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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후의 당신이 오늘 이 하루를 산다면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by 석탄


15년 후의 내가 현재로 돌아와 오늘 이 하루를 산다면,

나는 기꺼이 이 하루를 온전히 행복하게 보낼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하루를 살려고 노력할 것인가?

나는 아쉽게도 후자였다.

'이 늪 같은 기분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다.'

'이 늪 같은 지붕 현장에서도 빠져나가고 싶다.'

몸은 일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딴 곳을 보고 있었다.

내 감정은 이 하루를 충분히 살지 않았고 내 시선은 늘 지금을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점심시간에도 퇴근을 하고 나서도 분노를 끌어안은 채 책을 폈다.

책 속에서라도 뭔가 다른 길을 찾고 싶었다.

부정적인 감정으로 가득 찬 나에게 대부분의 자기 계발서는 늘 하던 대로 반복해서 말했다.
“지금 이 현실을 긍정적으로 다시 봐라.”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몰두하면 결국 성공의 길이 열린다.”

그 말들이 이상하게 위로는커녕 나를 더 깊은 의심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정말 이게 맞는 건가?'

'정말 이 일에 몰두하면 되는 건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혼란은 나에게서 불안과 후회도 데리고 왔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왜 호주까지 와서 목수를 하게 되었는지 모든 이유가 희미해졌다.

지붕 목수로써의 계획을 세워야 겠다라기보다는 그냥 목수가 아닌 미래에 초점이 더 맞춰졌다.

‘꼭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다른 길은 정말 없을까?’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이 수도 없이 들면 그냥 읽던 책을 덮고 다른 책을 펼쳤다.


그날도 그랬다.
점심시간이 되어 호주인 사장 스티브 보다 지붕에서 먼저 내려와 늘 하던 대로 책을 폈다.

그런데 그날 읽은 책 속의 한 문장이 이상하게 깊이 박혔다.

마치 내가 쓴 것처럼, 내 안 깊숙이 눌려있던 있던 말을 대신 꺼내준 것 같았다.

지금껏 차마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그런 질문이었다.


'15년 후의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지금의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그 한 마디의 질문은 부정적인 감정이든 긍정적인 감정이든 내가 좋든 싫든 줄줄이 감정을 다 데리고 왔다.

지붕일을 하면서 억눌려 있던 분노, 피로, 허무감, 그리고 아주 작지만 사라지지 않는 기대와 바람.

그 감정들은 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오늘의 하루가 힘들더라도 15년 후의 나에게 도움이 된다면 오늘 하루를 버틸 것인가?'

'지금 내가 바라는 15년 후의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점심시간이 끝나기 5분 전, 머릿속에 질문을 가지고 먼저 다시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은 여전히 높았고 벨트를 찬 몸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조금은 다른 눈으로 현장 주위를 바라봤다.

지붕 위에서 내려다보는 호주의 드넓은 풍경 속, 33년째 지붕일을 하는 스티브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15년 후의 내가 지붕일을 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15년 후의 내가 현재로 돌아와 오늘 이 하루를 산다면,

나는 기꺼이 이 하루를 온전히 행복하게 보낼 것인가?

아니면 완전히 다른 하루를 살려고 노력할 것인가?

나는 아쉽게도 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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