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과 상담을 하다 보면 익숙하게 듣는 단어는 몇 개로 정해져 있다. “그렇게 심한 건 아닌데요, 요 부분이 살짝 착색되어 있어요.” 아마 가장 많이 듣는 몇 문장 중에 하나일 것이다. 착색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가장 두려운 단어가 되었다. 병원을 오시는 어르신들은 착색이라는 단어는 좀 낯설어하시고 오히려 검버섯이라는 강렬한 단어를 더 익숙하게 여기신다.
사실 전문적으로 들어가면 이름이 다르듯이 얼굴에 생기는 검은 것이 다 같은 종류가 아니다. 흑자, 검버섯, 기미.. 등은 개념적으로 정의가 다르다. 착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잊지 못할 경험이 있다.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위하여 요양병원에서 실습을 할 때의 일이다. 중환자실에 배정되어 일주일은 정신없이 기본적인 시스템을 배운다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바이탈을 재는 걸 돕거나 약을 미리 환자 옆 테이블에 가져놓는 일들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환자들의 몸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피부의 상태를 보게 되었다. 거의 모든 환자들의 몸 상태가 비슷하다는 것에 더 놀랐다고 하는 게 정답이겠다.
10년이 넘게 누워계시는 분들도 계셨고, 대부분 5년이 넘는 장기 환자들이었으며 연세도 70이 넘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노화가 생긴 쭈글쭈글하고 나이 든 피부라면 오히려 당연한 게 아닌가. 그러나 어떻게 그 많으신 어르신들의 피부가 한결같이 착색이 골고루 온몸에 퍼져 있었을까. 꼭 누가 일부러 까만 물감으로 보디페인팅을 한 것처럼.
실습하는 내내 지금까지도 환자들의 착색된 피부가 눈에 아른거린다. 내가 배운 착색 이론의 가장 핵심은 왜재적 노화인 자외선이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5년 이상 누워계신 어르신들이라면 비록 주름은 있을지언정 햇빛을 장시간 보지 않아 뽀얀 피부여야 한다. 도대체 이 어르신들의 온몸의 착색은 무엇이라고 이해를 해야 할까?
난 이 몇 달의 실습기간 동안 어르신들의 피부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메디컬 뷰티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세월의 흐름을 굳이 숫자로 표현한 것이 나이라면 숫자가 클수록 내재적 노화는 심화하게 되고, 그 세월만큼 외재적 노화의 원인인 자외선을 받게 되니 이래저래 피부는 이전보다 칙칙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피해 갈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는 당연한 세상의 이치다.
그러나 많은 한국의 메디컬 뷰티에 대한 선입견을 나 스스로 깨는 계기가 이 실습을 통해서였다. 그렇다. 얄팍한 더 이쁘게를 위한 화이트닝 관리가 아니었다. 거동이 불편하고 누워있는 어르신들의 착색된 피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피부는 나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다”라고..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호스를 코에 넣어서 미음을 먹고, 노폐물의 핵심인 대변, 소변을 스스로 밖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몸의 모든 장기가 활발한 기능 없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의의를 가지고 겨우 숨만 붙어 있는 내 몸이 이렇게 피부로 표현하고 있다고
“나는 면역이 약해요”
가장 기본적인 면역의 단계인 피부가 그렇게 착색되고 있었다. 피부는 나의 몸 안의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얼굴이고 또한 반대로 피부가 망가져도 면역이 떨어져 몸이 약해진다, 아토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5살 어린아이의 피부는 착색되어 있지 않다. 중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부분 얼굴과 몸에 옅고 진한 착색의 흔적이 시작되고 있다. 오랜 기간 누워계신 어르신들의 피부는 반점 투성이었다.
자리 잡기 시작한 내 몸의 착색된 그 어떤 것도 예사로 여기지 않는 습관을 나는 이때부터 가졌다. 샤워를 할 때 항상 내 몸의 곳곳을 살펴보는 것은 아주 건강하고 좋은 습관이다. 분명 내가 인지 못하는 사이에 피부는 말하고 있다. 내 몸 어디가 약해지고 있는지, 면역이 떨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고 그 표현이 착색이다.
그 검은 흔적을 그저 못난이라고만 여기지 마세요. 모임에 갔더니 얼굴이 왜 그렇냐고, 검은 것 좀 빼라는 말에 충격받고 이뻐지기 위해서 뒤늦게 메디컬을 찾지 마세요. 피부는 오랜 시간 서서히 약해지는 나의 모든 면역 시스템에 대해 착색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이걸 개선하는 메디컬 작업을 단순히 보기 싫어서 깨끗하게 하고 싶은, 겉만 이뻐지는 과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내 몸의 모든 것들이 말하고 있다. 폐가, 대장이, 위가, 호르몬이, 혈관이 늘 우리 피부를 두드리고 있었다.
피부는 나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대변인이다.
이전에 없던 색깔의 변화가 있다면, 이전에 없던 뾰루지가 생긴다면, 또한 간지러움이 있다면, 붉어지는 증상이 생기거나 각질이 심하게 일어난다면, 급격하게 건조해진다면, 이렇게 나의 피부가 말하고 있다면 나는 그 말을 알아듣기 위한 평소의 관심을 내 몸에게 가져야 한다.
무언의 언어로 피부는 늘 대화를 원하고 있다. 정작 나 스스로 모를 뿐이고 너무 무관심할 뿐이다.
어느 날 수업을 듣던 제자가 조용히 옆으로 와서 질문을 던졌다. 할머니가 피부가 약해진다고 느끼긴 했는데, 반창고를 붙이고 갈아주려고 떼니 살점이 같이 떨어져 나와 너무 당황하고 놀랬단다. 진물이 나고 있었고 어떻게 사람의 피부가 반창고와 같이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 현장을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 교수님이 말씀하신 피부가 면역과 관계있다는 게 이런 말이었어요? 할머니의 피부는 노화되고 면역이 약해서 살점이 힘없이 떨어져 나간 거예요 되묻는다.
그저 사각턱을 이쁘고 갸름하게 만들고, 각종 시술로 연예인처럼 만드는 요술방망이가 한국의 메디컬 뷰티에 있는 게 아니다. 진정한 피부 관리의 위너는 이쁘게 이쁘게 가 아닌 외부 침입으로부터 일차적으로 우리를 보호하는 보호막인 피부를 건강하고 튼튼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피부가 이쁜 것이다. 필러를 맞아서 이쁜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아픈 피부를 위해서 연고를 발라주고, 건조해지지 않게 보습을 꼼꼼하게 해 주고 급격하게 찬기운, 급격하게 뜨거운 기운과 물리적 힘에서 거리를 둘 수 있게 유심히 조심스럽게 피부를 바라보는 과정이 식구들에게 필요하다. 할머니의 피부는 사실 이전부터 말하고 있었다. 본인이 모르고 가족들이 몰랐을 뿐이다.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임을 피부 공부를 하면서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 느낀다. 시진(視診)의 기술은 가장 중요한 병원 근무자의 기본 매너다. 오늘부터 나 스스로를 시진 하면서 몸의 대화를 느껴보자.
매일 매시간 끊임없이 피부는 말하고 있다. 나를 봐달라고. 착색되지 마라 그 어떤 것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