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는 겨울이 더 매력적이다. 동해안 해산물이 가장 맛있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양미리와 도루묵 철이 돌아와 속초를 다녀왔다. 최근 몇 년 사이 속초에서 제일 자주 간 식당을 꼽으라면 소방울이다. 싱싱한 홍게와 사장님의 가자미조림에 반해서 자주 찾았다. 겨울이면 도루묵과 양미리 구이도 파셔서 이번에도 기대를 안고 찾았는데, 이번에는 좀 아쉬웠다. 올해는 방문할 때마다 생물의 선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해산물은 공산품이 아니기에 계절마다 상태가 다를 수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던 소방울의 맛이 아니었다. 원래라면 생선구이를 클리어하고 메뉴를 더 시켜서 신나게 먹고 왔을 텐데 이 날은 아쉬움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연훈이 옹심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오랜만에 시장에 있는 감나무집을 찾았다. 감나무집 옹심이는 나의 옹심이 집 리스트에 들어있는 집이기도 하다. 연훈에게는 처음 소개하는 자리였다. 주말이라 시장에 사람이 붐빌까 봐 오픈런을 했는데도 줄이 꽤 길었다. 한 30분 기다린 것 같다. 몇 년 새 감나무집은 속초의 핫플 중에 핫풀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맛은 예전 같지 않아 아쉬웠다. 전에 더 맑고 담백한 맛이 났었는데... 대기손님이 워낙 많아서 그런지 주문과 관계없이 주방에서 음식을 계속 만들고 있었다. 자리에 앉고 주문과 동시에 식사가 나오는데, 김이 팍 샜다.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갓조리되어 나오는 음식을 맛보는 행위 자체가 일종의 설렘인데… 회전율이 빠르니 바로 만든 옹심이겠지만, 기분 탓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건지 옹심이가 좀 불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혼 없는 식사를 한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씁쓸했다. 애정하는 식당이 초심을 잃으면 속이 상한다.
식사를 마치고 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젓갈을 조금 사러 갔는데, 가는 길에 싱싱한 양미리를 너무 싸게 팔아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수북한 양미리 한 바구니가 만 원 밖에 안 하니 안 살 수가 있나. 어제 소방울에서 먹은 양미리를 떠올리니 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생선을 굽는 데 상당한 노동이 들어가지만, 시장에 수북이 쌓여있는 싱싱한 양미리를 보니 가성비를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양미리를 좋아하는 우리 집 고양이 두 녀석을 떠올리면 만 원어치를 샀다. 양미리 좌판 옆 가게에서 할머니가 국산 고등어를 팔고 계셨다. 고등어 한 바구니도 단돈 만원..;; 속초를 안 좋아할 수가 없다. 필렛처럼 뼈를 발라주실 수 있냐 여쭸더니, 흔쾌히 열 마리도 넘는 고등어를 순식간에 손질해 주셨다. 그리고 가을에 빠질 수 없는 대봉시..!! 영롱한 주황빛을 뿜는 대봉시 한 묶음도 데려왔다. 엄빠네랑 친구들이랑 나눔 하려고 10kg 묶음을 고민 없이 샀는데, 하필 이날 엄빠는 윗집에서 대봉시 한 상자를 선물 받으셨다.. 허허
시장에서 산 양미리는 집에 와서 야무지게 꿔 먹었다. 구이로도 먹고, 통으로 김밥에 넣어서도 먹었다. 조리과정은 고됐지만, 고소하고 기름진 맛은 역시 최고다. 고양이들도 한 마리씩 포식하는 행복 식사를 했다.
마지막 식사는 호인스시에 했다. 이번 여행은 양미리도 양미리지만 사실 호인스시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다. 이곳은 아마 강원도에서 제일가는 오마카세 집이 아닐까 싶다. 일요일, 월요일엔 운영을 안 하셔서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디너는 가격이 꽤 있어서 항상 런치만 이용했는데, 이번에는 스케줄이 안 맞아 처음으로 디너를 가게 됐다.
이날 인상 깊었던 건 고니, 전갱이, 전어, 우니단새우였다. 항상 맛있게 먹던 참치는 이날은 그냥 그랬다. 식사 초반에 나온 대구 고니 에피타이저가 엄청 크리미하고 고소했다. 생대구 철을 더욱 기대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이날 전갱이 요리가 다양하게 나왔는데, 전부 맛있게 먹었다. 전갱이가 이렇게 맛있는 생선인지 새삼 깨달았다. 적당히 기름지고 고소한 맛이 좋았다. 전어스시는 올해 먹는 마지막 전어가 아닐까 싶다. 전어 위에 올린 깨의 고소함이 정말 잘 어울렸다. 식사 막바지에 나온 우니 단새우는 어딜 가나 나의 최애메뉴다. 연훈이 우니 단새우를 맘껏 먹는다면 몇 개까지 먹을 수 있겠냐는 질문을 하길래, 지금도 다섯 피스는 더 먹을 수 있다고 하니 놀라워했다..ㅎㅎ 속초에서 마지막 식사를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었다. 다만 런치와 디너의 가격 차이에 비해서 메뉴 구성이 크게 차별화됐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다음에 가게 된다면 꼭 런치로 가야겠다..ㅎㅎ
고성의 어느 카페에서 찍은 동해바다 풍경으로 여행일기를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