어요 뭐 그런 말이라도요.


제 옆집에는 노부부가 살거든요? 근데 주말마다 손주들이 놀러 와요. 평일에도 가끔 오고요. 근데 아침부터 소리를 빽빽 질러 주말마다 늦잠을 잘 수가 없어요. 늦잠이 뭐예요, 아침 7시부터 와요. 도대체 왜? 할머니 할아버지야 그렇다 쳐도, 부모들은 그걸 마냥 두고만 보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게 진짜 말도 안 되게 소리를 빽빽 지른다니까요? 자고 있다 깜짝 놀라서 깰 정도로요. 애들이 다 그렇다고요? 선생님. 그 소리, 하루에 3분 간격으로 10시간씩 들으면서도 할 수 있으시겠어요? 물론 저도 이웃끼리 얼굴 붉히기 싫으니까 주말엔 그냥 나가버려요. 피곤해서 집에서 좀 쉬고 싶어도 어디든 가버린다고요. TV를 틀거나 음악을 들어도 소용없어요. 이어폰까지 끼고 크게 듣지 않는 이상... 아니, 제가 아늑한 제 집을 놔두고 주말마다 돈 쓰러 꼭 나가야겠느냐고요.

요즘 극장에선 사람들 어쩌는 줄 알아요? 아니 이해가 안 가는 게, 영화 보러 와서 왜 플래시까지 켜가며 셀카를 찍어요? 내가 영화를 보고 느끼는 것보다 셀카로 인증을 남기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요즘 사람들은? 그럼 입장하기 전에 영화표나 들고나 찍든가, 왜 굳이 자리에 앉아서 광고 나오는 타이밍에 찍는 건데요? 심지어 영화 보는 와중에 문자 보내고 영상 통화 하는 사람까지 봤어요. 그 깜깜한 곳에서 스크린에만 딱 집중하고 있는데 작은 사각형의 강한 빛에 눈이 아찔해져요. 지랄도 풍년이라고 하죠? 요즘 극장이 그래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니 왜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이해해 달라는 말만 하는 거예요? 외모가 준수한 게, 집안이 좀 넉넉한 게, 학벌이나 직업이 좀 괜찮은 게 그렇게 죄가 되나요? 뭘 그렇게 맨날 이해하라고만 하냐고요.

'쟤 원래 미친놈잖아. 그냥 장난치는 거야.', '네가 나보다 행복하잖아. 좀 봐주면 안 돼?', '가난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깟 몇 만 원 없어도 사실 넌 괜찮잖아. 네가 좀 참아.', '쟤, 외모콤플렉스가 심해서 그래. 넌 맨날 깔끔하고 단정하고 예쁘장하니까 샘이 나서 그런 거지. 잘난 네가 좀 참아~', '못 배워서 그래. 네가 좀 이해해라!', '내가 성격이 이렇게 생겨먹은 걸 어떡하냐.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하. 참. 뭐 자랑이라고. 도대체 뭐 자랑이라고 그런 말들을 한답니까? 위해준답시고 하는 말도 그게 진짜로 위해주는 말입니까? 저는 뭐 인생 마냥 쉽게만 살았겠어요? 타고난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고 죽어라 노력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에 간 거고요, 남들 놀고 여행 다닐 때 아르바이트 하면서 학점에 목맸고요, 회사 입사해서도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고요. 여자라서 커피 타고 설거지하는 것도 군말 없이 했어요.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거 싫어해도 엠티니 워크숍이니 가면 누구보다 열심히 참여했어요.

내가 누리고 있는 생활은 물론 운도 있겠지만 대부분 나의 노력으로 일궈낸 것인데, 어떻게 그건 다 묵살하고 넌 살만하니 남들을 배려하라고만 해요? 뭔가 좀 잘못된 거 아닙니까?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정도가 심하잖아요. 그런 소리 이젠 지긋지긋하다고요.

그래서 좀 찡찡대면 또 뭐라고 해요? '넌 인마, 살만한 거야. 너보다 힘든 사람이 훨씬 많아.'라고 하죠. 뭐가요? 누구요? 어떤 부분에서요? 전체적으로 볼 때 살만해 보이면, 어느 한 부분의 치명적이고 깊은 고통은 없는 셈 치는 건가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다들 그렇게 사나요? 아, 제가 또 유난인가요? 엄살인가요? 하여간 지긋지긋해 죽겠다고요.

도대체 누가 누구를 평가하고 재단하나요? 사람들의 객관성이란 건 도대체 뭔가요? 대중과 좀 다른 생각을 하면 왜 틀린 사람이 되어야 하나요? 소신을 지키는 게 왜 사회생활을 못 하는 게 되나요? 의로운 행동이 왜 유난 떠는 행동이 되나요? 태어나길 부자로 태어난 사람들은 왜 노력 없이 갖고 태어난 거라고 욕을 먹어야 하며, 아름다운 사람들은 왜 외모로 인기를 누린다고 욕을 먹어야 하나요? 그거 다 그냥 질투잖아요. 샘나서 내가 못 누리는 거 쟤도 못 누리게 하고 싶어 심통 부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도대체 왜들 그러는데요. 내가 못 가진 걸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게 왜 화가 나는데요? 그냥 부러운 마음을 인정하는 게 그렇게나 힘든 걸까요? 그거야 말로 자아도취 아니에요?


그래도 뭐, 언젠가부터는 체념했어요. 기대도 안 하고요. 저에게 인류애라는 게 있었나 싶네요. 슬프지 않아요? 인간인 제가, 인간들과 잘 지내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제가 인간을 혐오하게 된 게요. 선생님 집에 무단으로 들어온 것도, 약간의 위해를 가한 것도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어디에 풀 곳이 필요해서 그래서 그런 건데. 문제가 되나요? 뭐 이깟 일들이 정신적으로 힘드냐고요? 글쎄요... 선생님은 이런 일 안 겪어보셨어요? 그럼 공감 못 하실 수도 있긴 하겠다. 그래도 매일 평안하시고 가족들 다 화목하시죠? 그럼 그냥 넓은 아량으로 미친년이다~ 미친년한테 잘못 걸렸다~ 하고 저도 이해 좀 해주세요. 저도 선생님한테 딱히 악의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스트레스 좀 풀려고 이러는 거예요.

에? 무슨 소리예요 죽이진 않을 거예요. 제가 피도 무서워 하고 요리할 때 고기나 생선도 못 썰어요. 뭐 어디 가둬놓고 사라져버릴 수는 있겠죠. 그러고보니 가두는 건 안 무서울 것 같네요. 내 손에 피도 안 묻고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도 아니잖아요? 도대체 왜 이러냐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냥 지금 기분이 그랬다니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요? 가족이 있다고요? 하하 저도 다 있어요. 그냥 살다 보니 미친년한테 잘못 걸렸다고 생각해주세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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