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테크’ 잔혹사: 기술이 약속한 것과 빼앗은 것

AI시대, 우리 회사는 괜찮을까?

by 손동진

영화 '히든피겨스'에 등장하는 IBM 설치 장면은 ‘착한 기술’ 환상의 전형이다.

새 컴퓨터가 들어오면 계산 오류도, 인종·성별 차별도 싹 해결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어땟나.

흑인 여성 ‘휴먼 컴퓨터’들이 코드도 문서도 직접 손으로 맞춰야 IBM이 돌아갔다.

기술은 공평해 보이지만, 권한과 책임은 여전히 위쪽에서 배분된다.

‘선한 기술’이라는 간판 뒤에 남아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컷이다.


AI for Good 글로벌 서밋 2025에서 다시금 지난 역사를 돌아 본다.

제네바 팔엑스포. 로봇 팔이 플라스틱 쓰레기를 고르고, 스타트업 부스마다 ‘SDG’ 로고가 번쩍였다.

연단에 선 ITU 사무총장은 “우리를 위협하는 건 초지능이 아니라 무책임한 배포”라며 박수를 끌어냈다.

똑같은 문장을 십 년 전 데이터 포 굿 행사에서도 들었다.

머릿속엔 한 단어가 떠올랐다. 또 반복이구나.


19세기 등장한 텔레그래프도 그랬다.

당시 외교관 에드워드 손턴은 “증기는 과학이 준 첫 올리브 가지였다.

전신은 더 효과적인 두 번째 가지”라며 전쟁이 사라질 거라 믿었다.

사람들은 전선을 땅에 묻으며 평화를 예약했다고 떠들었다.

결과가 어땠는지는 교과서에 상세히 적혀 있다.

정보 독점을 잡은 제국들은 케이블을 끊고, 텔레그램 한 줄로 전쟁을 유도했다.

선의는 속도보다 느리다.

권력 구조를 계산하지 않은 착한 기술 담론은 초라한 장식품이 되기 쉽다.


다음 차례는 전기였다.

1936년 루스벨트가 농촌전기화법에 서명하며 “모든 가정에 공평한 기회”를 외쳤다.

도시에서 90 %가 전기를 쓰던 시절, 농가는 10 % 남짓이었다.

코퍼(co-op) 모델은 성공했고 20년 만에 시골도 불을 켰다.

테네시 밸리 댐 아래에서 만난 구순의 농부에게서 역설을 들었다.

“전기 덕에 젖소가 살았지만, 전기세 못 내면 우유도 못 짜.”

인프라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요금을 결정하는 주체가 결국 힘을 쥔다.

착한 전기도 시장논리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1960년대 ‘녹색 혁명’은 또 다른 구원 서사였다.

‘기적의 종자’와 화학 비료면 굶주림이 사라진다며 재단과 기업이 환호했다.

몇몇 국가는 곡창이 됐지만, 가난은 토지 없는 농민에게 돌아갔다.

생산량이 늘어도 굶주리는 아이는 그대로였다.


2005년, MIT에서 들었던 ‘100달러 노트북’ 프레젠테이션도 비슷했다.

각국 정상들이 즉석에서 주문서를 쓰고, 나는 “드디어 교육 격차가 닫히겠구나”라며 박수쳤다.

현실은 어땠나. 가격은 188달러로 뛰고, 4대 중 1대는 교실 구석에서 배터리가 죽어갔다.


이쯤 되면 공식이 보인다.

기술이 등장한다.

선한 의도를 앞세운 연사가 언론을 장악한다.

‘모두에게, 빠르게’라는 구호가 붙는다.

인프라와 비용을 감당할 주체가 뒤늦게 드러난다.

불평등은 옷만 갈아입고 다시 나타난다.


AI for Good.

AI 차례에서 나는 질문부터 던진다.

모델을 학습시킬 데이터는 누구의 것인가.

전력·클라우드 비용은 누가 내는가. 실패했을 때 책임은 어디에 묻히는가.

‘착한 AI’는 답이 아니라 과제다.


우리가 그 질문을 미루면, 착한 서사는 또다시 누군가의 청구서로 돌아올 거다.

텔레그래프가 ‘평화의 와이어’로 불렸어도 유럽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었다.

전기가 ‘불빛의 민주화’라 불려도 빛바랜 마을이 남았다.

AI 역시 역사 앞에서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우리가 선의와 구조를 동시에 설계할 수 있는 첫 세대라는 점이다.

책임까지 포함해 기술을 디자인한다면, ‘선한 기술’이 드디어 이름값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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