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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KO Dec 31. 2022

걷고 싶게 만드는 풍경

집 안에 있으면 안 된다. 나가야 한다.

오늘은 어딜 걸어볼까?




제주도에는 바다를 끼고 산을 끼고 걷기 좋은 곳이 아주 많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 둘레길, 오름 등 제주도를 걷기 위해서도 많이 오는 듯하다. 그런데 정작 나는 육아 핑계로 많이 걸어 다니지 않았다.

사실 힘들다 애랑 같이 걷는 거.. 갓난쟁이 때는 업고 이고 걸어 다니면 허리도 어깨도 심지어 골반까지 너무 아파서 포기..(그나마 남편이 업고 가면 오케이..) 더  커서는 애가 이거보랴 저거보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혹 혀 다칠까 조마조마해서 안 걷기 ㅋㅋ 어린이집 보내고는 열심히 다니리라 마음먹었지만 이미 게을러진 몸 바뀌려 하지 않았다.(이미 자동차에 익숙해져 버린 몸뚱이...) 그러다 얼마 전 지인과 함께 윗세오름에 오르고 난 뒤 며칠을 몸살로 앓은 뒤부터 이대로는 안 되겠어 내가 제주도에 온 이유가 건강하기 위해서인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핑계를 최대한 누르고 최근에서야 조금씩 제주도를 걸어보기 시작했다.




"제주도에 어디 오름 가봤어?"

"올레길 많이 걸어봤겠다!! 추천할 만한 곳 있어?"


제주도에 살면 다들 걷기 좋은 곳, 핫스폿을 많이들 물어본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대답해줄 곳이 없었다. 제주 와서 제대로 걸어 다닌 적이 몇 번 안 되기 때문이다. 그냥 이미 유명한 곳들로 대충 추천해줄 뿐이었다. 아니면 인스타 찾아보면 다 나오니까.. 굳이 나에게 묻지 말라고 말하기도 했다.


젊을 때는 대중교통 이용해서 여행 가고 걷고 걷고 또 걸어 다니며 여행하는 걸 좋아했으며, 혼자서도 그렇게 잘 다니는 편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들면서 뭔가 혼자 가는 게 무척이나 뭐랄까.. 외롭게 느껴졌다. 특히 제주도에  산지 3년이 다돼가는데 같이 걸을 친구 하나 없다니..라는 생각에 무척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혼자라도 걸어야 되는데... '


어디 핫한 곳 있으면 가고픈데 혼자는 싫고, 그래서 지인들에게 연락했는데 본의 아니게 연속 거절을 당할 때면 매우 의기소침해져서 혼자라도 가야지 하던 마음까지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 그나마 주말이 되면 남편과 아이랑 함께 어디라도 나가니까 그렇게라도 좀 걷는 게 다였다. 결국 난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쉬는 주말만 기다리는 주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도 차로 이동하게 되고, 날씨 탓하면서 체질에 안 맞는 집순이 놀이를 하다 보니 저질체력이 더욱 약해져 있었다. 결국 지인과의 영실코스 등반과 함께 나의 몸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9월 말쯤에 대구에 사는 친한 언니가 제주도에 혼자 놀라웠다.  외로웠던 나의 삶에 오아시스 같은..(뭐래?) 암튼 혼자 걷기 싫어서 안 걸어 다녔는데 친한 언니가 오니까 들떴었나 보다. 언니가 영실코스 같이 가자는 말에 힘들 거 생각 않고 바로 오케이 했다.


그나마 어리목보다는 쉽다고 해서 선택한 영실코스인데.. 누가 쉽다 했던가.. 물론 시작은 뭐 수다도 떨고 신나게 올라갔떠랬다. 하지만 오르막이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나는 말이 없어졌다. 최근 준산악인에 가까운 언니는 잘 올라갔지만 나는 점점 뒤처졌다. 평소 걷지도 않아 놓고는 갑자기 영실코스를 가려니 다리가 쇳덩이 보다 무거웠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서 나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라갈 수 있었고 남벽분기점까지 갔다 왔다.


그리고 이틀 뒤 나는 몸살을 앓았다. 평소에 비축해놓지 않는 체력인데 윗세오름 오르겠다고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모양이다. (거기에 한라산까지 왕복 2시간 운전도 힘들었던 거 같다.)  정말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다. 살면서 이렇게 몸살을 심하게 앓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앓기를 3일 차 병원 가서 약 처방받고 조금 나아지면서 생각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건강해지려고 제주도 왔는데 이건 아니야.. '


사실 집을 나서기만 하면 잘 걸어 다니는 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걷는 걸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이놈의 집에 있으면 요즘은 나가기가 싫어진다. 뭐 집에 있다고 노는 것도 아니기에 더욱이 안나가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젠 혼자여도 급한 일 없으면 나가서 걸어보기로 했다. 하 못해 동네 한 바퀴라도!





제주도는 걸어야만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이 있다.  바닷가에 산다면 숲이 울창한 곶자왈을.. 숲에 산다면 노을에 물드는 제주도 바다를 말이다.  그건 어느 지역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제주도는 조금만 이동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길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그러니 올레길 코스도 그리 많은 것 아니겠는가.


그런 멋진 곳에서 살고 있는 내가 이제야 걷기 시작한 이유는 과연 뭘까?.. 따지고 보면 그냥 다 핑계였던 것이다. 힘드니까.. 아이가 있어서.. 육아로 바빠서... 집안일 때문에 등등 뭐든 꾸준히 해야 느는 것처럼 걷기도 꾸준히 해야 그것이 건강이 되고 힐링이 되고 나중에 삶의 일부가 되지 않겠나 싶다. 정말 나오면 드는 풍경들이 가득한데 집 밖을 나오려 하지 않으니 문제였던 것이다.


아직 평일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이라는 정해진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이 절대 짧지는 않으니까 이젠 더 이상 육아 핑계는 접어두고 일주일 최소 2번은 열심히 걷자!!라고 정해 본다. 그리고 동안 미루기만 했던 오름 프로젝트도 다시 시작해 보련다.   제주도에 살면서 유명한 오름들 다 안 가보면 뭔가 손해일 것 같으니까 지금이라도 착착 오름 도장 깨기 해보자고!! 그리고 조금씩 올레길 정복도 꿈꿔본다.


"제주도 가면 오름도 오르고 올레길도 정복하고 건강도 챙기자"


제주도 오기 전 우리 부부의 목표였는데.. 나름 남편은 건강을 많이 찾았는데..(지금은 회사일 때문에 다시 초췌하지만) 나는 오히려 더 나약해진 것 같아서 요즘 반성하는 중이다. 괜히 다이어트 약이나 검색하고 있고 말이다. 이젠  그러지 말고 제주도의 자연을 만끽하며 건강과 다이어트를 모두 챙길 수 있도록 앞으로 열심히 걸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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