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터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 까지 강좌가 있어서 오전 오후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나는 오후 근무를 자처했고 오후 근무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수영장에서 보내야 한다.
수영장은 시간마다 자유 수영, 아쿠아로빅, 강습 회원이 드나들고 있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므로
젊은 직원들은 오전 근무를 선호한다.
내가 저녁 근무를 자청한 것은 젊은 직원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지만 수영장 근무 나름대로 메리트가 있어서 이기도 하다. 수영장에서는 많은 회원들을 상대해야 하지만 반면에 사무실 직원들을 상대할 일이 확 줄어 든다. 몇 안되는 사무실 직원을 상대할 것인가, 압도적인 숫자의 회원들을 응대할 것인가 중에 후자를 택했다고나 할까.
강습회원 중에는 젋은 분들이 많지만 자유수영과 아쿠아로빅은 어르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수영은 유산소 운동으로 심폐기능를 향상시켜줄 뿐만 아니라 칼로리 소모가 많아 다이트에도 효과적이다. 체중을 몸의 아래로 다 싣지 않아도 되어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부담 없이 할 수 있어서 나이 드신 분들에게
전신 운동으로써 수영보다 더 좋은 운동이 있을까 싶다. 스트레스 해소와 정서적 안정감까지 포함하여 수영의 좋은 점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 수영장의 숫자가 줄어들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수영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바람에 수영장이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다. 사설 수영장들이 문을 많이 닫았고 수영강습 강사나 안전 가드들도 이직을 해 버려서 강습 선생님들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 되었다.
수영을 하려는 사람은 날로 늘어나는데 수영장의 정원은 제한되어 있고 더구나 기존 회원이 재등록을 마친 후 남은 자리에 신규회원이 들어 올 수 있는 구조여서 수영장의 신규 등록은 경쟁이 치열하다. 오전 9시에 온라인과 사무실에서 동시에 진행하는데 사무실에 9시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앙 현관이 열리는 5시 30분부터 와서 사람들은 소지품으로 대신 줄을 세우고 사진을 찍으며 순서를 확실히 한다.
사무실은 매월 이런저런 이유로 등록하지 못한 사람들의 항의하는 소리로 시끄럽다. 그럴 때마다 나와 직원은 한숨을 길게 쉬며 아무래도 수영장을 하나 더 지어야 할 것 같다고 넋두리를 한다.
한 번에 30명 안팎으로 입장 가능한데 키즈풀과 장애인풀이 따로 없어서 초등 고학년과 장애인이 다함께 수영장을 이용한다. 특히 오후 시간대에는 육체적, 정신적 장애가 있는 분들이 정기적으로 이용을 한다. 심지어 어떤 분은 돌발 행동이 많은 분이라 불편할텐데도 회원들은 말 없는 배려로 이렇다할 투정 없이 같은 시간대에 줄곧 이용을 한다.
자유수영을 하는 데 있어 주위 사람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유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자기 수준에 맞지 않는 레인에서 수영을 하는 것이다. 초급 수준인 분이 상급 레인에서 수영을 하는 경우. 상급자들은 스피드를 낼 수 가 없다.
그보다 더 민폐가 되는 것은 가다가 중간에서 멈춰 서 버리는 경우인데 오후에 이용하는 장애인이 자주 그렇게 한다. 수영 실력은 초급인데 데 꼭 중급이나 상급 레인에서 수영을 하다가 중간 지점에서 멈춰 서버리는 것이다. (초급으로 가라고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름)우리 수영장은 레인의 폭이 좁기 때문에 누가 중간에 멈춰 서면 뒤에 따라 오는 사람들이 피해 갈 수 없어서 함께 멈춰 설 수 밖에 없다. 그런 경우는 신경이 쓰이다 못해 분통이 터질텐데도 돌발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처지를 이해하는 분위기가 형성 되어있어 누구도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요, 저 분이 수영조차 안 하면 하루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어서 간혹 데스크에 울분을 쏟아 놓는 분도 있다. 한 번은 신규회원으로 처음 오신 분인데 예의 그 장애인 회원이 우뚝 서는 바람에 제대로 수영을 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장애인을 출입 금지 시켜 달라고 강력히 요구하셨다. 장애인 수영장이 따로 없으니 양해 해 달라고 말씀드려도 여기가 어떤 지역인데 이런 일을 버젓이 용납하여 지역의 품격을 떨어뜨리냐고 소리를 질렀다.
한참을 듣고 있다가 불편하시면 환불 도와드리겠다고 했다가 더 큰 봉변을 당했다. 어찌어찌해서 그분이 돌아갔지만 나는 하마터면 이 지역의 품격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할 뻔 했다.
그 분과 함께 수영을 하는 회원들에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그분들 때문에 이 지역의 품격이 얼마나 격상되었는지 아시느냐. 장애인을 배려하고 불편을 감수하며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보다 더한 품격이 어디 있겠느냐, 몸과 마음이 불편한 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품격을 올리는 지름길인 줄 모르시냐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품격을 거론하며 한바탕 하려고 드는 사람은 또 있다. 가끔 우리 센터가 거주지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두고 인근 지역에서는 자기 지역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주고 할인도 해 주는데 여기는 왜 그런 게 없냐고 항의를 하는 것이다.
그런 항의에는 나도 당당하게 맞선다.
"저희 지역이 좀 특별하잖아요. 다른 지역처럼 하면 지역 이기주의라고 욕먹어요. 널리 양해 해 주세요."
덧붙이지 않은 내 속에 있는 한마디는 '지역 차별 없이 원하는 사람 누구나 할 수 있게 문을 열어 놓는 것이 이 지역의 품격을 높여줄 거예요. 화이팅!'이다.
나는 수영장에서 근무할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사무실에서 하는 일반적인 업무보다 수영장 회원들을 위한 업무를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정말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 그래도 수영 덕분에 살이 빠졌다느니 건강이 좋아졌다느니 아쿠아로빅이 너무 재미있고 운동이 된다느니 하는 인사를 받으면 내일 같이 보람이 있고 감사했다. 물론 고통스런 시간도 있었지만 그 시간을 덮고도 남을 만큼 좋은 일들이 많았기에 마음 속 응어리가 되지 않아서 또 감사하다. 브런치 글쓰기도 이 직장에 와서 비로소 시작이 되었으니 이보다 더 수지 맞은 것이 어디 있을까 싶다.
올해 12월 31일이면 당연 퇴직이다. 퇴직 후를 대비 해야 하지만 아직은 어떤 이직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 업무를 대하는 태도도 변함이 없다. '어차피 연말이면 끝이잖아.'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앞으로 10년 더 일할 사람처럼 여전한 방식으로 내게 주어진 일을 나답게 할 뿐이다. 그저 평범한 일상에서 주어진 역할로 잘 살자 하는 것이다.
'아무튼 정년' 연재를 마칩니다.
써 놓고 보니 정년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그저 나이든 직장인 아줌마의 일상이야기가 되었네요. 정년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을텐데 제목에 요란을 떨었구나 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작가님들과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연재로 찾아 뵙겠습니다.
거듭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