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café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여유

by 로라see

까페에서 까페를 기다리고 까페를 음미하며 까페를 떠올리고 까페를 추억하며 까페를 잊지 못하고 결국 까페를 사랑한다 고백하기에 이르렀을 때 우린 까페를 떠나보내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까페는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특별하다. 보통명사에서 출발해 집합 명사이기도 하고 고유명사인 동시에 물질 명사이면서 때론 추상명사가 되기도 하는 까페는 음식 이름이 동시에 그 음식을 소비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유일무이한 단어가 아닐까 한다.

커피를 파는 곳은 다방이나 커피숍이라고 불리던 때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인 나는 서른 즈음이 될 때까지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커피 맛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지금의 내가 커피 맛을 제대로 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서른 이후 여러 이유로 꾸준히 마시다 보니 그 맛에 조금씩 길들여지고 익숙해진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의 서른 즈음은 다방과 커피숍 대신 ‘까페’와 가까워지기 시작한 때와 정확히 일치한다.

“ 커피 맛을 알려면 우선 인생의 쓴맛을 알아야 한다. ”

언젠가 스치며 주워들은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난 서른 즈음에서야 인생의 쓴맛을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아아...인생의 쓴맛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인지 너무 빨리 알게 된 것이지...

아니면 둘 다인지 그도 아니면 둘 다 나의 착각인지 그건 더 살아 보면 알게 되겠지...

어쨌든 서른 즈음의 나는 파리 시내에 지천으로 널린 까페를 기웃거리며 까페의 쓴맛에 익숙해지려 노력했다. 그건 운명의 장난이 아닌 필연적 선택이었다. 파리의 화려하고 번듯한 위치에 자리한 까페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 위한 저비용 고효율 적 방법은 에스프레소에 뜨거운 물을 넉넉히 추가한 까페 알롱제를 마시는 것이었다. 까페 알롱제는 까페의 양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까페에 머무르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늘려 주는 것이다. 그렇게 애써 당당한 척 까페 알롱제만을 외치던 나는 소주잔 만한 컵에 담겨 나오는 에스프레소를 마치 원샷하듯 한 번에 벌컥 털어 마시는 파리지엥을 발견할 때면 매번 흠칫 놀랐던 기억이 있다. 뜨거운 물로 희석시킨 알롱제도 조금씩 홀짝거리며 마시는 나로서는 쓴맛이 응축된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삼킨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진정한 파리지엥이라면 쓰디쓴 에스프레소 정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시크하게 들이켜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역시... 난 파리지엥 흉내를 내기는 틀렸어... 차라리 무심한 듯 쓸쓸한 이방인이 되는 편이 어울리겠어... 괜스레 멜랑꼴리한 분위기를 풍기며 까뮈의 이방인을 떠올리곤 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흘러 커피의 쓴맛은 물론 인생의 쓴맛도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의 나에게 까페는 어떤 의미일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여전히 까페를 맛으로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원두의 종류와 로스팅 정도 그도 아니면 압출과 추출 방식 또는 물의 온도 등 까페의 맛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에 지금까지 크게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까페는 인생의 쓴맛을 그날의 날씨와 온도와 나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곳. 좀 더 정확히는 그 분위기를 공유하는 대상과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까페는 어떤 특정 형태를 지닌 물체나 공간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파리를 소개해 보라 한다면 가장 먼저 화려한 노천 까페가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파리의 낭만은 실내와 실외가 열린 통창으로 연결된 노천 까페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일상에 자리하고 있는 까페는 보다 단순하고 반복된 리듬을 가지고 있다. 찌뿌둥한 이른 아침 부엌 한 켠에 서서 우두커니 멍 때리며 마시는 에스프레소도 좋고 주말 오후 혼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할 때 밥 대신 비스킷 몇 조각과 마시는 까페 알롱제도 좋다. 그도 아니면 그냥 이유없이 기분이 쳐지고 우울한 날이면 달달하고 고소한 믹스커피도 나쁘지 않다. 믹스커피 두 봉지를 넉넉하게 타서 마시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까페는 혼자만의 시간과 연결되는 것 같다.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지만 결코 외롭거나 쓸쓸하지도 않다. 그건 까페의 쓴맛이 매 순간 다르게 느껴진다는 것을 매 순간 체득하고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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