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by 자유인


착한 척하는 사람들이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나한테도 답답하게 살지 말라고

세련된 충고를 하는 고마운 사람도 있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질적으로 예민하게 느끼는

연민의 감정을 잘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서는

배려에 집착하는 성향이 자존감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도 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버질 좀 그만하고 본인의 건강이나

잘 챙기라는 우정 어린 조언도 들었다.

선행을 통해 신에게 행운을 구하는

기복 선행에 대한 집착이라는

오해를 받은 적도 있고

그런 수준의 어린 시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편견이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누가 옳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고

그냥 기질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을 정리하니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세월을 겪으면서 아주 우연히

그런 이성적인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조금 신기했다.

그들은 아름다운 개인주의라고 주장하는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과 필연적으로 엮이면서

봉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억울함을 느꼈고

때로는 피해의식에 넘어져서 분노했다.


나는 이런 것을 사랑 총량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자발적인 보살핌이든 상황에 등 떠밀리든

인간은 사랑의 총량을 채워가는

운명의 존재들인 것 같다.


타인에 대한 연민에 민감한 사람들에 비해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이

절대적인 결핍을 반복하거나

상황 자체는 풍요로운데 정작 본인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상대적인 결핍의 인연으로 흘러가

다양하게 세상에 봉사하게 됨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물질적인 것이든 정서적인 것이든 분야를 막론하고

비정함이 똑같은 결핍을 불러옴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닌 나이가 되었다.

세상은 물질 세계와 비물질 세계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다고 한다.


비슷한 사례가 무수히 반복되지만

자신과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지혜가 없을 뿐이다.

알아차림은 통찰이고 반복된 통찰로

세상과 삶의 전체적인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