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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Dec 01. 2022

God Jul! 스웨덴의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춥고 어두운 겨울을 지나는 스웨덴 사람들의 자세



God Jul! 스웨덴어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인사다. 이제 겨우 12월 1일이 되었는데 무슨 벌써 메리크리스마스냐 하겠지만, 스웨덴에서 크리스마스는 모두가 가을부터 기다리는 행사다. 스웨덴의 비공식적 Nationaldag (국가기념일)인 미드소마가 지나고 나면 하루에 꼭 4분씩 해가 짧아진다. 그렇게 해서 11월이 되면 해가 떠있는 시간이 급격히 짧아지다가 12월 22일경, 한해중 해가 가장 짧은 날인 동지가 되면 아침 9시반-오후 2시반 경에만 해가 떠 있다. 그마저도 한국의 쨍한 겨울날과는 달리 흐린 날이 잦은 스웨덴 남부에서는 한달 동안 제대로 해가 나는 날을 보기 힘들 정도다. 북극에 가까운 북스웨덴은 말할 것도 없다. 하루에 해가 뜨는 시간을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끝도 없는 밤이 이어진다. (하지만 해는 더 짧아도 새하얀 눈이 잔뜩 쌓인 북스웨덴이 훨씬 밝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12월 1일이 된 오늘, 딱 20일 정도가 지나면 바로 그 무시무시한 동지가 된다.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밝고 행복해지는 미드소마 기간에서 딱 6개월이 지나 춥고 어두운 동지가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 사람들의 12월에는 희망이 있다. 그게 바로 크리스마스인 것이다.


내가 늘 부정적으로 묘사하긴 하지만, 스웨덴의 가을과 겨울은 마냥 어둡고 춥고 우울한 기간만은 아니다. 실제로 스웨덴 사람들 중 아늑한 실내에서 가족이나 연인과, 혹은 혼자 시간 보내기를 즐기고 또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매서운 바람이 찬 공기를 가르는 바깥 세상의 어둠을 두꺼운 창문을 꾹 닫아 막아내고 집안에는 따뜻한 조명과 촛볼을 켠다. 포근한 안락의자나 소파에 앉아 두꺼운 담요를 끌어안고 따뜻한 차, 혹은 코코아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 달콤하고 고소한 쿠키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비오는 날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분명 스웨덴에서 춥고 어두운 이 계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이 좀 더 차분해지고, 자기를 성찰하고, 책이나 영화같은 다른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는 아늑한 계절이 바로 이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가을겨울을 좋아하는 이들이 가장 기다리는 이벤트는 뭐니뭐니해도 크리스마스다. 스웨덴의 크리스마스는 무척이나 가족 중심적인 날이다. 한국에서 주로 연인과 함께 하는 날인 것과는 달리, 스웨덴의 크리스마스는 무조건 가족과 함께 하는 날이다. 사정상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없는 사람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 파티를 하기도 한다. 누구와 함께하는지보다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보내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친구들이나 혹은 연인과 만나더라도 신나는 파티를 벌이거나 놀러 나가기보다는, 집에서 따뜻한 glögg (프랑스의 뱅쇼나 독일의 글뤼바인과 비슷한 와인을 따뜻하게 데우고 정향, 육두구, 건포도 등을 추가해 마시는 음료)을 나눠 마시고, 함께 해온 요리를 나눠 먹는다. 


음식 하면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크리스마스 기간의 행사가 바로 julbord이다. 율보드, 라고 읽는 이 행사는 직역하면 '크리스마스 테이블'로, 크리스마스 식 음식을 먹는 부페를 말한다. 청어절임, 연어, 그라탕, 돼지고기찜 등의 메뉴가 주를 이루는 이 julbord는 스웨덴의 레스토랑의 1년 중 가장 큰 행사이다. 단순히 모여서 부페를 먹는 것이 아니라, 식사를 하는 동안 공연을 함께 관람하고, 또 스납스 (snaps)라 불리는 스웨덴의 독주를 원샷(!) 하는 것이 이 julbord의 일부이다. 평소엔 얌전하고 매너있는 스웨덴 사람들이지만, julbord를 즐기는 시기에는 꽤나 만취한 스웨덴 사람들을 보는 일이 드물지 않다. 



또한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올 때 잊어서는 안될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도시 중심부에 아예 정부 기관의 주도로 크게 길 전체를 빌려서 크리스마스 장식품, 트리, 촛불, 조명같은 물건들부터 글록, 핫초코, 프렛즐, 쿠키같은 음식을 파는 부스까지 다양한 가게들이 문을 연다. 도시 외곽에서는 좀더 지역 축제적인 성격을 띈 마켓이 열린다. 예테보리 근방 도시인 kunsbaka에 있는 Tjolöholm 성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 동안 성 안에서 크리스마스 카멧 및 저녁 만찬 등의 행사를 연다. (*지난 가을에 이 성에 다녀왔는데, 스코틀랜드 출신의 귀족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무척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곳이었다. 크리스마스 마켓 기간동안에는 얼마나 예쁠지 상상이 겨됐다)


겨울의 Tjolöholm 성 (이미지 출처: https://www.tjoloholm.se/kalender/julmarknad/)






마지막으로, 12월 13일에는 루시아라는 행사가 열린다. 촛불을 왕관처럼 쓴 '루시아'가 앞장서서 흰 옷을 입은 단원들과 함께 성가를 부른다. 연중 가장 어두운 시기를 지나는 빛 (Lucia는 라틴어로 빛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을 가져온다는 성스러운 루시아를 기리는 행사다. 스웨덴은 교회가 유럽 다른 나라의 성당처럼 지역마다 지부를 가지고 있고, 세금을 걷기도 하는 등 역사, 문화적으로 큰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래도 유럽에서 가장 세속적인 나라다. 하지만 루시아같은 행사가 있을 때면 곳곳에 울려퍼지는 성가를 들으며, 이곳에서 교회가 가진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빛을 가져오는 성인 루시아를 기디며 부르는 <산타 루치아> (이미지 출처: https://www.expressen.se/leva-och-bo/jul/darfor-firar-vi)






스웨덴의 겨울은 분명 혹독하고 우울하다. 하지만 어둡고 춥다고 해서 무조건 이를 '견뎌내야'만 할 필요는 없다. 실내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문화 행사들이 있고, 도시 중심부에는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조명들이 늦가을부터 도시의 거리를 밝힌다. 따뜻한 담요와 코코아,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어둡고 추운 계절이라고 반드시 외롭고 우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연말연시를 보내고 나면 논문 제안서를 제출해야 하는 대학원생이라면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책과 논문들에 푹 빠져 혼자 보내는 시간 역시 나쁘지 않을 것이다. 


12월 1일이 되었으니, 연말이 올 때까지 하루에 한시간씩 켜는 크리스마스 초를 켜기 시작해야겠다. 연말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 조금 이르긴 해도, 모두들 God J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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