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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Sep 19. 2023

[오스트리아 빈]ESTJ 맞다니까

아줌마 수다는 아무도 못 말려


여행 가방 두 개를 가뿐하게 채운 쇼핑을 마치고 빈으로 돌아가는 쇼핑 버스를 탔다. 가을의 머플러를 사고 돌아온 사이에 동작 빠른 사람들은 이미 자리를 거의 다 차지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자리한 곳 보여서 봄과 여름을 앉히고, 내가 앉을 자리를 찾기 위해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옆자리가 비어 있는 곳은 네 곳. 한 쪽은 남자, 나머지는 여자인데  두 곳은 서양 사람, 마지막은 동양 사람. 그것도 맨 앞자리다. 옆자리가 비었냐, 앉아도 되겠냐 물었더니 괜찮다길래 냉큼 앉았다. 아침 9시 30분에 아울렛으로 가는 버스를 탔고, 오후 6시에 돌아가는 버스를 탔으니 피곤이 몰려왔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중국 아줌마가 말을 걸었다.


(아래부터는 더듬거리는 영어 대화이다. 나보다 중국 아줌마가 영어를 조금 더 잘했다.)


중: 중국말 할 줄 아냐?
나: 아니, 나 한국 사람인데?
중: (갑자기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며) 나 한국에 가 봤어!
나: (예의상) 한국 여행 즐거웠나?
중: 그럼 그럼! 너도 빈 여행 즐거웠니?
나: 아직은 잘 모르겠어. 어제 빈에 왔거든.



중: 왜 아울렛부터 왔어?
나: 여행 가방이 고장나서 사러 왔지.
중: 여행 가방 어디서 샀어?
나: 00000.(뭘 이런 걸 꼬치꼬치 다 물어봐?)
중: 거기 가방 좋지. 나는 런던에서 하나 샀는데 여기보다 거기가 더 싸.
나: 맞아. 나도 바르셀로나에서 하나 산 적 있는데, 거기도 여기보다 싸.(당신이 런던에 가 봤다고? 나도 바르셀로나 가 봤지!)


나: (앞에 있는 장난감이 든 봉투를 슬쩍 보고) 이거 애들 선물이야?
중: 그래. 세 살, 여섯 살, 손녀가 둘 있어. 딸 가족과 함께 빈에서 살아.
나: 딸은 빈에서 뭐 하는데?
중: (갑자기 목에 힘이 들어가며) 나는 잘 모르겠는데, 무슨 국제기구에서 일해.
나: 딸이 굉장히 똑똑했던 모양이네.(자식 자랑에는 칭찬으로 대답하라고 배웠다.)


이제 할 말 다 했으니 자도 되겠지? 그러나 그 아줌마 생각은 달랐다.


중: 너 피부 좋다. 화장품 뭐 쓰니?
나: 00000
중: 나는 000 쓰는데 너무 비싸. 니가 쓰는 브랜드 여기서도 살 수 있나?
나: (잠 자기를 포기하고) 모르겠는데? 브랜드 이름 정확하게 알려줄게. 네가 찾아봐.(메모장에 영어로 한국 브랜드 이름 써서 보여주며)


그다음에도 숙소는 어디냐, 얼마에 예약했냐, 물가 작년보다 50% 오른 것 같다, 숙소와 외식비가 어마어마하게 비싸졌다, 부엌 있는 숙소에서 밥 해 먹으면 좋다 등등 수다가 이어졌다. 내리기 직전에는 자기가 잘 아는 가이드와 버스트램을 타고 갈 수 있는 빈의 숨은 관광지 소개까지 했다. 그렇게 출발부터 도착까지 한 시간 내내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자리 뒤에서 우리의 모습을 지켜본 봄과 여름의 소감:


십 년 만에 만난 절친인 줄 알았다.
둘 다 분명 최강 E다.


그래 인정하마. 엄마는 ESTJ 맞다.


사진-쇼핑셔틀버스 공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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