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언제나 깜깜한 중앙고속도로 위에서 시작되었다. 자동차 트렁크에 함부로 실린 짐마냥 내 마음은 흔들리고, 찌그러졌다. 연휴는 아직 하루 뒤인데도 남편은 퇴근하자마자 출발을 서둘렀고 저녁 먹을 시간도 단축하기 위해 휴게소에서 핫바나 소세지 같은 걸로 급하게 요기를 했다.
내 본가는 큰집이었고 아버지는 종손이었다. 외할머니가 마흔 넘어 낳은 막둥이였던 엄마는 아무 것도 모르고 결혼해 그 많은 제사들을 다 지냈다. 나는 명절이면 친척집에 간다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우리는 외가에도 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9시 뉴스에서는 차가 밀려 도로 위에서 도시락을 까먹고, 윷놀이를 하는 풍경을 보도했다. 어린 내 눈에는 그 모습이 여행이라도 가는 듯 즐거워 보였다.
물색 모르는 너도 한번 당해 보라는 백만 귀성 인구의 원한이었을까? 결혼 후 세 시간이나 차를 타고 내 고향도 아닌 곳으로 귀성을 해야 했다. 농번기나 부모님 생신 등등 해서 한 달에 한 번은 가는 길이라 익숙해지기도 하련만 그 길은 십 년을 다녀도 좀처럼 정이 가지 않았다.
멋모르던 시절, 명절 전날에 도착하자 시어머니의 지청구가 쏟아졌다. 좀 일찍 출발해서 장도 같이 보고 하지. 니들은 그래 딱딱 맞춰서 오노? 도대체 뭐에 딱딱 맞췄다는 건지 알 길이 없었지만 태생이 효자였던 남편은 다음해부터는 아예 연휴 전날 출발하는 걸로 일정을 바꿨다. 월 1~2회의 방문에도 그 룰이 적용되었다. 법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서 바꾼다는 데 그 과정에 내 생각이나 의견은 반영되지 않았다.
2020년 정월 초하루 그렇게 지긋지긋하던 귀성길에서 해방되었다. 남편을 포함한 그 누구도 나를 가족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내린 결정이었다. 제사를 가져가라. 다달이 반찬을 해서 보낼테니 돈을 달라(남편이 따로 용돈을 드리고 있었다)같은 말을 들어도 나는 버텼다. 그러나 나를 빼고 시모, 시누이, 남편, 내 아이들이 함께 옷을 맞춰 입고 찍은 가족 사진을 보고 내가 참 미련했구나를 깨달았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여름날 찍은 사진이었다. 그들은 보란 듯이 시가 안방 한복판에 사진을 걸어두었지만 누구도 내게 그 사진에 대해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가족이 되기를 포기했고, 10여년의 긴 귀성길이 끝났다.
서울로 가는 기차표와 동대문 근처의 호텔을 예약했다. 2박 3일의 일정이었다. 첫날은 남산, 다음날은 경복궁에 갔다. 경복궁에 가던 날 하늘에서 눈발이 날렸다. 남쪽 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눈이었다. 경복궁을 둘러보고 지인이 추천해준 나무 사이로라는 카페에 갔다. 한옥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곳으로 핸드 드립 커피가 맛있다고 했다. 네이버 지도를 보고 돌고 돌아 찾아간 카페는 지인의 소개대로 고즈넉했고 커피도 맛있었다. 하릴없이 핸드폰을 뒤적거리다가 서가에 꽂힌 책 한 권을 빼들었다. 나스메 소세키의 "마음"이라는 소설이었다.
삼분의 일 쯤 책을 읽었을 때였을까? 교양있어 보이는 중년 부부와 장성한 아들 둘이 들어왔다. 아들 둘은 간간이 영어를 섞어서 쓰는 모양새가 유학생인듯 보였다. 다시 책에 집중하려고 했지만 내 귀는 그들에게 가있었다. 서로를 배려하는 다정한 부부와 유머있고 착한 아이들, 내가 꿈꾸던 가정의 모습이었다. 책을 덮고 하늘을 살폈다.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눈발은 걷혔고 흐렸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듯 맑아오기 시작했다. 다시 길을 나서야 할 시간이었다.
청계천을 지나고, 광화문을 지나 제법 많이 걸었던듯 하다. 걷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좋았다. 광화문에서 바라보는 북악산은 다정하진 않지만 품위있게 나를 위로했다. 내가 서울을 좋아하게 된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그 날 나를 위로해준 북악산 때문이다.
그해 설 연휴 나는 더이상 명절에 시가를 가지 않기로 선택했고, 서울 여행을 선택했다. 아직 나스메 소세키의 "마음"은 미처 다 읽지 못했지만 "마음"과 광화문과 북악을 볼 때면 그날의 내 선택들을 떠올린다. 물론 내 마음 안에는 그날 만난 다정한 부부에 대한 동경이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이 세상 좋은 것을 다 내가 가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필요한 누군가에게 돌아갈 몫이다. 대신 나는 선택과 용기라는 좋은 내 몫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