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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Jan 30. 2024

올리브와 평화의 순간

올리브 나무

















올리브가 죽었습니다. 올리브에게, 올리브를 선물해준 친구에게, 여러분에게 죄송합니다. 물도 때맞춰 주고 햇빛도 잘 쐬 준 것 같은데 어느새 잎이 바싹해지더니 돌돌 말려들었습니다. 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했는데 이유도 모른 채로 이렇게 쉽게 작별해야 하다니. 올리브와는 어떤 추억도 쌓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일까 슬픔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에 더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올리브의 꽃말은 평화입니다. 올리브와의 에피소드를 얘기하지 못하는 대신 나의 평화의 순간들을 몇 조각 나누어 드릴게요.





1.


튤립이 고개를 쏙 내미는 봄이 왔다. 어린잎 올라온 나무들 사이로 반짝이는 물결이 보이는 곳으로 햇살과 평화를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 색색의 돗자리 위에서 책도 읽고 노래도 듣고 과일도 먹고 낮잠도 자는 계절이 왔다. 봄이 너무 좋다 나는. 따사로워서 니트 입은 것이 후회되어도. 선선한 바람에 어리고 얇은 버드나무 가지가 살살 흔들리는 걸 보는 게 좋다.



2.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카페가 있다. 주방에서의 지글지글 다각다각한 소리 들으며 진저향 짜이티 한 모금과 바삭 부서지는 알루핫샌드 한 입. 레몬즙 한 번 뿌리고 사람들은 모두 조용하고 궁금한 작은 책 한 권 집어 들고 구석의 배려를 발견하는 곳. 뒤에는 양화한강공원이 있다. 마음이 푸근해진 채로 한 바퀴 산책하고 집으로 가는 것도 좋다. 



3.


그리고 나는 드디어 혼자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리고 좋다는 걸 이제서야 문득 깨닫게 되었다. 좋은 책과 좋은 공책 연필과 펜만 내게 있다면 불안하지 않지 든든하지. 깨닫게 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결국은 알게 되었다. 그럼 된 거다.



4.


집 보러 다니다 몸도 마음도 잔뜩 지친 날, 우연히 들어간 정갈한 식당에서 가지된장덮밥을 먹다가 옹골찬 행복을 느꼈다. 누렇게 우린 물을 마시며 스윽 둘러보니 창밖으론 열 내는 매미 소리. 옆자리 누군가는 무얼 한 입 먹고서 여름이다 여름~ 그랬다.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두 분은 요즘 하는 연애 프로그램 얘기가 한창이었는데, 자기는 젊었을 때 마음을 숨기느라 바빴고, 또 너무 무식하게 사랑했다며. 자기 마음을 부담스럽지 않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말할 줄 아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고, 저 마음이 어디에 가 닿으려나... 그랬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모두 사장님과 친구였고, 낯선 어른들에 겁먹고 짖던 강아지는 처음 보는 아기의 손길에 얌전했다. 강아지를 데려온 손님은 차를 마시다 일어나 아기 옆에 앉아서 인사를 시켜주었다. 나는 밑반찬까지 다 비우고 나와서 식당 건너편 나무 무성한 벤치에 앉아 해와 바람을 좀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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