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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는 길
19화
성자가 된 여인
by
자유인
Aug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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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같은 병실에서 옆 침상에 계셨던
70대 초반의 여성
분에게
매일 조금씩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어린 시절요?
나는 포항의 구룡포에서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났지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돌아가셔서
남동생 둘 여동생 둘을 보살펴야 해서
졸업 후 마을금고에서 경리를 보았지요
20대 중반도 되기전에 큰 아버지께서 시집을 가서
집안에 더 보탬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끈질기게 설득을 해서 권하는 분과 선을 보고
등 떠밀려 억지로 결혼을 했지요
그러나
막상 시집을 와보니 시댁도
넉넉하지 않아
앞이 캄캄했지요
어느 날 갑자기 뱃사람의 아낙이 되어
남편이 잡아온 물고기를 팔며
아들 하나를 낳고 양가 가족들을 두루 살펴가며
열심히 살았지만 시댁 식구들의 냉대를
아주 긴 세월 동안 견디어야 했지요
나는 그냥 내 마음이 시키대로 내 도리를 했는데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가 죽기 전에 나에게 참회를 하고 싶다며
미안하고 고마웠다며 사과를 하시고
다른 가족들도 모두 저에게 무릎을 꿇게 하셨어요
끝까지 몰라주거나 모르는 척해도 할 수없는데
늦게라도 알아주니 고마웠지요
기억에 남는 피붙이 친척요?
형편이 좋은 고모가 계셨어요
잘 사는 집안의 조카들만 예우를 해주고
우리들은 무시하고 냉대를 해서 조금 서러웠지요
그녀의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셨다는
소문을 끝으로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고향에 갈 일이 생긴 나에게
엄마가 챙겨보라고 하셔서 수소문 끝에 찾아가니
쪽방에서 반쯤 넋이 나간 채로
홀로 죽어가고 있었어요
급히 병원으로 옮기고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2주 정도 사실 것 같다고 했지요
그녀의 자녀에게 연락을 했더니
너무도 무성의하게 반응을 해서
수업료로 뺨 한 대를 쳐서 보내버리고
임종하실 때까지 매일 보양식을 챙겨서 살펴드리고 제 품에서 편히 돌아가셨어요
우리 남매요?
어느 날 동생들이 명절에 모여
지금의 자기들이 있는 것은 제 덕분이라 하기에
몰라줘도 할 수없는데 알아주니 고맙다고 했지요
지금요?
고맙게도 다들 잘 살아주네요
기억에 남는 친구요?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등록할 돈이 없어서
3
0만 원을 꾸어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거절하기에 조금 서운했지요
나중에 그녀가 형편이 기울어 300만 원을
꾸어 달라하기에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보시라고 생각하고 내어주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두절되었지요
어디에서든
그 사람이 잘 지내길 바랄 뿐입니다
남편요?
저에게 평생을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지요
아들요?
푼푼이 모아둔 돈을 투자해 주었더니
과메기 공장을 성공시켜 기특하지요
저에게 늘 고맙다고 해서 저도 고맙지요
그런데 다들 그렇게 살잖아요
자식 지키려고 참다 보니 나라고 할 것이 없더군요
며느리요?
격주로 찾아와 손주들을
보여주는 게
너무 이쁘고 착하더군요
제가 평생을 장사하면서 아들을 못 챙긴 게
한이 맺혀서 내 나름 회한을 풀고자
제가 간병통합병원으로 수술하러 들어오면서
여름에 손자들 물놀이 데리고 다니라고
숙제를 내주었더니 계속 사진을 찍어서 보내줘서
너무 기쁘고 흐뭇해요
억울함요?
모두 내 복이고 내 팔자고 내 업이지요
죽음요?
서두를 것도 없지만
대신 두렵지도 않아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언제나
좋은 마음을 선택하며 열심히 살았으니까요
그게 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분의 말씀에는
에고가 부르는 망상인
아상
즉 나라는 것이 따로 없었다
반드시 이렇게 흘러가야 한다는
고정된 상 즉 아집이 없었다
욕심과 오만함과 이기심이 없었다
과장과 허풍과 위선이 없었다
큰 어른을 만난 덕분에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인 줄 오해하며 살았고
내가 부당하게 희생했다고
착각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겸손과 겸허함을 배워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부질없는 불평들이 엄살처럼 느껴졌고
수시로 올라오던 집착들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고난을 수행 삼아
스스로 바람이 되어버리면
그 무엇에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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