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감한 망고 Apr 14. 2024

두 번째 집을 구했다

02.

인도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이 얼마나 고단한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한국에서 부동산 사장님을 끼고 집을 보러 다니거나 집주인 할아버지와 보증금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인도에서 집을 구하는 노고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 그것도 식다 못해 차가운 죽 먹기나 다름없다.


인생 번째 인도 집을 구했다. 2년 동안 머물렀던 말 많고 탈 많은 엉터리 집을 떠나 새롭게 말 많고 탈 많을 미지의 집으로 들어간다. 예상은 했지만 아무것도 쉽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첫 번째 집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과정조차 매끄럽지 않았고, 두 번째 집주인과 계약 조건을 조율하는 밀당 속에서 수 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두 집주인 사이에 끼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얻어터지다 결국 내 속도 터졌다.


인도의 부동산은 체계가 없다.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단단한 법이 없어 백날 계약서에 이런저런 조항을 써 놓아도 집주인이 우기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저 끝없는 설전으로 버티며 서로의 주장을 좁혀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부동산 거래를 중개하는 에이전트 역시 엄격한 자격을 취득한 전문가가 아니다. 2년 전 첫 번째 집을 구할 때 어느 교민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인도는 아무나 나가 집을 팔고 다닐 수 있는 곳이라고.


백번 양보해 자격증이 없어도 성실하고 직업윤리가 투철한 에이전트라면 문제가 없겠으나 지금까지 만난 에이전트는 모두 기대 이하였다. 수수료는 월세의 절반이나 받으면서 자신이 응당 해야 할 몫은 무엇이든 대충대충 하는 탓에 나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직접 임대계약서를 한 문장씩 뜯어보고 부당한 내용을 잡아내야 했다. 실소유권을 증빙하는 자료도 아직까지 받아내지 않고 빈둥거리며 입이나 놀리는 에이전트에게 뭐가 예쁘다고 큰돈을 뚝 떼어줘야 하는지 천불이 날 때도 있다. 인도인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인도에 사는 한국인 에이전트도 대충 일하기는 도긴개긴이었다.


그런가 하면 고질적인 태평함과 말 바꾸기도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고비다. 딥 클리닝, RO 설치, 벌레 방역, 모기장 설치, 베란다 버드넷, 에어컨 청소, 이 모든 작업을 마치는 데 3일이면 충분하다는 집주인 측 매니저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자신만만했지만 입주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금까지 제대로 해놓 것이 없다. 집주인은 집이 네 채나 있는 부자라더니 자기 돈으로 미리미리 처리했으면 될 일을 내게서 1개월치 보증금을 받은 뒤에 하겠다며 후비적거렸다. 그나마도 3개월치를 미리 내놓으라는 인사를 얼러서 1개월치만 내기로 합의한 건 또 어떻고.


새로 들어갈 집이 지금 사는 집보다 나으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분홍빛 기대를 할 만큼 인도 아파트를 신뢰하지 않는다. 어차피 좋은 집에 살고 싶어 이사를 하는 것도 아니다. 집주인의 욕심 때문에 첫 번째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어 다른 집을 찾았을 뿐 딱히 인도 내에서 다시 이사를 하게 되리라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저 일이 그렇게 흘러갔다.


새로운 집주인은 지난주에서야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청소 작업을 시작했다는데 듣기로는 집에 자잘한 문제가 많아 녹록지 않겠단다.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

매거진의 이전글 '인도'에 산다, 인도에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