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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진 Mar 28. 2024

나의 어머니를 추모하며

어려서도 행복하게 자라지 못했고

사는 것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는지

나는 그동안

생일이 행복하지 않았다


올해

생일이 처음으로 행복했다

아침부터 하루종일 평온하고

잔잔한 행복감을 느꼈다

살아있음이 따뜻하고 즐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엄마가 돌아가셨다




동생이 보는 앞에서

심장마비로 엄마가 쓰러지신 후에

병원으로 이송되어 뇌사상태가 되고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가족들과 임종면회를 하고

곧이어 돌아가셨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장례식부터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항년 82세로 소천하신 우리 엄마는

외할아버지가 네 살배기 엄마를 남겨두고

일찍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 때문에

외할머니마저 바로 재혼하시고

자신의 할머니의 손에 외롭게 자랐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쁜 남자의 종합선물세트인

우리 아빠를 만나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겪으셨다


그리고

중풍으로 6년을 투병하신 아빠의 간병으로

본인의 건강까지 무너져가는

고통스러운 시간을 버티고 나서

아빠가 돌아가시고

조금씩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자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간마저도

어느 자식이 망하고

어느 자식이 아프고

어느 자식이 이혼을 하고

어느 자식이 엄마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것을 지켜보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인생은 그런 것이었다

행과 불행의 기차를 수없이 갈아타며

그 속에서 나를 다독이며 살아남는 것이었다




조금 다행인 것은

이 딸과도 살아보고

저 딸과도 살아보는 행복을 누리셨고

보통의 좋은 아들들보다

훨씬 멋진 어느 의 배려로

바다가 보이는 특급호텔의 숙박과 식사를

원 없이 누리기도 하시고

하와이 호주 괌 사이판 제주도를 두루 여행하셨다

아빠랑 살 때는

몸빼 몇 장으로 사계절을 버티셨는데

딸들과 사시면서는

버버리와 모피등 할머니들의 로망인

예쁜 옷들도 입어보셨다

그렇게 18년을 행복하게 사시다가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던 엄마는

목련이 만발한 새 봄의 한가운데서

여행을 떠나듯 훌쩍 가버리셨다


그 모든 슬픔과 고통을 삼키시고

끝까지 삶을 버티어주신

우리 엄마...

엄마의 인생에 행복한 구간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엄마가 남기신 명언이 기억에 남았다


다 놓아버려라


내가 좋으면 세상에 나쁜 사람이 없다




엄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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