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주민이 되고 분당 서현동에 있는 원룸형 오피스텔을 사무실로 임대했다. 강남에 입성하는 대신(최소 주제 파악은 했다) 분당에 터를 잡기로 했다. 천당 위에 분당이라는 말이 허풍이 아닌 현실이 되고 있었고 네이버 같은 IT 기업들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집에서 분당 사무실로 출퇴근할 때 판교를 멀치감치 두고 매일 지나갔다. 차를 타고 멀리서 지나가며 보이던 판교는 언뜻언뜻 작물처럼 보이는 풀들이 삐죽삐죽 솟은 밭들로 듬성듬성 채워져 있고 대체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수풀로 우거진 키 작은 밀림처럼 보였다. 지금은 천지개벽했지만 당시 판교를 떠올리면 충동적으로 창업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나아가던 우리 부부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서로가 최대한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지점에서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오피스텔은 과장되게 돌출된 수전이 아니었다면 주방 공간이라고 눈치채지 못했을 싱크대와 샤워호스가 허공에 외롭게 매달려 있고 변기가 바닥을 완전히 장악한 욕실 겸 화장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언제 닦았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 희뿌연 이중창 너머로 서현역 상가 밀집 구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현역은 롯데백화점이 있는 수내역 못지않게 AK플라자를 비롯해 다양한 상권이 조성되어 유동인구가 많았다. 활기찬 서현역 상권처럼 우리 쇼핑몰도 트래픽이 많아야 할 텐데, 이름도 정하지 않은 쇼핑몰의 청사진부터 그렸다.
전용 면적 8평의 원룸을 사무실로 변신시키기 위해 준비한 것은 중고 가구점에서 마련한 사무용 책상 두 개와 의자 두 개 그리고 전화기 두 대가 전부였다. 두 사람이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기에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에 덩그러니 책상 두 개만 놓고 보니 충분히 궁색하고 암담해 보였다. 우리는 책상을 서로 마주 보게 배치하고 성난 황소가 격돌하듯 맹렬히 일에 집중하자고 (아마도 어쩌면 속으로) 다짐했다.
대표이사와 이사로 법인에 등기된 남편과 나는 각자 본인이 평소 사용하던 노트북을 펼쳐 놓고 온라인 신발 전문 쇼핑몰의 콘셉트부터 정하기로 한다. 콘셉트는 곧 정체성이다. 정체성은 내가 발을 담그는 세계의 수심과 온도, 파도의 유무와 유속 등에서 비롯한다.
무엇보다 먼저 온라인 신발 쇼핑몰 시장조사가 급했다. 새로운 여정의 이정표가 되어줄 좌표부터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