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길은 멀고 멀다.

by 봄동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라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맘으로 낯선 길 가려하네.'

간디학교 교가이다. 가사가 시작부터 꽤나 도발적이다. 대개 노래의 시작 부분이 가랑비 내리듯 서서히 마음 안으로 젖어든다면 여기는 처음부터 천둥, 번개가 들입다 내리친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노래가 절정에 이를 때면 나는 이미 폭우에 젖어서, 눈물인지 빗물인지 아니면 비염으로 인한 콧물인지 모를 것들을 잔뜩 흘리고 만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이십 년 전도, 지금도 그렇다.


꿈 꾸며 산다는 것,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내 영혼의 소명일지도 모른다. 내게도 꿈 꿀 수 없는, 사랑했지만 텅비었다고 느낀 시간들이 있었다. 그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나는 깨달았다. 그 안에서 내가 꿈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다행히 시간은 나를 거두어주었다. 시간은 노련한 보모처럼 나를 먹이고, 달리게 하고 사랑은 아침 햇살 속에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러다 불현듯 소설가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콘서트 장에서 노래를 듣다가 든 생각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진구 구장에서 외야수의 안타를 보며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듯, 나는 가수의 노래를 듣다가 소설가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었다. 하루키는 그날밤부터 밤새 글을 쓴 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지만, 나의 소설은 초반 도입부만 맴돌았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글로 쓰면 도무지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았다.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아마 학원 키드의 첫 세대일 것이다. 영어, 수학은 물론 교사 임용 시험 준비 도 학원의 도움을 받았다. 대한 민국 학원 문화를 생애 내내 체험해 본 첫 세대답게 나는 소설 쓰기에 도움을 주는 곳을 찾아 헤맸다.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단기 강좌를 제외하고는 내 입맛에 맞는 곳은 찾기 힘들었다. 그러다 어린이책 쓰기 수업을 하는 곳과 인연이 되었다.


아직 아스팔트가 뜨겁던 가을, 마포에서 여섯 명의 글벗과 선생님을 만났다. 그 중에는 이미 등단을 한 신인 작가도 있고 나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온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은 책을 여러 권 낸 동화 작가로 단정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스스로를 의심하던 나를 작가로 대해주셨지만, 게으름에는 매서운 일갈을 날리셨다. 작품에 대한 냉정한 평가에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따뜻한 격려에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날도 있었다.

졸업 후 2년은 공부방 선후배들과 합평 모임을 했다. 그 사이에 제법 재미있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함께 합평을 했던 글벗들은 하나 둘 공모전에서 입상하여 작가라는 이름표를 달았지만 내 작품은 최종심에도 한 번 오르지 못했다. 처음에는 얼굴을 본 적이 있거나 같이 합평을 한 적이 있는 글벗들의 수상 소식이 반갑고 기뻤다.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내 마음에는 찌질한 그림자 같은 것이 드리워졌다. 더 힘든 건 내안에 그런 찌질한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퇴근 후 피로와 싸우며 소설을 썼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모른채 그냥 오기로 소설을 썼다. 얼른 작가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스스로를 소모시켰고 점차 지쳐갔다. 점차 소설 쓰기가 숙제처럼, 정리되지 않은 집처럼 버겁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 내 안의 내가 말했다. 누군가가 작가 타이틀을 달아주어야만 작가는 아니라고. 스스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작가라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찾아나서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바로 브런치 스토리 작가 신청을 했다.

아직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거기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면 또 얼마나 돌고 돌아 헤맬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너무 지치지 않게, 나를 소모시키지 않으면서 나는 다만 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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