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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고실험 Jul 08. 2023

선하게 살아가기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힘쓰는 것은 미스코리아뿐인 것일까

나는 선한 인간인가? 그리고 선한 삶을 살 수 있는가?


어렸을 적부터 내 꿈은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여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내 꿈을 들으면 무슨 미스코리아가 되고 싶은 거냐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인간이 얼마나 저급한 삶을 살고 있는지는 나이를 어느 정도 먹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이건 그냥 여담이고..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여한다는 말을 지금 나는 ‘선하게 살아간다’라고 간단하게 말하곤 한다. 내 나름대로의 선에 대한 정의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어려운 부분이 생긴다.

과연 나는 선한 행동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냐는 것이다.

100% 선한 행동만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경에서는 예수가 선한 행동만을 하면서 살았다고 이야기하지만 결코 틀린 말이다. 왜냐면 예수의 삶과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불행과 좌절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한 것은 이 것이다. 과연 삶의 몇 퍼센트나 선하게 살면 선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51%는 선하고 49%는 악하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만약 오늘 아침부터 저녁까지 선한 행동으로만 가득 채웠다면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악하게 살려고 악행을 마구 저질러도 선한 삶이라고 봐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99개 선한 행동을 했으니 그냥 딱 한 번만 악한 행동을 하면 99% 선한 삶이니까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인 것인가? 반대로 99번 잘못했어도 잘못을 잘 뉘우치고 개선된 삶을 한 번 살면 그 사람은 좋게 평가받아야 하는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나는 여러 가지 접근 방법을 생각했다.

첫 번째는 ‘내가 선택 가능한 순간에서 보다 선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택 가능한 순간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선택 가능한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내 삶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단순한 결과이다. 내가 선택 가능한 순간이라면 내가 선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선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방법이다.


두 번째는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선한 행동의 기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정의하는 것이다.

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나는 타인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지 않는 인간이다. 내가 공감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냥 본능적으로 무관심하다. 만약 나 같은 사람이 심리상담사가 되어 누군가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겠다고 하면 나는 그 일에 서투를뿐더러 상대방도 만족할 수 없고 나 역시 대단히 높은 피로감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선한 행동이자 선한 목적이긴 하지만 비효율적이다. 나보다 그 일에 훨씬 최적화된 사람이 그 일을 하는 것이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은 선을 전달할 수 있다.

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무언가 시스템화된 것에 대한 분석, 이해, 새로운 설계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 일은 내겐 그리 피곤하지 않은 일이고 높은 성취감을 주며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더 높은 효율로 작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그렇게 개발된 새로운 제품들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선한 행동이라는 것을 대략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잘하고 그 일의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그로 인해서 내 삶의 만족도 또한 올라갈 수 있다면 그것은 선한 행동에 가까운 행동이라는 것이다. 꼭 저 모든 것을 만족 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저러한 일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일을 하면 할수록 내 삶은 좀 더 선한 삶에 가까워진다.


물론 이 정도 정의가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는 못한다. 때론 비효율적인 일도 수행해야 할 때가 있고 어떨 때는 나나 혹은 타인에게 불만 가득한 일을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것이 미래에 더 큰 선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저평가되어선 안 되는 일이다. 십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말이 아니다.


이 외에도 선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꾸준히 고민하고 생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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