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평창
오랜만에 정선에 다녀왔다. 정선은 파크로쉬를 계기로 몇 번 찾았었는데, 최근 몇 년은 발길이 뜸했다. 이번에 가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국도를 타고 가는 운전길이 생각보다 꽤 고단했다. 그래도 산골짜기에 숨어있는 맛집들과 소박한 시골 풍경 덕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다. 기억에 남는 몇 곳을 기록해본다
1. 전영진 어가
전영진 어가는 파크로쉬 근처 맛집을 찾다 알게 된 곳이다. 짧게 소개하자면, 향어백숙과 송어비빔회 메뉴를 개발하신 전영진 할머니의 손자 되시는 사장님이 3대째 운영 중인 식당이다. 몇 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 사장님의 친절함과 신선한 음식 그리고 식당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던 Y2K 감성의 BGM이 인상 깊었다..ㅋㅋ 그날 송어비빔회와 감자전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번에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향어백숙을 먹기 위해 방문했다. 식사 중 얼핏 건너 테이블에서 사장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이 향어백숙 때문에 가업을 잇기로 결정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참고로 전영진어가는 100% 예약제이며, 금토일만 운영을 하신다. 그리고 사장님이 하루 6팀만 받으시는데, 그만큼 엄청난 맛과 서비스를 제공해 주신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사장님이 직접 재배하시고, 당일 수확한 재료들로 요리를 하신다고 한다. 밥도 금주에 도정한 쌀로 갓 지어 주신다. 그래서인지 음식에서 재료의 신선함이 듬뿍 느껴진다. 식사가 내어지는 내내 사장님이 요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신다.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재료 생산부터 요리까지 들어간 사장님의 정성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님이 콩물을 에피타이저로 가져다주셨다. 올해 탈모를 예방을 하겠다고 집에서 두유를 계속 만들어 먹었는데, 두유제조기로 만든 나의 두유 따위에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다. 서리태에 물과 소금 조금만 넣고 갈으신 거라는데, 콩물에서 그런 싱그러운 맛이 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만큼 맛있었다. 이날 반찬으로는 호박나물, 열무김치, 피클, 열무시래기가 나왔다. 열무시래기는 처음 먹어본 반찬인데 신선한 맛이었다. 조금 아쉬운 점은 나는 워낙 싱겁게 먹는 편이라 어가의 간은 전반적으로 내 입맛에 좀 세다. 엄청 고퀄의 재료를 사용하시는 만큼 간이 조금 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ㅎㅎ
향어백숙은 민물고기인 향어에 황기, 인삼 등의 한약재와 우엉, 감자, 옥수수 등을 넣고 푹 고아낸 보양식이다. 국물이 설렁탕처럼 뽀얀데, 민물고기 특유의 생선 비린내와 물내(?)가 전혀 없었다. 국물이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났는데, 생선지리탕과 닭백숙 사이 그 어딘가의 묘한 맛이다. 생선살이 연했는데, 가시가 많아서 먹기가 쉽진 않았다. 식사를 다 마칠 때쯤 계절전이 나왔다. 감자전을 먹을까 하다 제철 식재료를 활용한 계절 전을 시켰는데 배추전이 나왔다. 메밀가루 반죽과 비트즙으로 색을 낸 반반 배추 전이었는데, 바삭 쫀득한 반죽 속에 달큰한 배추맛이 완전 내 취저였다.
2. 중화루
요즘 난 간짜장에 꽂혀있다. 평생 짬뽕파로 살았는데, 최근엔 간짜장 맛집을 찾아다니는 중이다. 나전역 근처에 간짜장을 잘하는 집에 있다 하여 찾아갔다. 오전 11시쯤 들어갔을 때는 한산했는데, 나올 때는 만석이었다.
간짜장은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다. 간짜장과 탕수육 소자를 시켰다. 먼저 자온 간짜장은 소스에 야채가 실한 게 비주얼이 장난 아니었는데 실제로도 맛있었다. 너무 달지 않고, 야채 크기도 너무 크지 않고, 야채의 식감이 적당히 살아있어 정말 맛있게 먹었다. 탕수육은 비주얼은 좋았지만, 맛이 아쉬웠다. 야채 듬뿍과 달짝지근한 소스냄새가 날 설레게 했지만, 고기튀김이 바삭하지 않았다. 반죽의 문제인지 갓 튀겨주셨는데도 눅눅하고 버석버석했다. 이 집 탕수육의 특징인 것 같은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3. 동광식당
인생 첫 황기족발이다. 이제 보니 이 여행에서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이 많았다. 황기족발은 황기와 한약재를 넣고 푹 삶은 족발이다. 한약재가 들어가서인지 일반 족발에 비해 색감이 진하다. 한약재 향이 강할까 걱정했는데, 오히려 잡내도 안 나고 고기가 엄청 부드러웠다. 정선에 오면 꼭 반드시 까지는 아니지만, 동네에 있다면 종종 찾을 것 같은 식당이다. 식사로 콧등치기 국수를 시켰다. 냉면과 온면 두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된장 베이스인 온면을 시켰다. 굵은 메밀면에 호박고명이 올려져 나왔다. 국물이 약간 점도가 있어 걸쭉한데, 확실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전에 정선 여행할 때도 시장에서 꽤 유명한 콧등치기 국숫집에 갔었는데, 그냥 그랬던 기억이 났다. 나는 콧등치기 국수를 안 좋아하나 보다.
그리고 카페 이화에 월백하고.
이 카페는 이번 여행의 시작이었다. 네이버 포탈에서 이 카페를 소개하는 짧은 영상을 보고 문득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창에 있는 카페였는데, 이 카페를 가기 위해 정선 여행을 계획했다. 이런 걸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하는 건가. 정선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 이 카페에 들렀다. 지도상에는 지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는 게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런데 웬걸.. 네비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내가 산골짜기를 오르고 있었다. 오프로드를 즐기기는커녕 싫어하는 1인으로서,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오르는 산길이 너무 싫었다. 오죽하면 가는 길에 이런 안내판도 있다.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300m 직진하시오".
거북이 기어가듯 살금살금 운전해서 어렵게 도착했는데, 이 와중에 카페는 만석이었다. 내 사전에 웨이팅이란 없는데, 비를 뚫고 이 산길을 운전해 왔기에 안 기다릴 수가 없었다. 30분쯤 기다린 끝에 자리를 잡았다. 메밀차와 쌍화차, 꿀빵 그리고 드립커피를 시켰다. 커피보다는 전통차가 맛있는 집이다.
인터넷에서 보고 내가 반했던 그대로 감성이 넘치는 집이었다. 가게 안팎 구석구석에서 사장님의 감각과 손길이 느껴졌다. 오는 길이 조금 덜 고되고, 날씨도 좋고, 기다림도 없이 이곳에 왔다면 크게 감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힘들 게 이곳에 와서인지 감동이 덜했다. SNS 핫플의 전형적인 결말 같기도 하다. SNS 핫플은 막상 가면 기대만큼 감동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사진과 영상으로 보고, 듣고, 먹고 마신 걸 다시 경험하는 기분이라 그런지 설렘이 덜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성비가 생각났다. 근데 사실 이 카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이번 여행에서 방문한 카페들의 커피값이 다 상당했다. 우연찮게도 드립커피 전문점만 갔는데, 커피가 대부분 7-8천 원대였다. 커피값이 모두 상향평준화된 것 같다. 요즘 원두값도 오르고 서울의 드립커피값을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지만, 상향평준화된 가격만큼 나를 감동시키는 커피를 맛보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가성비가 자꾸 생각났다.. 다음 여행은 남의 여행을 따라가기보다는 내 취향을 따라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