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아이를 병들게 한다.

아이에게 시행착오할 기회를!

by 손나다



언젠가는 세상 밖으로 나가려는 아이의 날갯짓을 더 이상 막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아이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세상의 구석구석을 탐구하고 거침없이 나아간다. 부모에게 어느 정도 반항아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자아’를 더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부모가 위험하다고 하지 말라는 이런저런 일들을 시도하며 자기만의 길을 찾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인 아이는 ‘자아’를 찾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전에 반대에 부딪힌다.


보통 20대인 성인이 되면 자연스럽게 물리적으로 부모와 거리를 두게 되면서 스스로에게 집중할 기회가 생긴다. 운이 좋으면 20대에 독립하겠지만, 30대가 넘어서 결혼을 하여 자기 가정이 생긴 뒤에야 가까스로 독립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라고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그들도 때론 형편없는 시행착오를 겪는다. 사람이라면 완벽한 결정을 할 때보다 실수할 때가 더 많다. 문제는 자식보다 부모가 더 ‘오래’ 살아왔으니 더 현명한 선택을 할 거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는 경우다. 그리고 이러한 굳은 믿음은 자식이 부모의 ‘안전한 선택’을 믿고 따라야 한다는 강요로 이어진다.



부모가 살아온 시대와 자식이 살아갈 시대는 큰 차이가 있다. 부모의 시대에서 먹혔을 수많은 안전한 결정들이 자식이 살아갈 시대에도 합리적이란 보장이 없다.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다. 부모 스스로의 삶에 대입했을 땐 효과적인 방법이, 자식의 삶에도 똑같이 효과적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과도한 부모님의 간섭과 통제 속에서 자랐다. k-장녀이자 착한 아이 콤플렉스였던지라 나보다 부모의 감정과 기분을 먼저 살피는 데 익숙했다.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쳤다. 대학교도 집이랑 같은 지역의 대학교를 다닌 터라 그 흔한 기숙사나 자취의 경험도 없다. 혼자 집을 구해본 기억도 없고,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다닌 적도 없다. 이러한 환경에 갑갑함을 느낄 건강한 성인이라면, 성인이 되자마자 집에서 멀리 떨어져 독립하려고 시도했을 테지만, 나는 이미 이러한 상황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옷 만드는 게 배우고 싶어서 의류패션학과를 지원했는데, 엄마는 중국어학과가 비전이 좋을 것 같다는 이유로 계속 중국어학과를 권했다. 항상 엄마 말에 설득되어 결국엔 엄마 말대로 따랐던 나지만, 이상하게 학과만큼은 내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입학식 전날까지, 아니 학교 다니는 와중에도, 졸업하고 취업준비를 하던 중에도, 엄마는 틈만 나면 ‘엄마 말대로 중국어학과에 진학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은 날 원망하는 듯했다.



지금에 와선 ‘중국어학과’만큼 막막한 학과가 또 있나 싶다. 내 영역과는 별개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학과는 개인의 취향과 적성을 반영하는 영역인데, 엄마는 왜 그렇게 중국어학과를 고집했던 걸까? 이제와 생각해보면 엄마가 중국어를 배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엄마는 항상 하고 싶은 걸 딸인 나를 통해 대리 만족하고 싶어 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직접 하면 그만인데, 직접 할 용기가 나지 않았나 보다. 엄마 또한 문화센터에서 기초 중국어 회화를 수강하며 성조만 열심히 따라 하다가 중국어 공부를 그만두었다.



대리 만족하려는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20대 내내 긴 생머리나 긴 웨이브 머리였다. 항상 단발을 동경했지만 긴 머리를 요구하는 엄마 때문에 20대 내내 긴 머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 그냥 단발이 하고 싶으면 하면 그만인데. 달달 볶일 게 무서워서 그냥 엄마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두상이 작은 것이 콤플렉스였던 엄마는 평생 긴 머리를 하고 싶었다며 딸인 나에게 긴 머리를 하라고 설득했다. 하고 싶으면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본인이 하면 되는데 그걸 딸에게 시켜 대리 만족한 엄마나, 시킨다고 그걸 참고 묵묵히 수행한 나나, 둘 다 이상하다. 그 당시엔 이상한 게 뭔지도 몰랐다. 지금에 와서야 엄마와 나의 풍경이 괴상하게 여겨진다. 30대인 지금은 바빠서 미용실 갈 시간이 없어 자연스럽게 기르지 않는 이상 거의 모든 순간이 단발머리다. 30대에서야 내 취향이 생겼고 자아가 생겼다. 단발머리가 그 증거다.


그 밖에도 무수히 많은 반대에 부딪쳤던 목록들을 적어보자면,



지방대에 다니다 인서울하고 싶어 편입의 의사를 비췄으나 반대! 편입학원을 다닐 수 없어서 포기. 휴학하고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가고 싶었으나 휴학하는 거 자체를 반대! 휴학 한 번 없이 바로 졸업하고 취업 준비하다 급하게 취업했는데, 적성에 맞지 않아서 1년만 일한 뒤 이직하려 했으나 엄마가 아예 이 분야로 사업장을 차려 도와 달라고 하는 바람에 무려 6-7년간 엄마의 일을 도운 일 등이 있겠다.


연애하면서 수많은 간섭과 사생활 침해는 말할 것도 없다. 남편과 사귄 지 한 달 만에 발각되어 울며 겨자 먹기로 부모님과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밥만 같이 먹겠다’는 약속을 믿은 내가 너무 순진했다. 거의 취조(?)에 가까운 신상 조사를 한 뒤, 지금의 남편이 꽤 맘에 들었는지 엄마는 결혼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거의 사람을 안 재우고 반 미칠 정도로(?) 재촉해댔다. 애초에 1년 정도 사귀고 결혼하려는 계획은 무산되고 연애한 지 6개월 만에 속도위반 결혼처럼 속전속결로 결혼하게 되었다.



그 당시 엄마의 협박은 다음과 같다. “빨리 결혼하든지, 아니면 지금 헤어져!” 1년만 만나보고 결혼하고 싶다는 답변에는 “1년 만나보고 별로면 헤어지려고? 그때 되면 니 나이 벌써 31이야!” 엄마는 그렇게 나를 빨리 해치우고 싶었던 걸까? 요즘엔 30대 후반에 느지막하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당시 30대 초반인 나를 달달 볶아서 빨리 결혼시키고자 하는 엄마의 열정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오히려 아빠도 함께 동조하여 나를 설득시켰다. ‘사기결혼의 전말’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남편의 이러한 사기행각이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꽤 먹혔나 보다.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 수많은 이유 중 아마 나 같은 이유는 별로 없을 거다. 엄마의 이러한 지독한 간섭에도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어머님의 말씀대로 앞당겨서 하자'며 재빨리 결혼을 추진한 남편의 믿음직스러움과, 엄마의 지긋지긋한 통제로부터 벗어나고픈 마음, 그리고 무엇보다 남편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안 맞으면 그만이지’라고 아쉬울 것도 없었던 지난날의 연애와는 다르게, 남편과는 이상하게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결혼한 이유다.



물론 이 모든 게 핑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달달 볶일 게 무서워도 그렇지, 다 큰 성인이 부모의 말에 이렇게 충실하게 꼭두각시처럼 이행하는 게 말이 되나?



말이 된다. 내가 그 증거다. 그 당시엔 거의 체념 상태였고 아무런 의지도 없었다. 번번이 내가 하려는 일들이 저지당하고, 반대를 겪으면 내가 하려는 선택에 의심이 생긴다. 자신의 선택을 믿지 못하게 되는 거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나는 부모가 안전한 선택을 해줄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20대 내내 선택 장애를 겪었고, 원인 모를 우울증에 시달렸다.



며칠 전 우연히 20대에 블로그에 썼던 일기와 글들을 볼 계기가 있었다. 아마 오며 가며 누군가는 읽었겠지만 아무도 안 읽어도 상관없을 글들을 감정 쓰레기통처럼 마구 쏟아냈다. 그렇게 쌓인 글들이 넘쳐나 거의 10년 가까이 블로그를 했는데, 그 당시 글들을 읽자니 눈물이 솟구친다. 너무나도 암울하고 비관적이고 우울 투성이인 글 밑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엄마의 댓글이 달려있다.



대충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하면 될 일도 안 된다’는 훈계조의 댓글이었는데,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였던 블로그마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란 생각에 참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그동안의 글들을 모두 비공개로 돌리고 블로그를 접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과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자녀 인스타 사용 걱정됐나요? 이젠 부모가 직접 모니터링 가능’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작년 인스타그램은 10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내부 연구결과가 공개되며 큰 비난을 받았다. 당시 인스타그램은 만 13세 미만 어린이용 인스타그램 개발을 일시 중단하고 부모가 자녀의 인스타그램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했다. (...)

부모들은 패밀리센터에서 자녀의 승인 허가를 받아, 자녀가 인스타그램을 매일 몇 분씩 이용하는지 체크할 수 있다. 또 사용 시간도 제한할 수 있다. 자녀가 인스타그램에서 누구를 팔로우했는지, 또 자녀를 팔로우한 사람은 누구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자녀가 누군가를 인스타그램에서 차단하고, 그 내용을 자신의 팔로워와 공유하면 부모에게도 자동으로 알람이 뜬다. 메타는 이 기능을 이달 먼저 미국에 도입하고, 몇 달에 걸쳐 전 세계로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이 부분을 읽는데 소름이 돋았다. 부모가 과연 안전상의 이유로 어디까지 통제해야 옳은 걸까? 자녀의 sns 상의 사생활을 지켜주기엔 각종 디지털 범죄의 노출 위험이 더 크기 때문일까? 무절제한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고 디지털 범죄로부터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한 부모의 노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부모의 입장에서 기사를 읽어도 이건 너무 숨 막혔다.



sns는 자기표현의 욕구를 발현하기 위한 수단인데, 이러한 플랫폼조차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들여다볼 권리를 주다니!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만약 십 대라면 이런 식으로 나의 개인적 영역을 부모가 들여다보고 컨트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sns를 끊게 될 듯싶다.



언젠가는 독립하는 순간이 온다지만, 나는 늦어도 너무 늦게 왔다.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나에게 도가 지나친 간섭과 통제는 반발심을 일으켰고, 보통 사람이라면 진작에 반항했을 반항기를 30대에 치열하게 겪었다.



물리적 독립뿐 아니라 정서적 독립도 필요한데, 부모 쪽에서는 먼저 손을 놓는 법이 없다. 자식이 먼저 매몰차게 손을 놓아야 한다. 부모에게도 자식이 뜻대로 되지 않는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이 필요하다. 더불어 부모님을 실망시킬 용기도 필요하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로 얼룩진 유년기와 20대를 보냈기에, 누구보다도 자율성을 중요시하는 부모가 되었다. 자율성의 보장이 자칫 방임으로 흘러가지 않게 주의하면서. 부모의 선택을 강요하기보다 자식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과정을 겪게 하고 싶다. 자신의 선택을 믿을 수 있고, 자기 확신을 가지고, 때로는 시행착오도 겪어가며 그렇게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돕고 싶다. 부모는 이러한 조력자 역할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부모들이여, 아이들에게 시행착오할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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