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어머니가 먼저 죽으면?
이라는 아들의 질문에 일도 안 하고
술만 먹다가 따라갈 것이라고 남편이 대답했다
아버지가 먼저 죽으면?
이라는 아들의 질문에 펑펑 울면서
따라가고 싶다고 내가 대답했다
둘 다 진심이었다... 그때까지는
심지어 얼마 전이다
그것은
자식이 성인이 된 사람들의 여유였다
자식보다 남편을 좋아하는 여자가
남편이 출장을 가고 없는 동안
최고의 가을을 누렸다
융통성이 없어서 나의 신혼여행을 포함해
많은 여행을 망쳐버린 남편도
이번 출장이 최고의 여행이 된 듯하다
남들과 함께 가면 선천적으로 융통성이 없어도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 같다
정말 다행이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되었다
내가 가고 나면
남편은 여행을 다닐 것이고
남편이 가고 나면
나도 여행자처럼 살 것 같다
아직은
돌아갈 집이 있어서 즐겁고
돌아올 가족이 있어서 즐거울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소소한 변화가 신기하고 재미있다
어제 오전의 이른 시간에
커피만 마시고 핸드폰도 두고 범어사를 찾았다
모든 풍경이 새삼 너무 아름다웠다
관광객이 많아 점심은 집에 와서
지인에게 받아 온 시래깃국과
친구에게 선물 받은 생김치로 맛나게 먹었다
왜 내가 그 국에 그토록 감동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엄마의 손 맛이었다
다시는 먹을 수없고
영혼이 기억하는 맛이었던 것이다
풍경이 계속 아른거려
오늘 오전에 다시 범어사를 찾았다
다시 봐도 황홀했다
자연은 그런 세계였다
보아도 보아도 아름답고 신비로운 세계
이번에는 이쁜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통도사가 웅장하고 장엄하고 기품이 있다면
범어사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우아하다
그리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풍경이 달라지는 신비한 묘미가 있고
겹치는 기왓장이 주는 전통미도 매력이 있다
추워지기 전에
반복해서 눈에도 마음에도 담아보기로 했다
귀가해서 연어회로 점심을 먹고
쿠키와 투샷 에스프레소로 특급 마무리!!
남편이 보내온
체코 오스트리아 튀르키예의 사진과
아들이 올린 부산 불꽃놀이 영상과
조카커플이 보내온 캠핑여행 사진을 다시 감상하고
나도 범어사에서 찍은 사진을 전송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