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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Jun 02. 2023

보통날

지극히 평범한,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한 뒤 학교에 출근을 한다.

빨래를 돌리고 오늘 해야 할 일을 적어놓은 목록을 본다. 생각보다 일이 많지 않다.

교무실이 아닌 강당 안의 5평 남짓한 나의 사무실의 퀴퀴하고 허름한 나무 책상 냄새가 나를 반겨온다.

외롭지 않고 익숙한 생각이 드는 게 새삼, 혼자 강당을 지키는 일이 이제는 제법 익숙하고 적응이 된 모양새다.


다음 주 대회를 출발하기 전 아이들 컨디션을 한 번씩 체크해 본다. 조금 근육이 뭉친 것 빼곤 아이들이 모두 컨디션이 좋은 편임을 알 수 있다. 날 보고 웃으며 장난스러운 인사를 건넨다는 것, 아이들의 기분이 보통이라는 것.




점심을 먹고 본가에 갈 채비를 한다.


개학 전 마지막 주말을 가족과 함께 보낼 계획이었다. 방학 전 들뜬 마음과 행복한 계획으로 짐을 싸던 모습이 떠올라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날들에 잠시 우울해졌지만, 비 온 뒤 맑은 날이 있듯이 잠시 먹구름이 끼었던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삶이란 게 모든 내 생각처럼 풀리기만 하면 재미없잖아? (괜한 허세를 부려본다.)


본가에 가는 길, 내겐 참으로 익숙한 길이다.


결혼을 삶의 중요한 목표로 삶고 있진 않지만 언젠가는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에, 아직 싱글일 때 가족들과의 시간을 부지런히 보내려 한다. 혹여나 결혼을 하게 된다면 가정에 더욱 충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바라던 나의 결혼상은 묵묵하고 듬직한 커다란 나무 같은 가장이 되어주는 것이다. 어떠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튼튼하고 굵은 뿌리를 아주 깊게 내리고 있는 몇 백 년은 된 듯한 느티나무 같은 사람. (중요한 목표가 아닌 것 치고는 꽤나 계획적인 상상을 해본다)


운전하던 차가 쿨럭하고 힘든 소리를 내며 익숙한 길 어디쯤을 달리고 있을 무렵 라디오에서 정말 좋아했던 가수 god의 보통날 노래가 흘러나온다.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준비할 시기, 몸과 마음 모두 지친 11월 새벽의 쌀쌀한 공기를 품고 집에 가는데 심야의 라디오에서 보통날 노래가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마치 오래되고 해진 겉옷 안 주머니에서 헤어진 연인과의 연애편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먹먹해지면서 아려오던 그 느낌과 같아 괜스레 우울한 감정이 차 올랐다.


오래전 노래에서 이토록 풍부하고 진실된 감정이 느껴졌다는 건 당시에 꽤나 힘들고 버거운 하루의 굴레를 보내고 있었던 탓일까?


보통날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시절들이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불을 끄고 나오던 독서실의 풍경, 오래된 책들이 내뿜는 습한 종이 냄새, 하루종일 위잉대던 공기청정기가 힘에 겨워 꺼져가는 전원 소리, 쌀쌀한 새벽 공기, 아무도 없는 거리에 겨울이 오기 전 달라지는 공기 냄새까지.


괜스레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이 노래가 지금 나에게 주는 알 수 없는 먹먹함은 불안했던 미래를 마주하던 우울함의 모습일까? 목표를 이뤘다는 편안함이 주는 안도감의 모습일까?






그때 그 시절, 내가 바랐던 행복이라는 목적 안에서 나는 어디쯤을 향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생각하던 행복의 크기는 여전히 같은 것일까? 충분히 행복한데도 내가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면 어떡하지? 너무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다 나만의 행복들을 놓쳐버리면 어쩌지?


반갑지 않게 불안이라는 감정이 문득 스며 들어와 가끔은 겁쟁이가 되지만 반드시 행복해지고 싶기에 언젠간 기어코 올라야 할 나의 계단을 뚜벅뚜벅 나아가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보통날, 나의 모든 순간이 편안하고 감사한 보통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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