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 속초에서 혼자 먹은 것들

by pig satisfied

최근 강원도에 갈 때마다 집에 오는 길 운전이 고돼서 이번에 뚜벅이로 속초에 왔다. 원래는 금요일에 연훈이 일찍 끝나서 여행을 계획한 건데, 버스를 타고 가게 되니 굳이 차로 연훈을 데리러 갈 필요가 없어졌다. 금요일 아침 일찍 먼저 갈까 하다가 고민하다 하루 먼저 속초에 왔다. 혼자 하는 여행을 안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혼자 가보고 싶었다. 아침 일찍 8시 버스를 탔다. 난생처음 프리미엄 버스를 타봤다. 좌석이 내 몸에 찰떡이 아니라 생각보다 불편했다고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니트를 거꾸로 입고 있었다. 좌석이 아니라 니트에 목이 졸려서 불편했나.


1. 완도회 식당

도착하자마자 간 곳은 완도회식당. 이곳은 내가 좋아하는 물회집이다. 12시 반이면 문을 닫는 데 , 그마저도 재료가 소진되면 더 일찍 닫기 때문에 늦잠 자면 먹기가 쉽지 않다. 매장에서 먹은 날보다는 속초를 떠나는 날 포장해서 집에 가서 먹은 기억이 훨씬 많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뭐 때문인지 식당의 인기가 부쩍 높아졌다. 갈 때마다 줄이 너무 길어서 한동안 아예 발길을 끊었다. 평일 아침이면 줄이 없을 것 같아 오랜만에 갔다. 웨이팅 없이 바로 앉긴 했는데, 식당에 사람이 거의 꽉 찼다.


고민 없이 바로 오징어물회 1인분을 시켰다. 여기는 가자미 물회와 오징어 물회 그리고 이 둘을 섞은 반반 물회가 있다. 최근에는 전복을 추가한 전복물회도 추가됐다. 나는 가자미와 오징어의 식감이 섞이는 걸 싫어해서 항상 따로 시킨다. 이 날은 오징어 물회를 시켰다(이 집의 시그니처기도 하다). 요즘 오징어 구하기가 어려워 때때로 오징어 물회를 안 팔 때도 있다고 들었는데 이 날 럭키했다.


주문하고 채 써는 소리가 들리더니 거의 바로 물회가 나왔다. 얇게 썰어진 투명한 오징어 빛깔이 영롱하다. 물회나 세꼬시를 먹을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얼마나 얇게 썰었나다. 특히 오징어는 좀만 굵게 썰어도 질기기 때문에 얇게 써는 게 정말 중요하다. 녹진녹진하면서도 부드러운 오징어 맛 최고였다. 식단을 하면서 위가 많이 줄어서 특을 시키면 남길 것 같아 일반으로 시켰는데 후회했다. 먹다 보니 오징어가 부족했다. 게다 오징어는 단백질 함량도 엄청나다는데 역시 특으로 시켰어야 했다. 간은 살짝 맵고 자극적인데, 물회는 이 양념맛에 먹는 음식이니까.

완도회 식당의 오징어물회


2. 칠성조선소

강원도의 겨울답지 않게 따뜻한 날이라 칠성조선소까지 걸어갔다. 멀지 않은 거린데 군장 같은 2박 3일 짐을 메고 걸으니 땀까지 났다. 여행 캐리어나 다름없던 차가 없으니 이동이 쉽진 않았다. 주말에는 줄까지 서는 조선소도 평일이라 그런지 한가했다. 조선소 스타일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롤 덕에 연말 분위기가 한 껏 났다. 스타보드와 소금빵을 시켰다. 올 때마다 늘 맛있는 게 쉽지 않은데 조선소 커피는 항상 맛있다. 조선소 고양이 칠남이가 안 보여 밖에 찾으러 갔다가 다른 고양이를 만났다(칠남이는 조선소 직원분네 집으로 입양을 갔다고 한다).

칠성조선소의 스타보드와 소금빵
칠성조선소의 연말


3. 금이네염소탕

수영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보니 출출해졌다. 곰치국을 먹고 싶어 춘선네에 갔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네이버 지도에 밤까지 영업하는 걸로 나왔는데 보통 점심까지만 장사하신다고 한다. 어디로 가나 고민하다 후보에 있던 염소탕 집으로 갔다. 인생 첫 염소탕이다. 염소탕집이라 노포일 줄 알았는데 너무 예쁜 가정집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깔끔하고 정감이 가는 곳이었다.


탕은 조리에 꽤 시간이 걸리는지 주문하고 한 15분 좀 넘게 걸린 것 같다. 염소탕이 나왔는데 양고기 향이 났다. 벌건 국물이라 짤까 봐 걱정했는데 짠맛은 아니었다. 들깨가루가 들어가서인지 양고기향이 나는 감자탕? 추어탕? 맛이었다. 고기는 굉장히 부드러웠는데, 소고기 같은 부드러움은 아니고 부드러운 오리닭가슴살 같은 맛이다. 누린내도 하나도 안 나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양념장이 나오는데 여기에 식초와 겨자를 취향에 맞게 추가해서 고기를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이 집의 탕은 소중대가 있는데 고기양의 차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사장님이 보통 아이들이 소자를 먹는다며 중을 추천하셨다. 대자를 시켜도 될뻔했다. 고기를 더 먹고 싶었다..ㅋㅋ 다음에는 둘이 와서 전골로 먹고 싶다.

금이네 염소탕(중)


4. 춘선네

여행 이틀차 전 날 수영의 여파로 몸이 무거웠다. 휴가지만 하루를 너무 늦게 시작하고 싶지 않아 꾸역꾸역 일어났다. 전날 못 먹은 춘선네로 갔다. 아침에 봐도 가게간판이 으스스하다. 귀신의 집으로 안내하는 듯한 빨간 글씨다.

으스스한 춘선네 입구

온라인 후기에 대놓고 현금결제를 유도해서 불쾌했다는 내용이 많았는데, 정말 들어가자마자 카드가 4만 원 현금가 3만 5천 원을 부르셨다..ㅎㅎ 나는 이미 알고 갔기에 크게 타격은 없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역시 가게는 한산했다. 조금 기다리다 보니 음식이 나왔다. 깔끔한 은쟁반에 반찬들이 옹기종기 나왔는데, 이런 구수하고 정갈한 한상을 받으니 일단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이게 무려 4만 원이라니. 근데 십 년 전에도 물곰탕 한 그릇이 2만 원이었으니 요즘 물가 생각하면 기절할만한 가격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접이 보기보다 상당히 깊어서 양이 많다.

물곰탕 한상

이러나저러나 중요한 건 역시 물곰 맛인데, 물곰도 신선하고, 간도 적당해서 정말 맛있게 먹고 왔다. 콧물탕이라고 불리는 물곰탕은 묵은지에 무와 파 그리고 물곰을 넣고 끓인 탕이다. 물곰 식감이 콧물만큼(?) 엄청 보드라워서 사람들이 콧물맛 같다고 하나보다(사람들이 어떻게 콧물맛을 아는지 모르겠다..ㅎㅎ). 보드라운 물곰살도 맛있었지만, 한 움큼 올라간 토실한 알과 담백 고소한 간이 정말 맛있었다.

춘선네 물곰탕

나는 보통 지리탕을 좋아하는데 빨간 탕에 대한 편견을 깨 주는 맛이었다. 빨간 탕 특유의 텁텁한 맛이 안 나고, 밥 없이 먹어도 될 만큼 간이 적당해서 좋았다(반찬은 많이 달다). 양이 엄청나게 많아서 남을 줄 알았는데 다 먹어서 스스로 놀랐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배가 터질 것 같다. 어제 좀 무리하게 수영을 해서 오늘은 쉬려고 했는데 저녁을 위해서 20바퀴라도 돌고 와야겠다.


속초 혼밥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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