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계획에 없던 A를 만났다.
근처 들를 일 있으니 시간 되면 보자는 메시지가 반가웠고,
반복되는 일상과 거리두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내일 뭐 먹으러 가지? 기대감에 행복하게 잠들었다.
다행이었다. 저녁 약속이 없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아기가 하루에 몇 명씩 태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그날이었다.
아침부터 밀려드는 산모들로 분만실은 full bed 였다.
"정말로 '좋은 날'이 있기는 한가 봐요", 동료들과 짧은 틈을 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침 첫 수술 어레인지부터 시작하여 수술 예정자들을 받아야 했고
오후에 수술 예정이었던 산모는 입원하자마자 급하게 수술방을 잡아야만 했고
경산모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상황에 자궁경부가 거의 다 열린 초산모는 진통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조기 양막 파수가 의심되는 산모를 벽을 사이에 두고 상태를 살펴야 했다.
미어캣처럼 비수축 검사 모니터를 살피며 산모들이 조금만 아파하는 소리가 나도 뛰어가 내진하는 스탠바이 상태가 이어졌다.
또잉이(태명)를 시작으로 줄줄이 분만이 이어졌고
기진맥진한 상태로 퇴근 전 인계를 마치고 나니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이다.
약속을 잡아 놓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대로 뻗어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금요일 저녁의 연남동. 사람이 그나마 적은 식당에 들어가 족발을 시켰다.
2년 만에 만났지만 어색함 없이 근황을 풀어갔고 주로 나는 듣는 쪽이었다.
원래 나이가 들수록 친구라도 속 깊은 얘기를 하기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아름답고 좋은 얘기만 하는 게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기 때문일까? 굳이 '진짜 고민'을 꺼내봐도 답이 없으니 허무하게 술잔이나 따르고 헛헛하게 헤어지기 싫어서일까?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조심스레 털어놓는 그동안의 고민과 좌절과 분노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아도, 표정만 보아도 이미 온전히 전해져 왔다. 사실 처음엔 밥만 먹고 헤어질까 했었는데 막상 만나서 얘기해보니 그런 고민은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응어리를 풀어내려면 아마 몇 날 며칠도 부족할 것이다.
자리를 옮겨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간간이 터져 나오는 A의 거친 말에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
본인이 속한 곳에서의 사람에 대한 실망감, 이해받지 못하는 답답함, 단절과 고립 속에 밀려드는 외로움. 그 가운데 핵심 감정은 '슬픔'이었다. 삶이라는 굴레에 갇혀 아등바등하는 모습은 나와 똑같았다.
그래도 이 사람은 내게 진짜 '친구'구나, 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시시콜콜 서로 일상을 공유하지 않아도, 몇 달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전혀 몰라도 상관없었다. 편견과 오해 없이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이가 벗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환경의 변화가 생겨 앞으로 희망을 가져보겠다는 A에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사는 게 큰 차이 없는데 모든 게 너무 좋아지지는 않을 텐데.'라는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으니까.
그냥, 나는 묵묵히 응원해주면 되니까.
아직 후텁지근한 여름밤, 홍대입구에서 우리는 웃으며 각자 버스에 올라탔다.
내친김에 우리는 토요일 아침 B까지 조인하여 만나기로 했다.
B는 6년 만에 만나는 것이었고 2년 전에 한번 마주쳐 "오! 언제 한번 보자"인 상태였다.
서로 일정이 빠듯했지만 굳이 시간을 짜내서 9시 반으로 정했고 장소는 세 명의 중간지점인 신도림역으로 정했다.
브런치 세트 메뉴, 그리고 셋 다 '뜨아'를 골랐다. 이 여름날에 뜨아를 마시는 독특한 취향이 서로 같다는 사실에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셋 다 음식 사진을 예쁘게 찍지 못한다는 공통점도 같았다.
도란도란 이야기가 오갔다. 그냥 이렇게 사람들과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나는 현실주의자이고 B는 '다정한 이웃' 같은 사람이고 A는 그 중간 지점 어딘가였다.
"네가 이때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질 거야. 이제 잘 될 거야."
B의 따뜻한 위로. 마치 햇살 비치는 카페의 평화로운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어차피 그 말 자체는 공기로 흩어지고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것들이 산더미고 또다시 좌절하고 일어서야 한다.
그래도 그 배려와 마음이 전해지니 사르르 녹는 것이다.
아침 회동이 끝난 후 각자 세 갈래로 흩어져 제 갈길을 떠났다.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번 기약을 하며.
헤어진 후에도 나는 A에게 뭔가 적절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으나 할 말이 없었다.
그냥, 오래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진심을 담아 카톡을 보냈다.
부드러운 케이크 같은 말은 하지 못하더라도 언제든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준비는 되어 있노라는,
다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