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대 미학사상(2)
원대의 예술가들은 이제 벼슬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온전히 즐기기 위한 예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전 글에서 원대 미학의 큰 흐름을 알아보았으니 각 분야에서 어떤 인물들이 활동했는지, 아름다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왕약허는 강서시파를 격렬하게 비판했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대표적인 강서시파 시인이었던 황정견의 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명언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단지 교활한 표절일 뿐이다.
왕약허가 강서시파를 엄청 비판하긴 했지만, 사실 형식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문장을 이루는 근본, 큰 틀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왕약허가 황정견을 이토록 신랄하게 비판한 이유는 황정견의 시에 진실한 감정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왕약허가 시의 창작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자득(스스로 얻음)과 진실성 진술이었고, 주관의 진실한 체험을 통 해서만 미적 표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문장의 형식미보다는 내용의 진실성이 중요했고 창작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왕약허와 마찬가지로 경험과 정감을 중요시한 인물이다. 원호문은 몸으로 직접 겪은 경험을 기초로 창작한 시만 진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실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했고 억지로 과장하고 수식하는 것을 반대했다.
눈이 보는 곳에 마음이 생겨 신구가 저절로 신묘해지고,
어둠 속에서 더듬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그림을 그려 진천의 경치를 내놓으려는 마당에
직접 장안에 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될까? -원호문
원호문은 작가의 인격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인격을 갖추지 못한 작품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허위라고 말하면서 작가의 내면적 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만약 예술이 마음의 표현이라면 그 마음이 거짓될 때에도 작품이 작가의 인격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위의 두 사람이 강서시파를 반대했던 것과는 달리 강서시파의 창작풍조가 여전히 이어지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방회’이다.
시는 우선 격이 높고 뜻에 도달하여야 하며 또 말이 솜씨 있는 것이 최상이다.
뜻에 도달하고 말은 솜씨 있으나 격이 높지 않은 것은 그다음이다.
격도 없고 의도 없고 또 말도 없으면 가장 낮다.
방회가 주장한 이 문장들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교묘한 언어와 비천한 뜻으로 격고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주장처럼 언어솜씨가 의에 도달하는 것 자체를 아주 기본적인 기초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호지율은 최초의 공연예술 총론을 주장한 인물이다. 원대 무대의 새로운 점은 조정군신만 무대를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백성의 살림이 많이 모인 곳에서 공연했고 상인들이 무대에 등장하기도 했다. 연기자의 기본적 자질을 개괄한 공연예술 총론 ‘구미설’을 주장했고, 희곡의 창작이 우울한 마음을 풀어버리거나 털어버릴 수 있다는 ‘희곡 효용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백여 명의 원대 기녀의 생활을 소개한 [청루집靑樓集]의 저자이다. 당시는 기녀의 대다수가 배우였다. 하정지는 [청루집]에서 어떤 경멸의 뉘앙스도 없이 그들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합당한 평가를 내렸다.
[녹귀부錄鬼簿]의 저자이다. [녹귀부]는 예술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금나라와 원나라 희곡 작가의 생애와 작품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성현군신과 가문도 비천하고 직위도 낮지만 재주가 훌륭하고 박식한 희곡작가 사이에는 차별이 없다.
위와 같은 그의 주장은 속문학작가가 문화예술주체로 당당하게 등장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종사성과 하정지의 이러한 관점은 통속적 대중문화를 업신여기지 않고 그 고유한 가치를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원대 희곡 이론가인 주덕청은 [중원음운中原音韻]이라는 원 잡극 창작 기본 음향서를 저술했으며, 후대 희곡 창작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저서이다. 중국어는 같은 단어도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곤 한다. 거기서 오는 어려움 때문이었을까. 주덕청은 자연스러운 음운현상에 따라서 음률을 정해 말의 의미가 혼란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운(음향, 울림, 여운)은 모두 자연 음을 지키고
자(글자)는 천하의 음을 능통하게 한다.
시를 계속 읽으면 자연스러운 운율이 생기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음률에 치중되어 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당시 음향서로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원대 전체의 음악론이라고 칭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주덕청의 음악론
1. 자연스러움에 바탕을 둬야 한다
2. 언어는 잘못되더라도 음률을 해쳐서는 안 된다.
3. 곡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
先要明腔, 後要識譜, 審其音
선요명강, 후요식보, 심기음
먼저 깨끗한 속을 만들고, 뒤에 악보를 알면, 그 음악을 깨닫는다.
조맹부는 자신의 회화이론으로 원대 회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미술계에 몸 담그고 있어서인지 오늘의 글에서 유일하게 초상화를 찾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의 회화이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1. 고의古意 : 그림을 그리는 데는 고의가 있음을 귀하게 여긴다.
2. 이서입화以書入畫 : (직역) 글로써 그림에 들어간다.
고의의 사전적 정의는 ‘옛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고의론은 창작 주체의 능동성을 강조한 이론, 이서입화론은 ‘어떻게 그리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글로써 그림에 들어간다는 의미에 대해 조맹부는 이렇게 말했다.
돌은 미백과 같이 그려야 하고 나무는 주와 같이 그려야 한다.
여기서 ‘미백’과 ‘주’는 서체를 말한다. 조맹부는 만약 어떤 사람이 이에 능하다면 반드시 글과 그림의 근본이 동일한 데서 온 것임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글씨체들을 그림의 한 종류로 본 것이 아닐까? 실제로 원대에는 서예를 회화에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서화의 통일을 모색했다고 하니 옳은 추측일 것 같다.
원대의 미술 저술은 현대에 남아있는 것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서화의 통일을 모색했다는 점과 대나무, 매화, 초상(화)에 대한 전문적인 이론이 나타났다는 점도 특징 중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원대의 미술은 주관적이고 내면적인 정감을 표현하고 있고, 이것은 시대의 격랑에 초연하게 참되고 영원한 것을 지향하려던 문인들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