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미안을 만나다, 내면소통

by Dr 정하늘의 Mecovery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 데미안, 헤르만헤세


여러 책을 읽던 중에 나의 세계를 깨뜨리는 데미안을 만났다.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이라는 책이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교수님의 인터뷰를 보게 됐다.

교수님의 인터뷰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감정은 몸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반응해서 두려움을 인지한다는 것.

부정적 감정을 통제하려고 의지적 노력을 해봤자 되지 않는다는 것,

몸의 움직임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

불안해서 심박수가 올라가는게 아니라, 심박수가 빨라지니 불안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불안한 환자한테 심박수를 낮추는 인데놀을 쓰지 않냐고 하셨는데, 한대 띵 맞은 느낌이었다.

맞다, 인데놀 쓰잖아. 근데 나는 왜 쓰는지도 잘 몰랐네?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수님의 이력이 신기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볼로냐대학교에서 움베르토 에코 교수에게 기호학을 사사했으며,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재직중이시다.

응? 정치, 커뮤니케이션, 기호학, 언론홍보영상학부....??

이런분이 왜 뇌과학에 대해 설명을 하고 책을 썼다는 것일까?


'내가 그래도 신경과 박사잖아.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님의 뇌과학책을 본다고?'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두려웠나 보다. 내가 공부한 게 아무것도 아닌게 될까봐.

내면소통을 읽기 시작했고, 서문부터 또 한대 머리 띵 하고 맞았다.

책을 읽으면서, '아, 이건 내 인생책이다. 내 세계관이 바뀌었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동안 읽어왔던 책들의 내용과 내가 신경과에서 배웠던 지식들이 한 궤로 꿰어진 느낌이었다.

뇌과학과 철학, 양자영학, 뭐.. 이런게 통섭인가? 우와. 진짜 지식인은 이런 거 아닐까?

새로운 세계를 만난 것 같아서 설렜다.




자아에 대한 개념부터 만성통증, 부정적 감정과 생각에 대해서까지.

편도체 안정화와 전두엽 활성화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까지.

내용이 방대하고 전문적이어서 놀랐고, 교수님 말씀대로 교양서가 아닌 학술서였다.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은 배경자아였다.

내가 경험하는 것은 경험자아, 경험자아의 축적된 스토리텔링이 기억자아라는 것,

진짜 나의 본질에 해당하는 것은 경험과 기억이 아닌 바로 배경자아라는 것.

마치 바다 그 자체가 배경자아이고, 에너지의 들뜸인 파도는 경험이나 기억인 것처럼.


배경자아로서의 나를 알아차리는 것,

내 경험과 기억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고 나를 배경자아로서 인식한다는 것.

not Doing, just Being.

그 지점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더는 내 진짜 욕망이 무엇인지,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진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거창하게 찾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험하는 것들은 일시적이며, 기억하는 것은 나의 스토리텔링이다.

진짜 나는 그것을 알아차리는 배경자아이다.

어떤 부정적 감정도, 스토리텔링도 내가 알아차리면 힘을 잃는다.

그게 영속적인 것도, 진실인 것도 아닌 것을 알기 때문에.


그때부터 알아차림에 대한 연습이 시작되었고,

기록을 통해 강화되었고,

지금껏 나를 괴롭힌 불안함과 두려움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대비하는 편이었다.

즐거울 때도,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두려웠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즐거웠지만, 혼자 내버려두면 우울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냥 선천적으로 우울한 사람인가 했던 적도 있었다.

불안 속에서 나를 키운 부모 탓도 해보았다.

나의 부정적 사고방식을 바꾸고 싶었다.

다양한 문화 체험도 해보고, 여행도 가보고, 사교모임도 많이 다녀보고, 책도 읽었다.

감사일기도 써보고, 긍정전환도 열심히 해보았다.

29살의 연말에는 혼자 템플스테이를 가본 적도 있다.

그럼에도 항상 속이 비어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절망한 적도 있었다.

남편과 결혼한 이유 중 하나가 매사 긍정적으로 보고, 현재에 몰입하고, 감탄과 즐거움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없어 보일 때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건 오로지 내 몫이었다. 당사자는 신경 안쓰니까.



이런 나의 세계에 도끼로 균열을 만들어준, 나의 데미안. 내면소통.

인생책을 만난 덕분에 나를 지배했던 불안,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

알아차림. 내면소통.

교수님의 유튜브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의 댓글이 줄줄 달렸다.

교수님은 내면소통 책 내용을 매주 온라인 줌으로 라이브 강의를 해주셨기 때문에.

진짜 지식인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나는 전문가랍시고, 진짜 환자에게 도움이 되고 있었을까.


알에서 갓 태어난 새가 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날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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