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겨울이 되면 토끼를 잡기 위해 덫을 만들었다. 덫은 일종의 올가미인데 적당한 굵기의 철사를 동그랗게 말아서 만들었다.
또 한가지는 가을에 가지가 붙은 채로 보관해 두었던 잘 익어 빨갛게 된 까치 밥 열매의 속을 파내고 그 자리에 가루약을 집어 넣어서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촛농으로 막은 것이었다.
오빠는 올가미와 약을 넣은 까치 밥 열매가 달린 가지를 산 비탈에 있는 밭으로 가져 가서 토끼똥이나 발자국을 자세히 살핀 후, 토끼가 다니는 길이 확실하다 싶은 곳에 놓아 두었다. 토끼는 다니던 길로만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였다.
까치밥 열매는 사실 토끼보다 꿩이 더 좋아했다. 대신 꿩은 올가미에는 걸리지 않았다.
까치밥을 먹고 죽은 짐승은 먼저 독이 든 내장을 다 들어냈다. 나는 짐승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독이 내장 뿐 아니라 몸 전체에 퍼졌을까봐 무서웠다.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엄마에게 그렇게 불쌍하고 무서우면 먹지 말라고 퇴박을 들은 후로는 주는 대로 맛있게 먹었다.
꿩이든 토끼든 집으로 가져오면 꼭 큰 집을 챙겼다. 먼저 잡은 것은 우리 집에서 먹었으면 그 다음 것은 큰집에 보내는 식이었다.
올가미와 까치밥에 걸린 짐승을 확인하러 간 오빠의 손에 잿빛 토끼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평소에 사냥한 토끼를 들고 들어 올 때 오빠는 개선 장군 같았다. 빨간 까치 밥 열매의 얄디 얇은 껍질이 찢어질까 봐 조심조심 바늘로 파내고 사람에게도 치명적인 가루약을 정량을 맞춰 채워 넣던 수고에 대한 값을 두둑이 받은 기쁨과 환희가 오빠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그럴 때면 우리도 오빠 못지않게 기뻤다. 엄마는 오빠의 재주를 대견스러워했고 우리도 오빠가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그날은 오빠도 엄마도 우리도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말이 없었다. 엄마는 오빠가 가져온 토끼를 받아서 곳간으로 가져 가며 오빠에게 소전(소 시장)에 가봐야 되겠다고 했다.
오빠는 엄마가 차려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점심이라고 해봐야 고구마를 삶는 솥 안에 아침에 먹고 남은 식은 밥을 데운 밥과 김장 김치와 무를 삐져서 넣은 된장국이 전부였다.
엄마는 오빠의 밥상머리 앞에서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다른 집은 소 키워서 논도 사고 밭도 사고 자식들 공부도 시키더만, 허구헌날 노름 빚 땜에 멀쩡한 에미 소를 송아지로 맨들고는, 그 지경에 술이 목구녕으로 우찌 넘어가는가 몰라"
오빠는 밥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었다. 목구멍으로 분노와 체념이 반찬 마냥 밥과 함께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춥다, 단디 입어라." 엄마의 말을 오빠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추위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사람처럼 대문 밖으로 황급히 사라졌다. 오빠의 목으로 넘어간 분노와 체념은 추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고도 남을 만큼 힘센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막 치우려는데 골목길에서 아버지가 술이 취해 내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오빠가 엄마의 예상대로 송아지 티를 갓 벗은 소를 몰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비틀거리면서도 허공에 삿대질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혀가 꼬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오빠는 새로 산 소를 마구간에 들여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흐느껴 울었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하는데도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마루 쪽을 힐끗 쳐다보고는 그대로 방금 들어온 대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여전히 소리를 질러 댔다. 아버지의 술주정은 잠이 들어 그 자리에 쓰러질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튿날 오빠는 내 부탁대로 스케이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무 궤짝을 주워오고 얼음 판에 꽂을 송곳으로 쓰기 위해 못의 대가리를 망치로 두들겨서 납작하게 만들어 손잡이 끝에 박았다. 그리고 나서 썰매의 바닥 양 끝에 붙일 쇠막대기를 불에 달궈서 구부렸다. 오후 한 나절 동안 톱질과 망치질로 자르고 붙여서 썰매 한 대를 완성했다.
엄동설한이라는 말에 잘 어울리는 맹렬한 바람이 온 세상을 얼어 붙인 덕분에 논에 고인 물은 썰매를 탈 수 있는 근사한 빙판이 되었다. 논에는 스케이트를 타러 온 아이들로 붐볐다. 아이들은 콧물을 줄줄 흘리며 손잡이를 얼음 위에 부지런히 찍어서 썰매를 앞으로 밀어 제꼈다.
형제 자매들은 하나 밖에 없는 썰매를 번갈아 탔다. 제 차례가 아닐 때는 썰매를 뒤에서 밀어 주었다. 썰매를 타든지, 밀어주든지 상관없이 아이들은 다들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고 떠들었다. 넘어져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도 신이 나서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짓궂은 남자애들이 일부러 달려 와서 부딪히는 바람에 썰매에서 떨어진 아이도 잠시 씩씩거리며 악을 썼지만 곧 언제그랬냐는 듯 손잡이를 잡고 부지런히 얼음 위에 송곳을 찍었다.
나와 호미는 동생들이 제 차례라며 썰매에서 빨리 내리라고 징징거리는 소리를 듣고도 '한바퀴만 더,'를 연발하며 신나게 썰매를 탔다. 호미가 타는 썰매는 우리 오빠가 만든 것이었다. 나는 두 개의 썰매 중 내가 타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골라 탔다. 호미가 "새로 만든 스케이트가 아직 질이 덜 나서 그런지 새 것보다 헌 것이 더 좋다."하면 나는 헌 썰매를 탔다. 호미는 내가 타고 싶은 것을 타려고 할 때마다 선선히 내 앞에 썰매를 대령했다.
썰매타기가 아무리 신이 나도 잘해야 한나절이었다. 해가 중천에 와서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 썰매의 속도가 차츰 느려지고 녹아서 얇아진 얼음 아래로 썰매가 자주 빠졌다.
발이 논에 빠져서 양말에 찐득찐득한 논 흙이 묻어 엉망진창이 되었다. 손발도 애초에 얼어 있었고 뺨과 코끝도 빨갛게 얼고 있었다. 아이들은 엉거주춤하며 논 밖으로 나오면서 그제야 추워서 어쩔 줄을 모르며 곧은 손으로 가까스로 스케이트를 붙잡고 어기적거리며 집으로 갔다.
나도 한 손에는 젖은 양말, 한 손에는 스케이트를 들고 빨갛게 언 볼을 한 채 집으로 갔다. 집 안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소죽 끓이는 가마솥 아궁이에 벌겋게 달아오른 숯불 위에서 빨갛게 양념이 된 토끼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고 있었다.
"엄마, 오빠가 또 토끼 잡았나?"
"하모, 토끼가 올무에 걸맀다카네, 까치 밥을 먹은 꿩도 한마리 잡았다아이가?
"꿩고기도 있나?"
"꿩은 큰집에 갖다 주라 캤제."
"어제 토끼도 갖다 줬으면서."
"큰 집에 안 갖다 주고 우리만 묵을 끼가? 애가 욕심이 왜 그리 많노?"
엄마는 우리가 오빠 덕분에 목구멍에 때를 벗긴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고기 뜸질을 한다고 했다. 엄마는 어미 소 대신 마굿간의 새 주인이 된 송아지를 보며 혀를 찼지만 우리는 우울한 기분을 스케이트와 고기 뜸질로 가볍게 덮으며 그럭저럭 즐거운 겨울방학을 보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도시에 사는 이모가 왔다. 이모는 오빠를 촌에 처박아 놔서는 안된다고 했다.
"언니야, 요새 누가 학교도 안가고 촌에 쳐박혀서 풀 베고 나무하고 농사 짓는다 카데? 학교를 못 다닐 것 같으면 공장에라도 가야지."
"애가 저러고 있는 게 누구 때문이겠노? 애비라 카는 사람이 노름 빚 갚는다고 에미소 갖다가 송아지 맨들어온 거 봐라, 말해 뭐하겠노?"
"언니야 쟤가 천재라고 소문난 애 아이가? 형부는 진짜 사람도 아니다."
"천재면 뭐하고 만재면 무슨 소용이고?"
오빠는 이모를 따라 가고 싶어 했다. 엄마도 오빠가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싶어했지만 아버지가 문제였다.
아버지가 반대했다. 봄에 소에게 쟁기 질을 가르쳐야 되는데 오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와 이모는 말도 안되는 이유라고, 그런 거라면 옆집 아재랑 해도 되지 않냐고 하자 아버지는 멀쩡한 아들을 두고 왜 남한테 쇠 굽은(혀 굽은 소리,즉 아쉬운 소리) 소리를 해야 하냐며 펄펄 뛰었다.
오빠는 엄마한테 하루라도 빨리 도시로 가야한다고 했다.
"엄마 내가 하루 빨리 돈을 벌어야 돼, 돈 벌어서 동생들 공부도 시키고 밭도 사고 논도 사야지."
그래도 오빠와 엄마는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이모는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