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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by 분홍소금

아침에 남편이 내가 부탁한 심부름을 하기 위해 언니 집에 다녀왔다.

남편은 출근길에 걸려서 혼났다며 투덜거렸다.

차가 막히는 것을 못 참는 성격인 남편이 얼마나 짜증이 났을까 싶었다

나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아침부터 폭싹 속았수다" 했다.

남편은 왜 속았다고 하냐며 나를 쳐다보았다.

아직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의 소문을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라는 뜻의 제주방언으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넷플릭스 16부작 드라마의 제목이다.

드라마의 공간적 배경은 제주이고 시대적 배경은1960년대인데 대하드라마처럼 현재까지 이어진다.

산골마을이든 어촌마을이든 서민이라면 누구나 어렵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1화에서 엄청난 임팩트의 주인공은 배우 염혜란이 열연한 엄마이다.

혼자 힘으로 자식 셋을 키우기 위해 엄마는 하루 종일 물질을 한다.

엄마의 소원은 다음 대사에서 보듯이 제발 물질 좀 나가지 않고 자식들 곁에서 살뜰히 돌보고 챙기는 것이다.

“나 맨날 맨날 백 환 줘. 나 물질 좀 안 나가게. 나도 죙일 내 새끼만 쳐다보고 살아 보게.”


엄마는 바다에 남편을 빼앗겼다.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새 남편이 있다.

그는 게으른 한량으로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첫째 딸이 드라마의 주인공 애순(아이유)이다.

어린 애순이는 바닷가로 나가서 다른 잠녀들이 물에서 나와 쉬고 있는데도 혼자 남아 물질을 하고 있는 엄마를 기다린다.


물에서 늦게 나오는 엄마에 대해 물에서 먼저 나온 잠녀들은 엄마의 처지와 억척스러움을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엄마는 그녀들의 입방아에 기가 죽기는 커녕 너나 잘하라는 식으로 쏘아 붙이며 생각 없이 말하는 한 잠녀의 어망바구니를 사정없이 걷어 차 버리고 기다리고 있던 애순이와 함께 정답게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애순이가 쓴 시를 읽고 시가 장원감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며 부장원은 부당하다고 할 만큼 똑똑하다.

애순이가 반장선거에서 제일 많은 표를 받고도 동네 유지의 아들이 그 자리를 꿰 찬 것을 알고 그녀는 선생님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선생님에게 누추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동서에게 진주목걸이를 빌리려고 하지만 사소한 핑계를 대며 빌려주기를 꺼려하는 동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뙤약볕에서 동서네 너른 돌밭을 괭이 하나로 며칠 동안 일구어 준다.


엄마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동서에게 빌린 진주목걸이를 하고 선생님을 찾아간다.

당시의 신상인 값비싼 나일론 양말과 거금 4000원을 갖다 바치며 반장을 투표 결과 대로 애순이로 바로 잡아 줄 것을 사정사정한다.

엄마의 간절한 마음은 선생님에게 통하지 않지만 애순이의 쿨한 해석으로 위로 받으며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엄마는 억척스럽고 당차고 똑똑하며 딸을 위해서라면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어 준다.

단 한가지 간절한 소망을 위하여. 엄마의 소원은 자식들이 자기처럼 살지 않는 것이었다.



그 소원이 어찌 애순이 엄마 혼자의 것이랴.

그 시절에 못살고 못배우고 게다가 층층시하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살았던 대다수 엄마들의 공통적인 소원이었을 것이다.

그녀들은 자식들이 성공하여 세상에서 잘나가는 용사가 되는 큰 꿈을 꾸기 이전에 최소한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며 그야말로 물심양면으로 안간힘을 썼다.


우리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다. 자식들이 당신처럼 살지 않으려면 촌에서 농사 짓고 살면 안 되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뼈빠지게 일했지만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농사는 해마다 흉년이었다. 가뭄이 들거나 태풍이 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벼멸구 같은 병충해로 소출이 형편없었다.

게다가 개념 없는 남편은 술과 노름으로 재산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없는 마지막 남은 것들을 탕진하며 해마다 바닥을 쳤다.


엄마의 현실은 영화보다 참담했다.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어디에도 없었다.

자식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자식이라도 잘 되어야 한다고 간절히 바랐지만 그 자식을 뒷바라지할 근덕지는 없었다.


우리 엄마는 애순이 엄마처럼 억척스럽지도 당차지도 않았다.

유약한 성품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참는 것 밖에 없었다.

자식들에게 삼시 세끼 밥을 굶기지 않는 것이 최고의 애정 표현이었다.

거친 농사일은 기본이고 한 동네에 사는 맏동서와 시누이의 시집살이에다 술과 노름으로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남편과 살기에도 버거운 지경이라 자식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넬 힘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식들의 손을 다정하게 붙잡고 애정어린 눈빛으로 쳐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학교에는 찾아갈 엄도 조차 내지 못했다.

자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든지 말든지 그것이 관심사가 되기에는 엄마의 현실은 너무 매웠다.

행여나 틈을 낸다 해도 빈 손이 부끄러웠다.


한평생 스트레스 구덩이에서 숨죽이고 살았다.

자식들을 바라볼 때만 그나마 숨통이 틔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한 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사람이 죽어란 법은 없었다.

사방이 막힌 것 같았으나 엄마에게 자식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장남부터 공부도 잘하고 싹싹했다.

장남 만큼은 아니지만 엄마가 딸인 내게 거는 기대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애순이처럼 당차지도 않았고 정의를 입에 올리며 사람들과 시시비비를 따질 때 반짝이는 영민함으로 상대를 제압해 버리는 애순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학교에서 인정받는 우등생에다 뒷바라지 해 줄 오빠가 있었다. 나는 엄마의 기대와 오빠의 노고에 부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여 그분들께 꼭 보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나는 고3때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13주 진단을 받고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했다.

목표하는 학교에는 가지 못했지만 대학을 가고 대기업에 취직을 하여 전화위복이 되는 듯 하였으나 같은 회사에 다녔던 남편과 결혼과 동시에 또 다시 먹구름에 휩싸였고 결혼 10년 만에 폭망(폭싹 망함)했다.


엄마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는 고생 안하고 살 줄 알았는데..."하시며 한숨을 지으시는 엄마의 마음을 오랫동안 헤아려 드리지 못했다.

세월이 가고 아들이 입시에서 실패하고 인생이 허무해졌을 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본의 아니게 엄마의 기대를 배반한 딸로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에 대해 사과드리고 싶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우리 집에 오셨을 때 오랫동안 품고 있던 마음을 비로소 풀어 놓을 수 있었다.


엄마가 제게 한 기대를 져 버려서 죄송하다고, 제가 엄마처럼 고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는데도 지질하게 사는 모습만 보여 드려서 죄송하다고,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그날 나의 사과를 들으신 엄마는 '괜찮다, 괜찮다' 하시며 정말 많이 우셨다.



내게도 아들과 딸이 있다. 나도 엄마처럼 아들과 딸이 정말이지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랐다.

아이들이 잘되라고 어렸을 적부터 공부로 닥달했다.

하지만 기질이 약한 아들은 엄마의 미친 교육열에 혼자서 끙끙 앓다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폭발했다.

고등학교 때는 우울증으로 병원에서 상담치료를 받아야 했고 자연히 입시에서도 실패를 거듭했다.


아들의 고난이 극에 달했을 때에야 나는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소원의 대물림의 고리를 끊어 버렸다.

가난하고 누추한 삶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삶은 부질없는 소망을 비웃으며 반대방향으로 이끌었고 내게 돌아온 것은 상처 투성이 내면 뿐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들의 사건이후 우리집 가훈을 다시 썼다.

'생긴 대로 살자' 이다.

부자가 복이 아니고 가난한 것이 저주도 아님도 알았다.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대로, 둔한 사람은 둔한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각자의 푯대를 가슴에 품고 기쁘고 즐겁게 살면 그만이다.

잘난 것이 선한 것도 아니고 못난 것이 죄가 아니다.

이것 저것 모두 쓸모 있고 다 사랑 받을 만하다.

누구든 어떤 상황에서건 행복을 찾고 보람을 찾고 기쁨을 찾으면 된다.

그러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나를 포함하여 내 자식들이 주어진 평범한 하루를 감사와 기쁨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면의 상처를 약재료 삼아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처 입은 그 한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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