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우선생님
의식이 희미한 중에도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이 답답하고
그걸 산소 호흡기 때문이라고 착각했던 걸까.
백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나는 목 깊숙이 삽입되어 있던
산소호흡기를 뺐다고 한다.
그때 목을 크게 다쳤고 목 안이 너무 부어서
기구의 재삽입이 불가능해
산소 공급이 중단되었다.
자가 호흡이 안 되는 상태에서
산소호흡기 삽입이 불가능해지자
산소를 공급할 방법이 없어서
이제는 손을 쓸 방도가 없으므로
곧 사망할 것 같다고 말하는 의료진에게
남편이 살려달라고 다시 통곡하며
간절히 매달렸다.
부산 개금 백병원의 김병우 선생님께서
젊은 환자라 나이가 아까우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며
산소호흡기 삽입을 재차 힘겹게 시도했고
부어 오른 목을 뚫고
마지막에 기적처럼 성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의료진은 남편에게
이전 병원의 심정지 시간도 너무 길었고
이번에도 산소공급이 안된 시간이 길어서
뇌손상이 예상되므로
연명치료의 가능성이 높다며
운이 좋아서 어느 정도 회복하더라도
다시 걷는 것까지는 힘들 것이고
목을 많이 다쳐서
말을 못 할 가능성도 높다고 했다.
남편은 평생 누워 있어도 되고
말을 못 해도 상관없으니 살려만 달라고 했다.
평소에 서로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연명치료만은 하지 말자고 약속했지만,
막다른 생사의 길목에서
그는 약속이고 머고 다 잊고
살려만 달라고 막무가내로 매달렸다.
양팔에 십여 개의 수액 주머니와 인공호흡기와
여러 장비를 달고 있었으므로 무의식 중에라도
또 뭔가를 건드릴까 우려하여
침대의 네 기둥에 사지를 결박했다.
나는 그렇게
수없이 생사를 오고 가는 줄도 모른 채
깊은 코마 상태에 빠져 있었다.
가족의 피를 말리며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눈을 떴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내가 왜 여기에 있고 여기는 어디인지
알지 못했으며 숨이 잘 쉬어 지지도 않는 데다
숨을 쉴 때마다 무시무시한 가슴의 통증을 느꼈다.
긴 시간 진행된 심폐소생술의 후유증으로
갈비뼈가 골절 직전까지 갔던 것이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가 상하로
미세하게 움직이는데 그때마다
극심한 통증을 느껴야 하니 의식이 돌아온 것이
나에게는 생지옥이 되어버린 셈이다.
가족에게 나의 의식이 돌아왔다고 전해졌지만
코로나로 중환자실의 보호자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탓에 직접 확인을 할 수 없게 되자
남편이 의료진과의 영상 통화로
내 얼굴의 간접 확인을 부탁했고 받아들여졌다.
영상으로 남편의 얼굴을 보자
그가 흐느끼며 말했다.
“ 여보, 살아나 줘서 너무 고마워.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지형이랑 내가 있으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아무 걱정하지 마.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벽 때문에 우리가 안 보이는 것뿐이야.
여기는 병원이고 당신은 중환자실에 있어.
당신이 많이 아파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어.”
나는 사지를 결박당한 채로
산소호흡기를 물고 있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눈만 깜빡였다.
그때 이후로 잠시 깨어 있다가
길게 잠드는 것을 반복하며
김병우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