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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늘 Mar 25. 2022

<만인의 연인>(2021) 한인미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목적지를 벗어나 전달되지 못한 마음

[씨네리와인드|이하늘 객원기자] 마음을 건네는 작업은 무척이나 정교하고 세밀함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 마음이 원했던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한 채로 길을 잃게 되면, 그 마음은 다른 이름으로 다시 다가온다. 「만인의 연인」 속 18살 고등학생인 유진(황보운)은 마음의 정류장의 어디에 내려야 하는지 모른 채 환승카드를 들고 있는 소녀다. 영화의 오프닝, 유진은 푸른 새벽이 깔린 버스정류장에서 잠들어 있다. 버스는 이미 끊긴 지 오래지만 소녀는 무언가를 기다렸던 모양새다. 버스를 타고 가다, 원하던 목적지에 도달하면 빨간색의 버튼을 눌러 자신이 내리고자 하는 위치를 표시하곤 한다. 하지만 안내 메시지를 듣고 버튼을 너무 빨리 누르거나 너무 늦게 누르게 되면 자신이 원래 내리고자 했던 목적지보다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유진은 자신이 탄 버스의 버튼을 어디서 누를지 모르는 소녀이다. 물론 영화는 버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러한 마음들의 도달 지점들을 놓치고 마는 한 소녀의 복잡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 만인의 연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재혼을 앞둔 자신의 엄마(서영희)와 그로 인한 무관심 속에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의 충돌로 소녀의 얼굴에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유진은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구한다. 그리고 그곳에 대학생 오빠인 강우와 동갑내기인 현욱을 만난다. 유진은 강우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현욱에게도 마음이 흔들린다.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강우가 현재 애인이 되기도 하고, 현욱이 애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유진의 태도는 단단하면서도 묵직하다. 마음을 건네주면서도 행동의 옳고 그름 속에서 자신만의 강단 있는 판단을 내린다. 키스를 하려는 강우에게도 자신에게 지금의 남친은 현욱이라는 것을 공표하고, 제지한다. 하지만 강우의 무신경한 태도와 입바른 말에 이내 어리숙한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 상처를 받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인 모습에 관객들은 소녀의 감정의 노선을 버거워하기도 한다. 만인의 연인이 되어버린 유진은 이제 모두를 잃을 위기에 처하고, 두 사람은 모두 결국 자신을 떠나버리고야 만다.


하지만 이 모습은 자신의 엄마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있다. 자신의 연인이 가족과 이혼을 하고 온다는 말을 믿고 있는 유진의 엄마의 등 뒤로 그의 연인은 몰래 자신의 가족을 만나는 행동을 보이고 이를 유진이 목격한다. 모녀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최선의 방안으로 나아가는 길을 선택하지 못한 채 서있다. 유진은 자신의 엄마에게 “정신 좀 차려”라고 말하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자신에게 건네는 모습과 비슷하다. 이 영화는 어른과 아이의 구분을 짓지 않고, 실수를 반복하고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고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자신에게 남아있던 연인이라는 존재는 사라져버린 채, 남은 것은 자신 혼자다. 그러던 중, 자신이 일하던 피자집의 점장님이 사고로 사망을 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 만인의 연인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유진은 현욱이 자신과의 헤어짐 속에서 점장과 자신을 부적절한 관계로 인식하고 고의로 오토바이를 치고 가면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알게 된다. 유진의 옆에 있던 모든 관계들은 이내 종식되어 버리고 같이 일하던 점장의 연인이었던 혜선만이 남아있게 된다. 유진은 혜선에게 묻는다.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마치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묻는 것 같은 이 질문으로 하여금 우리는 혼란함에 빠진다. 유진의 잘못일까. 만약 유진의 잘못이 있다면 자신의 마음의 정류장에서 내릴 곳을 못 찾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 아닐까. 유진은 영화의 오프닝처럼 홀로 남겨진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유진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전달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하고 세심하게 설계한다. 엔딩 장면의 혜선과의 야구공을 주고 받는 장면에서 마음은 한 방향의 일직선으로 향하지 않고, 쌍뱡향의 소통을 이뤄낸다. 어쩌면 그녀가 앞서 했던 강우와 현욱과의 삼각관계는 일직선의 마음이 아닌 여러 갈래로 나눠진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소녀는 노선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Director 한인미

Cast 황보운, 서영희, 전석호



■ 상영기록

2021/10/09 13:00 CGV센텀시티 4관

2021/10/10 09: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3관

2021/10/11 15: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4관

2021/10/13 16: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6관



*씨네리와인드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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