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속 에피소드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관점에서 새롭게 창조된 이야기입니다.
비리를 파고들기 시작한 뒤로, 미올의 주변은 조용했다. 그러나 평온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를 피하지 않았지만 환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묘한 거리 조절.
눈을 맞추지 않았고, 대화가 흐르다가도 미올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다.
누군가의 적대가 아니라, 여럿의 사소한 외면이 쌓여
미올은 조금씩 고립되어 갔다.
그날도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미올은 집에 갈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빈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며칠째 들여다본 예산표가 놓여 있었다.
숫자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힘든 건 요 며칠 사이 자기 안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목소리들이었다.
먼저,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가왔다.
그만해도 돼. 누구도 너에게 이런 걸 바라지 않아.
너만 이러고 있는 거야. 그냥 잊어.
그 말은 따뜻해서, 오히려 위험했다.
이어 거친 목소리가 밀려왔다.
너를 버린 사람들에게 똑같이 돌려줘.
이 회사도, 그 팀장도, 다 드러내버려.
모두가 너를 외면했잖아.
분노는 언제나 정의의 얼굴을 하고 왔지만 한 겹만 벗기면, 그건 상처의 열기였다.
조금 뒤, 축 처진 목소리가 흐릿하게 스며들었다.
뭐 하려고 해?
네가 뭘 알아낸들 바뀌는 건 없어.
수고만 늘어날 거야.
허무는 힘도 들이지 않게 마음을 침몰시켰다.
그리고 익숙한 말투가 들렸다.
조직이 오랫동안 그녀에게 들려주던 말이었다.
너 때문에 일이 커진 거야.
사람들이 떠난 이유도 너 때문이지.
너만 깨끗하면 다야?
그 말이 가장 아팠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린 것 같았지만 실은 미올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달콤한 목소리가 아주 가까운 데서 속삭였다.
생각해 봐.
너는 추천도 받았고, 능력도 있어.
지금은 잠시 눈 감고 지나가면 돼.
그 구조 안에서 너도 올라갈 수 있어.
그 목소리는 유혹이 아니라 미올 안의 어떤 갈망을 정확히 짚어냈다.
그 점이 더 무서웠다.
미올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조용한 사무실.
그 침묵과 반대로 내면의 목소리들은 시끄러웠다.
한참 후, 여러 목소리가 잦아들고 난 뒤에야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은 누군가 가르쳐 준 문장도, 책에서 찾아낸 명언도 아니었다.
흘러간 밤들,
애써 숨긴 분노,
흔들린 자아,
사람들의 무관심이 서서히 한 점으로 모여 미올에게 속삭인 말이었다.
그때야 오래전 읽었던 문장이 떠올랐다.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것으로 존재한다.”
— Jean-Paul Sartre, Existentialism Is a Humanism
그 문장이 결심을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미 마음속에 생겨난 결심이 무엇인지를
미올에게 확인시키는 말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장.
“행동하지 않는 절망은 아무 의미도 없다.”
— Albert Camus, Notebooks 1935–1942
절망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져도 도망치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 그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증거라는 것을
미올은 알 것 같았다.
미올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책상 위의 서류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외롭더라도… 해야겠다.”
조직을 바꿀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
올바른 것이 반드시 이긴다는 확신도 없었다.
다만, 그 모든 무관심 속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겠다는 그 조용한 결심이 미올을 지켜주고 있었다.
미올은 불을 끄고 천천히 사무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