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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될만한 삶, 한 명의 삶이 될만한 책

저는 이제 삶이 될만한 책을 쓰고 싶습니다만

한 권의 책이 될만한 삶, 한 명의 삶이 될만한 책


1. 한 권의 책이 될만한 삶


한 사람을 깊게 이해하는 건 한 권의 책을 마주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모든 사람의 삶이 한 권의 책으로 마주할 것 같진 않은데요. 물론 개별 인생지사야 자신이 주인공이니까 다들 판타스틱하고 책이 될만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 놓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을 수 없죠. 게다가 책으로 출판이 되려면,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가 있어야 팔립니다. 아무리 책이 가진 효율성과 고귀함, 의미를 논한다 해도, 어쨌든 편집자 입장에서 책은 철저히 팔려야 가치가 생기는 상품에 불과하니까요.


이런 차원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다시 말해서 고집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이어야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어쨌든 옳든 그르든 자신만의 일관성을 지켜냈으니, 그런 사람이야말로 책에서 볼 법한 사람이 아닐까요?


저는 최근 고집도가 상당히 높은 사람을 여럿 만나게 되었습니다. 각각 전혀 다른 집단에서 만난 사람들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양상은 전혀 다른데요. 고집도가 다들 높아서 참 신기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남의 말 안 듣는 사람들인 셈인데요. 저도 나름 고집도가 높은 사람이라, 예전 같았으면 고집도가 높은 사람을 만나는 걸 무조건 피했을 텐데요. 저도 이제 나이를 좀 먹은 모양인지 고집도가 높은 사람을 만나는 게 그렇게까지 부담되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고집도가 높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니,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 수준이 아니라 아예 거대한 세계관을 갖고 있을 정도로 넓고 깊더군요. 마블 세계관으로 비유하자면, 자신의 이야기에 영웅이 한 명만 나오는 게 아니라 어벤저스처럼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와서 페이즈 1, 페이즈 2를 나눠서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와닿으실까요? 오랜만에 깊고 거대한 세계관을 만나 수영하듯 그 내면을 유영하면서 돌아다닌 것 같았습니다.


저는 수영할 줄 몰라서 잘 모르는데, 수영을 할 줄 모르면 물에 들어가는 게 고통스럽지만, 수영을 배우면 물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나 재밌다면서요? 예전에는 이런 깊은 세계관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보자마자 바로 피했다면, 이제는 마주해서 유영할 만큼 스스로 오픈 마인드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했나 봅니다. 참 웃긴 것은 저도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는 사람인 주제에, 어쩌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걸 나쁘다고 인식하는 편견을 저도 갖고 있었나 봐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도가 높은 사람과 만나서, 새로운 세계관의 문을 여는 형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책이 될만한 삶은 어쩌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현재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이야말로 고집도가 상당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죠. 일반적으로 권력가들은 원래부터 남의 말을 잘 안 듣기도 하고, 안 들어도 되는 자리에 있으니 안 듣기도 합니다. 물론 고집도가 높은데도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보기 드문 완성형 지도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푸틴의 삶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그의 삶은 충분히 책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요. 이와 같이 자신의 삶이 이야기가 될만한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봅니다. 만일 스스로 삶이 독특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자신의 삶을 꾸준히 잘 메모해두시면 좋을 것 같아요. 책이 될만한 삶을 선물 받아 살고 있다면,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게 숙명이자 운명이 될 테니까요.




2. 한 명의 삶이 될만한 책


이번에는 반대로 삶이 될만한 책을 한번 이야기해볼까요? 조금 더 와닿게 풀어서 설명해보자면, 책이 되어 기록으로 남지 않았지만 우리 삶 속에서 볼만한 이야기를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책이 될만한 삶은 정해져 있다지만, 삶이 될만한 이야기는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삶이 될만한 이야기를 보고 듣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입시를 놓고 생각해 볼까요? 사람들의 가진 관심사는 합격소감, 성공사례에 있지, 실패사례에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험에 떨어진 사람 이야기는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그렇지만 시험에 실패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우리 주변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시험에 떨어진 사람 이야기는 관심이 없기에 책이 되진 않았지만, 삶에서 볼만한 이야기인 셈이죠.


시험은 합격과 불합격이 있다지만, 사람은 합격과 불합격이 없습니다. 합격과 불합격의 2지선다형인 객관식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유롭게 펼쳐져 나갈 주관식 서술형의 차이라고 비유해볼까요?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스스로 탁월해야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이런 잘못된 정체성이 심긴 채로 주변 사람을 평가하는 삶을 살았다면, 자신이 겪은 실패를 놓고 자신의 인생이 부적합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데요. 저는 책이 될만한 삶을 살지 않아도 괜찮다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냥 때로는 일관성 없이 살아도 괜찮지 않나요? 자신의 업무에서는 탁월함을 추구하면서도, 실수가 가득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게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쁜 배우가 연기하는 드라마와 CF,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강의를 듣고 있다가도 어느 날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성공과 성취 같은 것과 살짝 거리가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시청하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반짇고리에 실을 묶어놓아 만든 뭉치를 실패라고 부릅니다. 아재개그에서나 쓸 법한 동음이의어이긴 한데요. 인생이란 [실패]에서 [실]을 한올한올 꺼낸 후, 자신이 가진 재능 구슬을 꿰어 보배로 만드는 작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패가 가득한 삶이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자신의 삶이 책이 될 수 없는 평범한 삶이어도 괜찮습니다. 용납받은 경험을 통해 자신이 가진 고집을 필요할 때마다 자유자재로 꺼내어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당신의 삶은 이야기가 되고, 책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반대로 용납하는 여유를 통해 다른 사람을 품어줄 수 있는 성숙을 갖췄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책이 되진 않을 수 있어도 삶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책이 되는 화려한 삶, 삶이 되는 담담한 책


최근 드라마 [스물 다섯, 스물 하나]가 매우 화제입니다. alookso에서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여러 번 소개된 바 있는데요. 저는 유튜브에 편집된 요약본이 올라오면 보는 편이라, 드라마의 흐름을 바로바로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봤을 때 배우 김태리 씨가 연기하는 주인공 나희도의 캐릭터가 기존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어서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나희도는 자신이 관심 있는 것만 하고 살려고 합니다. 뭔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에만 오로지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러니까 국가대표까지 된 거겠지만 말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여 어떻게든 자신이 세운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고, 실제로 달성해 내죠. 매우 고집이 센 인물입니다. IMF로 학교의 펜싱부가 없어지자, 강제전학당하기 위해서 일부러 불량학생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어서 매우 재미있게 보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저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이야기가 되는 삶, 책이 되는 삶, 주연의 삶을 산다고 생각해요.


마침 드라마가 IMF 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그 시대에 맞춰서 비슷한 비유를 하나 더 들어볼까요? 만화 슬램덩크를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연재 기간은 1990년부터 1996년이었지만, 해당 만화가 농구계와 청소년들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상당하죠. 농구대잔치의 열풍과 함께 힘입어 한때 농구가 우리나라 최고의 스포츠로 군림했던 적이 있었으니까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자기 주관이 매우 강력합니다. 고집도 상당히 세고요. 이 만화에서 상당히 빠르게 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이러한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에 강백호가 주연인 삶, 책이 되는 삶을 대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혹시 권준호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를 기억하시나요? 흔히 안경 선배라고 말하면 많이들 아실 겁니다. 그런데 안경 선배의 이름을 생각하면 가물가물하죠. 그렇지만 안경 선배는 3년 동안 열심히 노력했고, 작가는 조연에 불과한 안경 선배에게 잠깐이나마 스포트라이트를 비춤으로써 그의 삶과 노력이 의미 없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강백호가 [책이 되는 삶]을 대표한다면, 이름도 가물가물한 안경 선배는 [삶이 되는 책]을 대표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이 되는 화려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삶이 되는 담담한 책을 선택할 것인가? 저는 둘 다 하고 싶지만, 굳이 선택하자면 삶이 되는 책을 선택하고 싶네요. 나이가 어렸을 때는 책이 되는 화려한 주연의 삶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편집자들에 의해 상당히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다양한 성공사례 이야기에 흠뻑 취해 마음속에 큰 꿈을 세우기도 했죠. 꿈을 크게 세우면 그 꿈이 나를 이끌고 갈 것이라는 묘한 믿음과 함께 말입니다. 정작 유재석같이 유명한 스타는 꿈을 일부러 안 갖고 하루하루에 충실하게 산다고 하니, 도대체 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요.


나중에 크면 저렇게 빛나는 삶, TV에 나오는 스타의 삶, 내 이야기가 책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빛나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를 봐도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 관심을 갖게 되고,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제가 단순히 나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제는 알잘딱깔센을 갖춰서 상황에 맞춘 고집을 부릴 수 있게 성숙했기 때문일까요? 이제 저는 스스로 다른 사람을 밝게 빛나게 해 줄 조연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제 삶이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 조연처럼 보일지라도, 조연의 입장에서 자신의 인생만큼은 주연일 테니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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