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 콘서트 장으로

by 봄동

그해의 봄과 여름은 길었고, 가을과 겨울은 짧았다. 생각해 보면 견디기 힘든 시간은 지난했고, 행복한 시간은 찰나처럼 지나갔다. 시간의 상대성 이론이라는 과학 이론이 있다던데 실제로 그런지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낄 뿐인지 현재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지난하고 힘들었던 그해 봄, 라디오에서 우연히 그의 노래를 들었다. 그때 나는 아마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가? 아니면 탁자의 먼지를 닦고 있었던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노래가 시작되자 하던 일을 멈추고 블루투스 스피커 앞에 가만히 다가가 앉았던 기억이 난다.

DJ가 불러주는 노래 제목을 재빨리 핸드폰 메모장에 옮겨 적었다. 기억을 되새겨 보니 20대 중반 무렵 길거리에서 간간이 들어본 노래였다. 그때는 스쳐 지나갔던 노래가 십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내 마음 안으로 스며든 것이다. 내 마음이 변했고, 나를 둘러싼 세계가 변했기 때문일 거다.

유튜브에서 노래 제목을 검색했다. 2006년에 녹음한 곡이지만 팬들이 콘서트 장에서 촬영한 최근 영상들이 제법 많았다. 가수의 얼굴은 기억 나지 않았지만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들을수록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 여름동안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며 버텼다. 터지기 직전의 압력솥 같던 마음이 연이어 노래 몇 곡을 듣다보면 압력이 빠진듯 조금씩 추슬러졌다. 눈물이 나오면 울고, 마음이 아프면 마음껏 아파했다. 그의 음악 안에서는 그게 가능했다. 생각해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찰나처럼 지나간 그해 겨울, 나는 생애 처음으로 혼자 상경을 했고 콘서트에 갔다. 혼자 서울에 간 것도 콘서트에 간 것도 처음이었다. 공연 시간까지 무려 여섯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점심을 먹고 나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겁쟁이였고,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낯설었다. 나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할지 막막했다.

무작정 공연장인 블루스퀘어로 향했다. 그 당시에는 블루 스퀘어 안에 서점이 있었는데 이리 저리 둘러 보다 책을 한 권 사서 나와 공연시간이 될 때까지 읽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이었다.

두 시간의 공연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놀이공원에 처음 가본 아이처럼 어버버하다가 마치는 시간이 되어서야 아쉬움을 삼킬 뿐이었다. 이전까지 알지 못하던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뿐이다. 고백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든 생각은 아니었다. 한 두 달 전부터 내 마음 안에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보리싹 자라듯 자라나고 있었다. 어떻게 글 같은 것을 쓰냐며 또다른 마음이 시시때때로 그 마음을 솎아내었다.

그의 노래가 계속 될수록 강한 질투심이 났다. 본업을 이렇게 잘 하다니,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이 정도 경지에 이르다니 하는 감탄과 강한 질투였다. 앞으로 음악을 하려는 것도 아닌데 가수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질투심 안에서 나는 꼭 사람의 마음에 가서 닿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기 일에 진심인 사람을 보며 느끼는 질투심이었다. 나도 그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하고싶은 일에 진심이고 싶었던 것이다.

해마다 그의 콘서트는 빠지지 않고 매번 간다. 이제 자신과 보내는 시간이 제법 자연스러워져 혼자서도 서울 이곳 저곳을 잘 돌아다닌다. 어느 해는 그러느라 너무 지쳐 콘서트를 잘 즐기지 못한 적도 있어 이제는 컨디션을 조절해서 돌아다닌다.

그의 콘서트에서 나는 매번 그의 진심을 만나지만, 나는 아직 나의 진심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는 매번 내 스스로를 의심하고 멈춰서서 뒤돌아보고, 이게 맞는지를 점검한다. 나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일의 진심에 가서 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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