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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인 Sep 06. 2024

응답하라 949

얼마 전

네팔로 선교 여행을 떠나기 위해

여러 가지 준비를 하던 지인이

현지의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을 담아 갈

대형 트렁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순간

작년에 유럽으로 크루즈 여행을 갔을 때

두바이몰에서 구매한 대형 트렁크가 떠올랐다

남편의 짐을 실은 트렁크의 바퀴 하나가 고장 나서

소음이 심했고 오랫동안 썼던 것이라

현지에서 바로 50만 원 정도에 신형을 구매하고

두둑한 팁과 함께 버려달라는 메모를 남기고

헌 가방을  두바이의 호텔방에 남겨두고

즐겁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떠났었다


그때는  트렁크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잠금장치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동안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하여

비번의 숫자부터 맞추고 잠금장치의 락을

설정해야 하는데

나는 반대로 잠금장치의 락을 걸어버리고

내가 비번이라고 생각하는 숫자들을

신나게 맞추기 시작했다

하여

자물쇠의 락을 걸기 전에 세팅되어 있던

세 자리의 숫자는 그렇게 영원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지인이 보는 앞에서

온갖 숫자를 맞추어 보았지만 가방은 열리지 않았고 나는 다음 날 가까운 매장에 들고 가서

마스터 키 찬스를 사용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아들이 세 자리 경우의 수를

빠른 속도로 다 맞추어보겠다고 장담을 하기에

맡기었더니 20분 만에 잠금장치를 망가뜨리는

묘기를 부리는 것을 보고 허탈해서 웃음이 터졌다

하는 수없이

다음 날 오전에 매장에 들러보기로 마음을 먹고

매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10초 정도 기도를 했다


- 신이시여

저는 답답할 거 없습니다 

이제는 여행에 관심도 없고요

이 가방을 열리게 해 주시면

오늘까 짐을 싸야하는 선교팀에 소중하게 쓸게요


그리고 가방의 숫자판을 아무렇게나

문지르고 버튼을 눌렀다

순간 딸깍하는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툭 열리고 움푹패여서 망가졌던 부분까지 튀어나오며 원상복구가 되었고

숫자는 역시나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949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큰소리로 아들을 불러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허겁지겁

지인에게 다시 연락을 하여 가방을 빌려주고

얼떨결에 선교사님들과도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 스토리를 들은 누구도

진지하게 믿는 표정이 아니었기에

나는 설명을 포기하고

기도하는 올바른 자세만

나의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되었다




좋은 일에


좋은 인연으로 내가 쓰임 받기를


순수한 열정으로 의도하는 것이


종교를 초월해


소중한 기적을 이루어가는


바른 기도의 본질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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