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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반대

by 여운

정반대는 생각보다 가까운 사이다.

의미론에서 '반의 관계'는 다른 모든 의미 자질이 같고, 딱 하나의 의미 자질만 다른 관계로 정의된다. '여성'과 '남성'은 똑같이 생명이고 인간이고 지성체지만, 딱 한 가지, 성별이라는 의미 자질만 다르다.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훨씬 많다. 반면, '여성'과 '루이보스 오렌지'는 다른 의미 자질이 너무 많다. '루이보스 오렌지'는 생명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지성체도 아니고 성별도 없다. 공통점 하나 없는 '여성'과 '루이보스 오렌지'는 정반대가 아니라 그냥 아무 관련 없는 사이다.

그래서인지 단어의 의미를 임베딩으로 표현하는 word2vec 모델을 학습하면 '반의 관계'와 '유의 관계'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여성'과 유사한 단어를 찾으라고 하면 '여자', 'woman'과 같은 유의어가 나오긴 하지만, '남성', '남자'와 같은 반의어가 나오기도 한다. 공통의 의미 자질이 많아서일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쌓아라." 아마 현대인이 가장 많이 듣는 인생 조언 중 하나다. 이 '다양한 경험'은 주로 해외여행으로 대표되는데, 해외여행과 일상을 비교해 보자면 장소, 언어, 주변인 등 모든 의미 자질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경험이다. 살면서 다양한 의미 자질을 맛보는 건 당연히 의미 있다. 나에게 꼭 맞는 의미 자질을 찾기 위해서라도. 내가 진저리 치는 의미 자질을 알고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지만 '다양한 경험'에 '정반대의 경험'도 크나큰 영역을 차지한다. 내가 진저리 치는 의미 자질이 다른 자질과의 조합에서는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면?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한 러닝'은 싫어하지만 '봄 날씨를 즐기기 위한 러닝'은 좋아할 수도 있다. 나에게 꼭 맞는 의미 자질이 다른 자질과의 조합에서는 정이 떨어진다면? 나는 '방구석에서 흥에 겨워 춤추기'는 좋지만, '회사 장기자랑으로 춤추기'는 딱 질색일 수도 있다.


'다양한 경험'을 위해 모든 의미 자질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필요는 없다. 오늘과 정반대의 경험을 쌓으려면 바꿔야 하는 건 딱 하나다. 항상 새로워야 하는 정신없는 세상에서, 딱 하나만 새로운, 정반대의 경험도 소중하게 여길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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