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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Sep 19. 2023

[오스트리아 빈]꼭 필요한 것만 사자 얘들아

그리고 여행 가방 두 개를 가득 채웠다


1. 여행 가방 두 개

가장 먼저 산 건 여행 가방 두 개! 쇼핑한 물건을 담아서 가야 한다는 실용적인 이유와, 십 년이 넘은 여행 가방 두 개를 이번 기회에 바꿔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24인치와 20인치를 샀더니, 점원이 큰 가방 안에 작은 가방을 쏙 넣어서 건네주었다. 가방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가방속도 채워볼까?



2. 배낭 두 개 등산복 한 벌

여행 가방 가게 옆에 등산용품 전문점이 보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한국에서는 눈 튀어나올 만큼 가격이 비싼 브랜드지만, 여기는 아울렛이니 혹시 모르니까 들어가 봤다. 다음 달 지리산 종주를 갈 수도 있다는 가을의 배낭을 사야 한다고 핑계를 댔지만, 속셈은 따로 있었다.


작년에 제주올레를 몇 번 다녀왔다. 올레길을 혼자 걷기는 뭐해서 제주올레 공식홈페이지에서 찾은 로그램에 참여했다. 자원봉사로 길을 안내하는 분을 따라 걸으니 걷기가 수월했다. 그때 내 눈을 확 잡아 끈 인솔자 선생님의 배낭이 바로 이 브랜드였다. 동행했던 길동무 중에서 가장 멋진 옷을 입은 사람 역시 같은 브랜드였고. 다들 형광색이나 빨강, 노랑, 초록색 등산복을 입고 있는데 검은색 바지와 회색 아노락을 입은 그녀가 참 멋져 보였다.


가장 먼저 가을의 배낭을 골라 사진을 찍어 카*으로 보내어 마음에 든다는 답을 받자마자, 내 배낭과 바지와 윗옷을 둘러보았다. 봄과 여름은 가방을 메고 등산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자마자 ‘이건 엄마를 위한 거야, 무조건 데려가야 해’라며 사라고 부추겼다.  개를 고르는데 십 분도 안 걸렸다. 한국에서라면 가을의 배낭 한 개 가격에 내 물건 세 개까지 얹었다(여행을 하면서 작은 배낭이나 등산복이 필요한 상황이 있었.  샀으면 어쩔 뻔 했나~).



3. 핸드백 하나와 지갑 두 개

봄과 여름은 이번 여행에서 지갑을 사겠다고 벼르고 왔다. 자기들 용돈으로 살 테니 나더러 비용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카드 몇 장 들어가는 자그마한 지갑을 고른 두 딸은 내게도 핸드백을 골라 보란다. 물론 사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나는 보세 옷가게에서 산 천가방을 칠 년째 들고 다닌다. 가죽을 흉내 낸 비닐 손잡이에서 껍질이 벗겨져 가죽 손잡이만 따로 사서 수선도 했다. 가방이 가볍고 아*패드도 쏙 들어가서 그만하면 딱 좋은데, 봄과 여름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침 아*패드가 들어갈 크기의 검은색 가방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어깨에 메어보니, 생각보다 가볍고 괜찮았다. 여름 카드로 지갑 두 개를 산다길래 내 것도 함께 결제하면 현금을 주겠다고 하다가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P아울렛은 회원 가입을 하면 10% 할인 쿠폰을 준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오기 때문에 아울렛에 도착하면 안내센터에 가서 쿠폰을 받는다. 나 역시 쿠폰을 받아서 여행 가방을 살 때 잘 사용했다(등산용품점에서는 자체 할인폭이 너무 커서 추가 할인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가방 가게에서 그만 할인 쿠폰을 사용하지 않고서 계산하고 말았다. 잠시 후 실수를 깨달은 우리는 다시 가게로 돌아가서 할인 쿠폰을 내밀었지만, 직원은 이미 결제했으니 다시 쿠폰 적용을 할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서라면 고객이 왕이지만, 유럽에서는 점원이 왕이다. 점원이 물건 없다고 하면 없는 거고, 점원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길게 말하지 않고 알았다 항복하고 나왔다. ‘가방값 10% 할인이면 저녁 장보기가 한 번인데 아깝다’를 되뇌며...... 다음 가게에서는 절대로 실수하지 말아야지 굳게 결심했다.



4. 남자 머플러

물욕이 없기로는 가을도 만만치 않다. 옷장에 있는 옷으로 충분하다는 가을이 딱 하나 욕심낸 소품이 머플러다. 여자들은 가볍고 얇은 스카프가 있는데, 왜 남성용은 없냐며 아쉬워했다. 나이가 들어가니 날이 추워지면 목이 허전한 모양이다.


남성복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보이길래 가을을 생각하며 들어갔다. 남성용 머플러를 보여 달라고 했더니, 매끈하고 가벼운 머플러를 멋스럽게 몇 개 걸어둔 방으로 안내했다. 손끝에 차르르 감기는 감촉이 기가 막혔지만, 가격은 더 기가 막혔다. 좀 더 둘러보고 오겠다고 말한 뒤 가게를 나왔다. 다른 가게를 여러 군데 들렀지만, 이미 높아진 눈은 내려올 줄 몰랐다. 쇼핑을 다 끝내고 빈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그 머플러가 생각났다.


말할까 말까 고민스러울 때는 말하지 말고, 살까 말까 고민스러울 때는 사야 한다는 명언이 있다. 셋이서 돈을 모으고 앞으로 삼 년 동안 가을에게 생일 선물은 없다고 의논한 끝에 다시 그곳에 갔다. 머플러를 다시 보러 왔다고 했더니, 서랍을 열 개 정도 열면서 가지고 있는 머플러를 다 보여주었다. 그래도 우리의 선택은 맨 처음 본 바로 그것!


여자 셋이 와서 남성용 머플러를 골랐으니, 점원은 선물이냐고 물었다. 당연하지! 세 여자를 오스트리아로 보내준 남자의 생일 선물이라고 했더니, 하늘하늘한 포장지로 머플러를 감싸고, 검은색 상자에 담은 뒤 회색 리본을 묶어서 건네주었다.


가을은 제발 이 머플러의 가격을 몰라야 한다. 여름이 검색을 하더니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는 제품이란다. 다행이다. 외국에만 있는 물건의 가격까지 알아볼 능력은 없는 남자다. 어쨌든 우리는 가을의 생일 선물까지 야무지게 마련했다!


사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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