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난장판이 되어있는 씽크대 앞에 서서 식세기의 문을 엽니다.
"식세기(식기 세척기)야 너랑 나랑 설거지 하자."
퍼즐 맞추듯 그릇을 차곡차곡 식세기에 넣고 들어가지 않는 냄비와 후라이팬 국자 뒤집게 등은 손수 닦습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를 떠올립니다. 장난감과 책으로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집을 보며, '아이들로 인해 어질러진 집안은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증거' 라고 했던 유아교육 전문가의 말을 생각했지요.
씽크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며 애써 저를 설득합니다. '이 모양으로 난장판이 되어있는 건, 나 없는 동안 남자들이 알아서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는 증거 아니겠어?'
식세기를 돌리며 밥,국,반찬을 뚝딱뚝딱 합니다. 밥 솥에서 뜸 들이기 완료 알람이 울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으로 아침 식사를 합니다. 화요일은 특히 든든하게 먹지요. 빈 속에 커피를 마실 수는 없으니까요. 말하자면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아침 식사를 든든하게 하는 셈이지요.
출근 준비를 후딱하고 도시락 가방을 들고 내빼듯이 현관 문을 열고 나옵니다. 일주일에 4일은 사무실 옆 도서관에 들르지만 화요일은 예외입니다. 휴관일이기 때문이지요.
휴관일이지만 일찍 집을 나서는 이유는 화요일에 가는 곳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까페입니다. 사무실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이지요. 까페 맞은 편에는 딸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이 있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딸의 오피스텔을 무심히 지나쳐서 곧장 까페로 갑니다.(사무실 근처 딸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할 예정입니다.)
까페를 멀리서 보기만 해도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듯 합니다. 규모가 큰 까페지만 주문은 직원이 직접 받습니다. 저는 시나몬 라떼를 주문합니다.
전에는 망설임 없이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켰습니다. 커피 위에 크레마가 두껍게 덮여 있는 뜨거운 아메리카는 보기만 해도 행복했지요. 지금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좋아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눈치채셨겠지만 잠 때문입니다. 아침에 마셨는데도 잠이 안 와요. 가끔 아메리카노를 시켜보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잠 때문에 곤란을 겪은 지라 요즘은 일편단심 시나몬 라떼입니다.
까페는 말끔하고 쾌적하며 직원의 밝은 표정과 친절은 기본입니다. 인테리어의 컨셉은 초록 식물입니다. 실내에 들어서면 살아 있는 초록이들로 인해 싱그럽고 활기찬 생명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거기엔 스킨답서스의 공이 큽니다. 스킨의 별명이 불사조이긴 하지만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은 바지런한 까페의 직원과 사장님 덕분입니다. 직원과 사장님이 초록이 화분들을 틈틈이 관리를 하시더라구요. 화분에 마른 잎이 붙어 있을 틈이 없지요. 그린핸즈 인정입니다.
사장님은 잘 자란 스킨의 줄기를 잘라서 커다란 유리병에 꽂아 두기도 합니다. 사장님이 저에게도 한 다발이나 되는 줄기를 주셔서 저희 집 거실이 더 초록초록해 졌답니다.
최근에 사장이 직접 만들어 오신 달고나는 또 하나의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숟가락에 설탕을 녹여서 해 먹던 달고나와 차원이 다릅니다. 폭신하고 부드럽고 많이 달지도 않지요. 언제나 잔잔히 흐르고 있는 음악은 덤입니다. 계절에 어울리는 재즈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직원이 가르쳐준 것과 똑 같은 음악을 집에 와서 유투브로 재생해 보았으나 까페에서 듣던 그 맛이 도무지 나지 않더군요.
까페는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빌딩의 1층에 있습니다.
공간이 널찍한 만큼 좌석도 다양하지요. 다인용 테이블에는 사무실의 직원들이 모닝커피 타임 이라도 갖는 것인지 삼삼오오 모여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앞에 놓고서요.
1~2인용 좌석에는 저처럼 혼자 앉아 노트북을 펼쳐 놓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지요. 간혹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노트북, 책 둘 다 아닙니다. 오직 스마트폰 한 가지만 사용합니다. 뭐든 메모장으로 해결합니다.
까페에서 그때그때 당면한 일들을 처리합니다. 도서관에서 처럼 간혹 연재 글의 초고를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카톡으로 주일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의 경과를 챙기지요 화요일 오전을 주일에 덧대어 연장 시킨다고나 할까요?
소그룹 리더로서 멤버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기도 하고 주일에 나눈 사건이 어떻게 되었는지, 또 다른 힘든 일은 없는지 여쭤봅니다. 한 집사님의 아들은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한 집사님은 자영업을 접고 취업을 하려고 해서 고민이 많았거든요.
저는 얘기를 그저 들어주기만 하며 되지요 그분들이 고민을 나누면서 본인들 스스로 교통 정리를 하며 해답을 찾아가니까요. 주일 학교 리더 교사로서 선생님들에게 하는 전화도 빼놓지 않지요. 어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주일에 나누었던 일에 대한 진행사항과 애로사항에 대해 마음을 터 놓고 나눕니다.
까페에서 딱 한 번 친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는 거리에 살고 있는 친구였지요. 친구도 바쁘고 저도 평일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은 지라 출근전 에 만나면 어떨까 하고 까페에서 만나기로 했지요. 두어 시간 정도 였는데 예상은 빗나가라고 있는 것처럼 반가움은 잠시였지요. 제 탓이었어요. 제가 자꾸 시계를 보면서 친구에게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실 출근이 지문을 찍는 방식이고 1초라도 늦으면 짤없이 지각으로 처리되는 지라 마음이 좀체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안 그러려고 해도 마음이 바빠서 그 시간이 느긋해지지가 않았습니다. 친구한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날 이후로 그 까페에서 출근 전에 누구를 만날 생각 같은 건 아예 하지 않지요.
까페에서 밋밋하고 심플한 저의 일상을 뒤집어 보기도 합니다. 시나몬 향에 기대어 묻어두었던 이런저런 생각을 꺼내어 곱씹어 본답니다.
최근에는 두 아이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손자들이 태어나기 전에 하고 싶은 것 좀 해봐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자녀들 결혼 시키고 더 바빠지는 친구들을 봐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소설이란 말만 들어도 무척 어렵게 느껴져서 한편으로는 엄두가 안 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한번 질러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답니다.
11시 30분 알람이 울리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향해 걸어갑니다. 걸으면서 하늘도 쳐다보고 나무 위 이 가지 저 가지를 포롱포롱 날아 다니며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도 듣지요. 새처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은빛 겨울의 냉기가 빠져나간 봄바람을 맞으며 생각을 사무실에서 해야 할 업무 모드로 전환 시킨답니다.
까페 덕분에 화요일도 화끈하게 시작하는 거지요. 화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