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못 하는 엄마

요리 메뉴가 조금도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by 손나다

아주 오랫동안 ‘나 정도면 요리를 잘하는 편이지’라고 생각했다. 주부가 되면 저절로 요리를 잘하게 될 줄 알았다. 밑반찬 대여섯 가지는 거뜬히 차려낼 줄 알았다.



(밑반찬 대여 가지를 차려낼 순 있다. 문제는 그 대여섯 가지를 지금까지 카드 돌려 막기처럼 우려먹는다는 거다. 내가 레시피를 별도로 안 보고도 할 수 있는 밑반찬의 종류는 애호박볶음, 가지볶음, 콩나물무침, 숙주나물 무침, 오이무침, 메추리알 장조림, 계란말이 정도인데 그마저도 계란말이는 귀찮다는 이유로 잘 안 한다.)



6년 전 반찬 메뉴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요리를 주제로 글을 쓰다가 무심코 예전에 만들었던 요리 사진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놀랍도록 지금과 메뉴가 똑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정말 놀랍도록 똑같았다. 6년 전과 바뀐 게 하나도 없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애호박볶음, 가지볶음, 오이무침, 메추리알 장조림이었다!







요리를 못 한다는 사실을 결혼한 지 7년 차에서야 비로소 알았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꾸준히 힌트가 있었다. 충분히 알 수 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니 눈치가 이 정도로 없는 편인가 싶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마치 남자들이 ‘본인 정도면 운전을 잘하는 편’이라고 착각하는 것처럼, 아주 당연하게 ‘이 정도면 요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요리를 못한다는 걸 안 건, 2가지 사건을 차례로 겪으면서였다.



첫 번째 사건은 시부모님이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였다. 나름 정성껏 나의 필살기인 밑반찬 6종을 차려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셈이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2박 3일 머무는 동안 내 밑반찬에 손도 대지 않으시고 본인이 가져온 반찬만 드셨다. 2박 3일이면 중간에 한 번씩 외식을 한 걸 감안해도 6끼가 넘는다. 정말 먹는 시늉도 안 하시고, 내가 한 밑반찬뿐 아니라 끓인 국조차 한 입도 대지 않으셨다. 그냥 본인이 가져온 반찬과 맨 밥만 드셨다. 시어머니가 평소에도 국을 드시지 않고 맨밥과 반찬만 드셨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이번에 시댁에 방문하면 주의 깊게 살펴봐야겠다.



두 번째 사건은 아이들을 통해서였다. 집 밥을 먹는데 한 시간씩 걸리고 깨작거리기 일쑤인데, 외식만 하면 며칠 굶은 아이들처럼 두 그릇씩 먹는다. 지금에야 조금 컸다고 첫째는 밥을 두세 그릇 먹기도 하지만 반찬은 하나도 먹지 않고 밥이랑 국만 먹는 게 함정이다.



요리를 해 본 주부라면 다들 알 거라 생각한다. 힘들여 정성껏 차린 밥상에 식구들 누구 하나 호응도 없고 다들 깨작거릴 때의 서운함을. 더불어 탑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면서 남편이 앞으로 요리하지 말고 사 먹자는 핀잔을 들을 때의 허무함을.



쉽게 가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밑반찬은 반찬가게에서 사 먹었고, 국만 가끔씩 끓였다. 반찬이 없으면 국에 밥 말아서 먹였고, 밥이 없으면 우동, 국수, 스파게티, 짜파게티 등으로 대체했다. 그마저도 챙기기 귀찮을 땐 꼬마김밥으로 대체했다. 요즘엔 밀키트도 잘 나온다. 갖가지 요리 재료를 따로따로 사지 않아도 패키지로 모아놔서 밀키트 하나만 구매해서 끓이기만 하면 그럴듯한 요리가 뚝딱 완성된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땐 외식도 자주 했다. 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요리를 정석대로 하지 않아도 충분히 풍족하게 해 먹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거다. 유레카를 외치며 설렁설렁 쉽게 가자고 마음먹었다. 장 보는 값보다 사 먹는 값이 시간과 돈을 더 아껴준다고 위안하며 세상에 널리 퍼진 편리함을 마음껏 활용했다. 집 밥보다 돈은 좀 들었겠지만 요리에 쏟아붓는 에너지는 아낄 수 있었다. 투입된 에너지 대비 결과가 마땅치 않을 땐 전문가의 손길을 빌리는 게 낫다는 지론이었다.



그러다 다시 요리를 하게 된 계기는 바깥 음식이 너무 지겨워져서였다. 누구 하나 나에게 요리를 해달라고 요청하지 않았지만, 다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콩나물국을 끓이고 간단한 밑반찬으로 끼니를 차려냈는데, 딸들이 너무 맛있게 먹는 거였다. 심지어 먹으면서 “엄마 요리는 최고야!” 하며 양손으로 엄지 척을 날렸다. (양손으로 날렸다는 게 중요하다. 그만큼 진심이란 소리이기에) 그들도 바깥 음식이 지겨웠던 건지, 아니면 요리 못 하는 엄마를 달래기 위해 너무 어린 나이에 빈말하는 법을 배운 건지, 그도 아니면 그동안 내 요리 실력이 기적적으로 일취월장했는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로 남아있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선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이 정도면 그래도 요리 잘하는 편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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