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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레는삶 Apr 24. 2023

아직도 10킬로미터는 힘들기만 하다.

일요일 오후이다. 나른해지는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나갈까 말까 고민해 본다. 지난주 이틀밖에 운동을 하지 못했다. 러닝훈련은 한주에 세 번 하도록 되어있다. 숙제를 하지 못한 학생의 마음이다. 낮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더 이상 앉아있다가는 마음이 편친 않을 것 같았다. 서둘러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오늘 예정된 훈련 프로그램은 가상마라톤이다. 1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달리는 거다. 전날 콘서트를 갔다 와서 피곤이 다 풀리지 않았다. 오후시간이라 자외선이 약간 두려웠다. 일단 탄천으로 나갔다. 눈앞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부담스러웠다. 초반에는 컨디션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숨차지 않고 뛸만했다. 4킬로미터를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뒤에 바짝 붙어있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내 옆을 쓱 지나면서 "파이팅! 잘 뛰시네요." 하면서 어떤 남자분이 지나갔다. 엉겁결에 받은 인사였다. "네, 파이팅" 하고 답했다. 그런데 내 목소리 힘없이 나왔다.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렇게 외치는 파이팅도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잘 뛰시네요'라는 말이 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 몸이 조금씩 지쳐갈 때쯤 들은 말이다. 내 옆을 스쳐갔기 때문에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빈말일지 모르지만 그 한마디가 힘이 되었다. 그분은 저 멀리 내 앞으로 나아가며 잠시 후에는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날이 덥고 직사광선을 받으며 뛰려니 목이 마르면서 더 지쳐갔다. 평소에 다니는 길은 그늘이 거의 없다. 자전거 도로 쪽은 제법 그늘이 있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면서 자전거 도로의 한편을 차지하며 뛰었다. 지난주에 뛸 때보다 몸이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5킬로미터라도 마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래퍼 이영지가 힘들 때 성공한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걸 해낼 수 있다고 했다. 난 반대 상황을 생각했다. 10킬로미터를 완주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는 내 모습을 그려봤다. 완주를 하던못 하던 걸음걸이는 무거울 거다. 하나 마음은 다를 거다. 할 일을 말끔히 끝냈을 때의 성취감과 상쾌함을 즐길 수 없을 거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하루종일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는 열패감에 휩싸일듯했다.


난 끝까지 꼭 달릴 수 있다.


이 생각만 하고 나아갔다. 여유롭게 다른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풀코스를 달리는 사람들은 지치는 지점이 어디쯤일까? 내가 즐겨보는 달리기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 중에 'kofuzi'가 있다. 그는 2023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출전해서 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0킬로미터 즈음에 지쳐서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반에 페이스 조절에 욕심을 내서 그런 듯했다. 온몸이 지쳐 보였는데 마음을 다 잡고 마지막 피니쉬 라인을 밟았다. 영상으로만 봐도 내 가슴이 벅차올랐다.


7킬로미터 지점을 지날 무렵에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졌다. 물 한잔이 그리울 뿐이었다. 페이스 향상을 포기하고 완주를 목표로 달렸다. 그러던 중 맞은편에서 초반에 만났던 아저씨를 다시 만났다. 나를 앞질러 가셨던 그분은 저 멀리 어딘가까지 달리다가 돌아오는 길인가 보다. 이번에는 힘을 내서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외쳐보았다. 땀이 나서 안경이 자꾸 흘러내려서 안경을 벗고 달리고 있어서 아저씨 얼굴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었다. 다만 실루엣만으로 추축 한 뿐이었다. 가볍게 달려가는 아저씨 모습이 그저 부러웠다. 이제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하며 핸드폰에서 남은 거리를 확인해 본다. 1킬로미터가 남았다. 9킬로미터를 달렸으니 1킬로미터를 남은 시점에서는 100미터, 200미터를 쪼개면서 거리를 측정하게 된다. 그럼 100미터도 힘겹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마지막 50미터를 남기고 남은 힘을 쥐어짰다. 발걸음 한 번을 디딜 때마다 어깨와 머리가 아래로 쳐졌다. 출발점에 드디어 다시 도착했다.



수고했어. 잘했어


나에게 스스로 외쳐본다. 언제쯤이면 나에게 10킬로미터가 만만한 거리가 될 수 있을까? 아직도 갈길이 멀다란 건 이런 걸까?  지금은 10킬로미터를 향해 달리지만 5킬로미터를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이미 잊었다. 혹시 10킬로미터가 만만해지고 하프 마라톤을 향해서 연습하는 때가 언젠가 올것이다. 그 때도 지키고 힘든 순간에만 몰입하지 말자. 10킬로미터를 해냈다라는 기분을 가끔은 소환해봐야겠다. 힘들었지만 끝까지 해낸 내가 대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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